[Review] 아웃 오브 사이트 - 덜 방관자가 더 방관자에게 외치는 소리 / 2019 세월호

흘러내릴 듯 앉아있는 세 사람의 끝나지 않을 하루
글 입력 2019.05.12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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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페이스북



01. 꿈꾸지 못하는 세 사람의 하루


흔들리는 버스 좌석에 세 사람이 앉아있다. 몹시 지치고 무기력해 보이는 세 사람. 첫 번째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은 거의 의자에 누워있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구부정한 자세다. 후드집업을 눌러쓴 여성이다. 과거에 연극 극단에서 일하다가 때려치우고 나와서 알바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늘 남편과 싸우기 일쑤인 하루를 보내고, 하루만 제발 쉬게 해달라고 발버둥을 친다.

두 번째 좌석에 앉은 사람은 서류가방을 들고 있는 직장인이다. 창밖으로 한강을 보면서, ‘여자친구랑 바다가고 싶다.’, ‘여자친구는 없지만.’, ‘차도 없지만’ 같은 허무한 말을 중얼거린다.

마지막 좌석에 앉은 사람은 체크셔츠를 입고,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는 남성이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과외 수업 준비를 할 정도로 삶에 여유가 없어 보였다. 집에서 시간을 쓰면서 준비할 만큼 과외가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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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즐거운 건가?

첫 번째 좌석에 앉은, 극단을 때려치우고 나온 사람은 즐겁게 한강 피크닉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상한 말을 한다.


저럴 때 있지 않아요?

내가 여기까지 와서 치킨이나 먹고
맥주 한 모금 마시려고 하는 건가?

이게 즐거운 건가?

하하하

즐거운 거겠지?

하하하.


흘러내릴 것처럼 몸을 겨우 버티고 있는 그 사람은 무명 배우였다. 연기하려고 들어간 극단인데, 자기가 설 자리는 없었다. 극단 배우를 위해 무대장치를 만들고,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서 겨우 잠을 자다가 깼을 때 보이는 커다란 극단 포스터의 이름을 보면서,


내가 여기 왜 있는 거지?

이게 즐거운 건가?


하는 생각으로 그 길로 극단을 그만두고 나왔다고 했다.

참 대담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을 위해 들어온 곳인데도 자기 꿈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순간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힘들다고 칭얼거리면 사람들은 다들 비난했다. 네가 선택한 길이지 않느냐고. 사람들도 참 모질어 보였다. 그렇지만, 그가 과연 단순한 위로를 바란 것이었을지, 아니면 자신의 삶이 달라지기를 바랐기에 투정을 부린 것일지 고민해보면 왜 사람들이 그렇게 냉소적으로 말한 것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너도나도 힘든데, 다른 사람의 삶과 책임감, 그리고 후회의 무게까지 짊어지기 싫은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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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과거에 했던 선택을 보면 참, 사람은 변하기 어려운 것 같다. 학교에 말을 잘하지 못하는 여자아이가 있었댔다. 늘 고개를 푹 숙이고, 선생님이 말을 걸어도, 한참 있다가 입 모양으로만 ‘네’ 하고 대답하는 아이였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데 버스 기사가 누군가를 크게 혼을 내서 쳐다보니 돈을 넣지 않고 무단으로 버스를 탄, 그 말 수 없는 아이를 혼내고 있었다. 그 아이는 역시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이나 혼나는 그 아이를 보면서, 그 극단 배우는 차표를 한 다발이나 내놓고 통 안에 넣으면서 아저씨한테 ‘됐죠?’ 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둘은 아무 얘기도 못 하고, 다음날 학교에서도 서로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말 수 없는 아이의 자존심을 지켜주었지만, 그 아이는 말수가 없었기에 결국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못했다. 그 아이가 뭐라고 한 마디만 해주었다면 극단 배우의 삶이 조금이나마 바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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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대신 미안해하고, 대신 감사하는 일

두 번째 좌석에 앉은 그의 회사 직책은 대리다. 대신 전달해주는 일. 회사를 그만둘 것을 대신 전달하고, 대신 미안해하는 일. 색색의 볼펜으로, 매번 다른 필기체로 다른 사람의 이름을 따라 서명을 하는 일. 어떤 이름은 휘갈겨 적고, 어떤 이름은 정자로 적는다. 그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처음 사직서를 대신 받아내던 날, 그는 친구를 불러서 술을 마셨다고 했다. 아주 많이. 회사를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하는 그의 말에 친구들은 원래 일이란 게 다 그런 거라고 했다.

