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꼬리박각시 [도서]

글 입력 2019.05.13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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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미친 소설. 미쳤다. 너무 좋았다. 엄청나게 강렬하고 미친듯이 홀렸다. 엄청 사로잡혔다. 지극히 사실이 환상이 된다. 내가 이걸 어떻게 감히 설명할 수 있을까. 그나마 역자 후기가 요약정리를 잘해줬다만, 내겐 그 흐름은 의미가 없다.

어렵지만, 줄거리를 요약해서 설명하자면.. 너무나 순수해서 퇴폐적인 롤라. 엄마가 떠나고 아빠도 미치고 ‘너’도 떠났다. 그래서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남자를 사냥한다. 관계한 남자는 모두 손톱을 깎아서 자신의 병에 담는다. 가득 채우는 게 목표다. 그렇게 밤을 배회하며 낮에는 연명한다. 그렇게 남자의 손톱들을 모으고 욕망에 취하고, 스탕달 신드롬에 빠지기도 하고, 이웃집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너무 끌려서 두려웠다. 항상 도망칠 기세로 행복한 하루를 보낸 후 -세상에나, 이게 클라이막스 전이다. 심지어 책의 85%쯤에 다다름. 보는내가 더 불안했다.- 1년이 지난다. 그들은 서로가 질린 상태로 롤라는 항상 신경질적인 상태로 있었다. 롤라는 다시 남자를 사냥하지만 연인이 사라질까 두려워 죽이게 된다.


나는 이 애정과 증오와 갈망과 불안과 중독 이 모든게 공감이 되고 내 감정과 이어져서 같이 미쳐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사실 이 감정을 설명하기 어렵다. 너무 깊이 빠져서 읽었기(경험했기) 때문에.

처음에 자주 언급되는 ‘엄마’는 보통 텍스트에서 다루듯 피상적이고 클리셰로 나올 것 같아서 거부감이 들었었다. 근데 보니까 더 내가 공감이 됐다. 엄마와 나 둘만의 가족이니까. 짙은 교류와 공허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리고 엄마가 없어짐으로 해서, 그렇게나 엄마를 사랑하던 아빠는 자신을 잃어버렸다. 노력하다가 몸이 망가지고, 술에 의존하게 되었다. 마지막 죽음으로 처음 감정이 나오는데, 나중에는 매일 같이 딸에게 전화를 했다. 그 폭력성은 끔찍했지만 죽음을 앞둔 서글픔은 아팠다.

'너'는 나의 사랑이며, 너에게 벗어나기 위해 미친짓을 하고, 정신 차리려고 애쓴다. 나중에는 그의 내용으로 덮어진다. 하지만 그 또한 너이다. 너 라는 지칭으로 인해 더 가까웠다. 너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내게 그런 대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필요했을 뿐이다.

나는 그저 미칠듯한 갈증과 공허, 블랙홀을 어떻게든지 잠재워야 한다. 그래서 남자를 사냥한다. 잡아 먹는다. 그래서 좋았다. 보통은 남자가 여자를 사냥해서 트로피처럼 내세우지만, 이번에는 반대였다. 항상 남자를 사냥했다. 아래에 짖눌리지만 손톱이라는 피는 항상 채왔으니까. 롤라는 많은 트로피를 가지고 있었다. 채워지지 않는 병에 가득히.

미친듯한 어둠, 채워지지 않는 갈망, 눈 앞이 깜깜하고 당장의 무언가가 필요한 상태. 이 모든게 너무 공감이 됐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던 나도 탈출구가 필요했다. 다른 방안은 생각하지 못한다. 내가 아는 이 하나가 나를 구원해줄 전부였다. 그러나 가장 아픈 점은, 내 천국. 도피처인 사람은 영원하지 않다. 그래서 더 신경질적으로 된다. 강박 불안 히스테릭한 감정은 끝이 없고 깊이도 한계도 없다. 이를 도망치는 그도 경험도 똑같았다. 같이 엄청 울고 싶었다. 내겐 소중한 뱀 인형 뿐이었다.

보통은 구도와 구조 큰 흐름을 보며 읽기에 예상을 했으나, 몰입한 나머지 이번에는 '1년 후'를 보고 놀랬다. 아니 어떻게 어째서 왜..? 어떻게 얻은 안식처인데 동시에 이렇게 끔찍한 지옥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이로써 그를 죽이는 것 밖에는 답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바래지고 무뎌지고 사라지고 희미해지는 걸까. 나는 무엇을 꿈꾸고 기대며 지낼 수 있는 것을까. 항상 곧 바스라질 무엇가를 찾아 기대고, 또 다시 계속 옮겨 다니며 살 것이다. 언제까지고.

너무 심하게 몰입이 된다. 거리를 두고 생각하기가 어렵다. 나를 휘어잡는다. 나도 한 번쯤은 이런 미친 생활에 대해 생각을 해봤을 테니까. 그래서 대신 사는 느낌이었다. 거리를 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공감을 배제한다면 작은 것부터 자신을 아끼라고 하겠지만 그건 어려울 것이고, 내가 또다른 은신처와 나무가 되는 방법 밖에는 없다. 환경도 환경이지만 태생이 여린 사람이기에. 나도 이런 충동이 있으나, 잘 멘탈을 잡고 사는 것 같나. 발 삐끗하면 미칠 게 분명하니까. 그래서 지금글도 독자인 나와 소설 속 주인공인 나를 구분하지 않고 쓰고 있다.

