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광란의 고독 속 빈틈을 채우는 방법 - 꼬리박각시

소설 <꼬리박각시>
글 입력 2019.05.12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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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단순히 상처와 결핍을 극복하지 못한 여자의 이야기로 간주하기에는 이르다.

*

어쩌면 그보다는 좀 더 포괄적인 태도, 기대하고 열망했던 것이 점차 사그라지고 현실화되어가는 모든 것에 대해 바닥 끝까지 실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조망하고 있다고 볼 수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 두려운 이들은, 열렬히 시작해 냉담히 끝나는 관계를 반복하는 것에 더는 자신을 소비하고 싶지 않다.

특히 그것이 어떤 종류에서든 강렬히 열망했던 것이었다면 그만큼 사그라들 확률이 커지는데, 사그라들어 모든 게 끝나버렸을 땐, 텅 비어버린 감정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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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주인공 롤라는 그렇게 커진 자신의 공허를 채우기 위해 남성들과 성관계를 맺고, 채움의 증거로 함께 잠자리를 했던 남자의 손톱을 수집한다. 보고 있으면 빈틈을 잊게 하는, 일련의 안정제 같기도 한 이 손톱들을 모으는 것만이 그녀의 유일한 관심사고 그녀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면도날로 자신을 그을 때
롤라는 다리를 벌린다.'


그래서 나는 롤라의 동네 이웃인 모모의 존재가 롤라의 또 다른 분신처럼 느껴졌다. '모모'는 최근에 복권에 당첨되어 다 빠지고 없었던 이를 채워 넣으면서 행복을 찾는 인물인데, 롤라가 사는 동네의 바에 자주 드나들며 사람들과 교류한다. 사람들은 이런 모모의 사연을 알고, 왠지 신뢰감 넘치는 그의 면모에 자신의 사연을 거리낌 없이 모모에게 털어낸다.

그래서 모모의 저장고엔 롤라의 이야기도 있다. 다만, 롤라는 더는 그에게 무언가를 털어놓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타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내게끔 하는 이유가 모모 자신의 고독을 잊고 자신의 비참함을 몰아내기 위함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어쩌면 자신과 동질감까지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녀 스스로도, 자기가 고독을 몰아내고 빈틈을 채우는 방법, 잠자리와 그 증표인 손톱 수집까지 이 모든 행위에 대해 자조적인 시선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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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사람이 이렇게 망가져도 되나 싶은 순간에도 찾아오는 그 희망을, 이 소설은 끝내 져버린다는 것이다. 여느 소설과는 달리 그녀에게 찾아온 또 한 번의 희망을 전복시킨다. 다소 과격하고, 비극적이며 허무한 결말이 많은 프랑스 문학답게, 작가는 철저히 소설 속 주인공 롤라를, 그리고 독자를 반전시킨다.

자신의 공허를 채우기 위해 쉽게 상대할 수 있는 남자만 골라 잠자리를 하던 그녀에게 희망이자 또 다른 '너'였던 이웃집 남자 '도브'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들은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래서 그녀는 이 남자라면, 영원을 약속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고, 또 한 번의 희망을 걸었다.

그리고 도브의 사랑이 식어버렸음을 깨닫는 순간, 극복해볼 법도 한 상황을 그녀 스스로 결단을 내리고 철저히 끝내버린다. 그래서 초반에 그녀가 스무 살일 때 끝나버린 첫사랑이었던 '너'의 존재, 그래서 그때 이후로 그녀를 완전히 망가뜨려 버린 '너'가 어쩌면 하나의 고정된 인물이 아니라 그녀를 관계 속에서 지치게 한, 무수한 복수의 인물일 수 있을 거로 생각해본다.

그래서 그녀가 떠올리는 '너'라는 존재엔 다시 일어설 수 있겠다고 느꼈던 이웃집 남자 도브가 새롭게 추가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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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이 소설엔 그녀가 영원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도브와 그녀의 사랑에 대한 묘사가 소설의 전반적인 분량에 비하면 턱없이 적게 느껴진다. 다만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그 행복을 져버릴까 두려워하는 그녀의 모습에 집중할 뿐이다. 소설의 전체적인 부분에서 그녀의 불안하고 진자운동처럼 높았다 낮아져 버리는 그녀의 집착을 묘사하는데 온 소설을 할애한다고 볼 수도 있다.

나는 그런 부분에 있어, 그녀의 행동에 공감하긴 어렵지만 이해할 수는 있었던 것은 이 소설이 인간의 자기 파괴적인 모습과 어떻게든 공허를 채우려는 시도들을 잘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소설의 제목처럼 꼬리박각시(Moro-sphinx)에 비유한 것도 닥쳐오는 욕망을 미친 듯이 좇는 그녀의 모습과  닮아있어 대체할 수 없는 메타포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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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나는, 상당히 자기 파괴적이고 기이하고, 우울하며, 극단적일 만큼 적나라하게 직설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시궁창 같은 지저분함을 느끼게 하는 그녀의 망각방법을 납득할 수있다. 이를테면 뚱뚱하고 땀냄새 나는 구두장이 남자와 구둣방 지하실에서 축축하기 그지없는 섹스를 하거나, 빈틈없이 완벽했던 한 부부 사이를 완전히 파괴하고 얻어낸 손톱을 수집하는 모든 행위를 말이다.

그런 행위들이 때때로 상식을 넘어선 수준이지만, 모두가 그렇게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각자의 방법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음을 짐작해본다면 방법이 다르고, 그 정도가 다를 뿐 아예 이해가 불가능한 것 같지 않다.

다만 그녀가 이상해 보이고, 정신증이 있는 환자라고 느껴질 만큼 기묘하고 분열적인 행동을 하는 건, 다른 숱한 이들이 망각을 어느 정도 접어두고, 현실에 타협하게 되는 것과 다른 행보이기 때문에 다소 공감하기 어려워 보인다.

숱한 이들도 그녀가 겪은 것처럼, 어린 나이에 사랑하는 엄마를 잃었고, 그로 인해 다른 가족들과의 관계마저 산산조각이 나버리거나, 첫사랑과의 사랑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그에 더해 때때로 잉크가 물에 퍼지듯 상황에 대해 감각적이고 경험적으로 묘사하는 저자의 문체가 더해지면 더욱 괴리와 의아함을 자아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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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녀는 망각을 영원토록 가능하게 해줄 존재를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이웃집 남자와의 관계가 끝나버리면서 그것은 끝내 불가능해져 버렸고, 그녀에게는 감당해야 할 망각의 책임만 커졌다. 그래서 그녀는 멈춰버린 망각 행위를 이어가기 위해 독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망사스타킹을 신은 채로 파리의 거리를 걷는다.

그렇게 책이 끝나고 결말에 묘사된 그녀의 모습이 깊은 여운을 남기는 건 다시 반복될 그 깊은 우울과 자기 파괴적 행위들이 떠올랐기에 더욱 복잡하고 씁쓸한 감정이 떠올랐다.

그래서 책을 덮을 때까지 복합적인 감정이 휘몰아치는 이 소설은, 분명 완전해지지 못한 나방 그 자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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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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