회사에 가니 부장은 자기에게 너무나 당연하게 일을 시켰다. 대신 사직서를 받아내고, 대신 사과할 것을. 그러면서 더 높은 곳에서는 직접 사과하지도, 직접 만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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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어떡하지? 어떡해야 하지?


과외 선생은 원래 대학교의 조교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교수를 따라 학부 학생들과 MT를 갔는데, 한 학생이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지 배를 잡고 엄마를 미친 듯이 부르고 있었다고 했다. 너무 놀라서, 교수에게 가서 학생의 일을 말했더니 교수는 눈만 껌뻑껌뻑하며,

“어떡하지?”

라고 오히려 되물어봤단다. 과외 선생은 “구급차를 부를까요?” 물어봤고, 교수는

“어어어, 그게 좋겠다.”

학생은 잘못되지 않았고, MT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마무리되었고, 과외 선생은 다음날 조교를 그만뒀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실망감은 조교를 그만둔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과외 선생의 과외 돌이네 부모님이 갑자기 자기소개서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만큼의 비용은 낸다고. 어떡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과외 선생에게 학부모는 답답해하면서 요구를 밀어붙인다. 다음 시간까지 생각해본다고 말하는 과외 선생을 몹시 답답해하는 학부모.

자신의 삶에 너무나 우유부단했다. 엘리트 교육, 국수 사과 영 과목별 특화교육만 받고 자라, 조교의 길을 걷고 대학교수가 될 장래까지 그 길을 마냥 걷지 않았지만 결국 그 길 아래에서도 그는 자기 삶에 주관이 부족했다. 평소에 자신의 삶에 확신에 찬 사람이었다면, 부조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을 것이다. 위기가 닥쳐왔을 때 이렇게 해도 되나, 어떻게 하지? 고민하는 순간은 너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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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아웃 오브 사이트

워라밸, 삶과 일 사이의 균형

일이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인격이라거나 정체성을 정의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퇴근 후에도 우리의 삶이 기다리고 있는 만큼, 일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거나, 주 40시간의 근무를 제시하며 삶과 일 사이의 환상적인 균형을 강조하는 현대 사회지만, 회사에서 일을 끝내지 못하면 자신의 개인 시간을 할애해서 일해야 하고, 또 그러지 않는 사람에게 명백한 실망스러움을 표출하는 회사가 무척 많다. 어린이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닌데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분명히 끝내야 하지 않으냐는 암묵적인 강요가 팽팽하게 흐르고 있다.

자기가 하고 싶어서 들어간 일이지만, 생각하던 것과는 너무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고, 그게 어쩌다 보니 ‘갑’도 아니고 ‘을’도 아닌 저 아래에 있는 ‘나’의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저 높이 어딘가에 있는 사람들은 눈물을 정면으로 받아내지 않아도 되고, 자기네 학생이 아파서 데굴데굴 구르고 있어도 어떤 판단을 내리지 않아도 되며, 다 같이 쓰러져 무너져 내려가는 배에 올라타고 있어도 팬티 바람으로 도망가 목숨만 부지해도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왜 그 세 사람이 버스에서 흘러내릴 듯한 자세로 앉아서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 앞에서 오늘 해야 할 것을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 또한 그들과 같은 모습일지도 모르고.

처음 서울에 올라오던 날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지하철 속에서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하거나, 앉아서 잠시 눈을 붙이거나 멍한 눈으로 아무것도 응시하고 있지 않기도 했다. 나는 그 사람들을 보면서 죽어있다고 생각했고, 부끄럽게도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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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인 사이트

클라이맥스가 다가올 때, 세 사람은 자기 마음속에서 간직하고 있는 강렬한 목소리를 외친다. 대신 미안해하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주는 일을 못 하겠다고 강하게 외친다. 그러나 무대가 검은색으로 물들고 나니 다시 세 사람이 버스에 나른하게 앉아있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막상 현실과 마주치면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는 것을 어렸을 때는 몰랐다. 세상이 아무리 더럽고, 부조리에 가득 차있더라도,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자고 다짐했었던 그 결심이 흔들리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정말 몰랐었다. 대리가 처음 사직서를 받아내던 날 친구를 불러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에, 그 날이 금요일이 아니면 어쩌지 고민하는 내 모습에 다소 놀랐다.

우리는 모두 방관자가 되어간다. 덜 방관자가 더 큰 방관자에게 내는 소리, 원망, 비난. 사실은 너 스스로 하고 싶을지도 모를 그 외침.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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