환상적인 문장들이 많다. 짧고 구분이 어렵다. 그래서 너무 좋았다. 문체도 방향도 설정도 모두가 다 내 취향이었다. 취향저격 소설. 친구에게 책 추천을 했다. 어떤 내용이냐는 질문에 할 말을 잃는다. 이건.. 미친여자의 이야기야. 미친 여자의 시점에서 쓰여서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되는, 그 머릿속 이야기야. 라고 밖에 할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공감되고 내 안에도 있는 그런 주인공이야. 내 이야기 이기도 해. 미친듯이 병적으로 애정을 갈구하면서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내가 행복하기를 증오하는 그런 상태의 소설이다. 미친듯한 취향 저격 소설이다. 벗어날 수 없는 늪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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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노트



붉은 가로등 불빛을 향해 날갯짓하는 나방.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토록 뜨거운 불빛을 향해 밤하늘을 팔랑거리며 날아오르는 걸까? 《꼬리박각시》는 불빛을 향해 날갯짓하는 나방처럼 파리 밤거리를 휘청거리는 여자 롤라에 대한 대담하고 실험적인 소설이다.


롤라가 술에 취해 거리를 돌아다니며 만난 남자와 망각을 위한 섹스를 하고 그들의 손톱을 잘라 유리병에 보관한다.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가 어른이 되어 실연이 되고 상실이 되어 그 아픔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기에 쾌락으로 내몰린, 전부를 잃고 몸뚱이밖에 남지 않은 여자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치료제다. 그리고 썩지 않는 손톱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의식의 결과물로 남는다.

저자 줄리 에스테브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해냈다. 소설은 독자가 한 여자의 나방 같은 삶을 바라보며 충격받고, 꽁꽁 숨겨진 욕망으로 모호한 표정을 짓게 만든다. 이러한 성격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책을 디자인했다. 소설의 제목이자 소재가 된, 롤라를 대신하는 나방을 표지에 그려 넣었고, 뒤표지에는 꼬리박각시의 속날개를 크게 확대하여 추상화처럼 쾌락을 불러일으키는 듯한 모호한 이미지로 표현했다.

롤라가 사는 세상과 우리가 사는 실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저마다 상처를 입고 치료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누군가를 찾으며 망각을 위한 즐거움을 반복하면서 살아간다. 그 종류와 정도만 다를 뿐. 책을 읽은 독자라면 현대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때로는 위로받으며, 소설을 아우르는 문학적 시도를 통해 순수한 읽는 즐거움 또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줄거리



주인공 롤라는 낮에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밤에는 허벅지에 꽉 끼는 짧은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딛고 몸을 휘청거리며 어둠이 내린 파리 밤거리를 방황한다. 롤라에게 섹스는 망각을 위한,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아물지 않을 상처를 잊기 위한, 파리라는 근사한 도시에서 자신을 소외시킨 사회의 이중 잣대와 남성 사회에 복수하기 위한 수단이다. 어느 장소든 누구든 상관없다. 롤라는 그들과 몸을 섞고 그들의 손톱을 잘라 모은다. 그것으로 겨우 하루를 버틸 수 있다. 그러던 중 한 남자를 만난다. 이웃집으로 이사 온 도브다. 그는 롤라와 가까워지려 하고, 직접 만든 초콜릿을 선물하기도 한다. 롤라도 다른 남자들과는 다른 감정으로 그와 조금씩 가까워지는데…….



▶미리보기



그만둘 수가 없다. 밤이 오기를 기다리느라 몸에 녹이 슬 것 같다. 푸른 하늘 따위는 그녀에게 아무 쓸모가 없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짝짓기를 하고 인공 조명 주위를 미친 듯이 맴도는 나방 같다.

---29p

어린 시절에 먹던 엄마의 케이크 냄새를 맡다가 어린아이의 미소가 떠오르자 얼굴을 찡그린다. 그때 문 뒤에서 휘파람 소리와 발소리가 들린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재빨리 계단으로 도망친다. 바람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그녀는 걸음을 서두른다. 롤라는 자신을 살아가게 해 줄 무언가를 찾아 밤거리로 떠난다.

---60p


바람이 쉬지 않고 얼굴을 할퀸다. 바람에 면도날이 실린 것 같다. 비틀거리며 지하도를 지나는데 기차가 들어오며 바퀴가 레일을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머리 위를 지나는 기차의 요란한 소음이 고막을 찢는다. 고막을 파고든 소음은 도끼로 세게 치는 것처럼 뇌에 부딪치더니 박살이 난다. 두 손으로 귀를 막아 보지만 이미 롤라의 내면 어딘가에 금이 갔다. 물이 쏟아진다. 급류는 둑과 제방, 모든 방파제를 부순다. 지류가 지나는 길마다 피부에 홈이 파인다. 눈물은 끈끈한 점토질이다. 화장이 모두 씻긴다.

---71p


어떻게 하면 사람이 이 지경까지 외로울 수 있는 걸까? 사랑은 사라지고 추억만 남았다. 우리는 떠돌이 짐승, 아니 폐가, 벽을 통과하는 유령들이 무단으로 점유한 지저분하고 텅 빈 집이 되었다. 그런 집에 산다는 건 숨 막히는 일이다. 비인간적이다. 곁에 아무도 없다는 건 인간적이지 않다. 단 한 사람도 없다. 술주정뱅이 아버지 말고는 아무도 없다. 아버지는 취한 채 묘지로 허둥지둥 뛰어오려나? 오기는 할까? 딸을 위해 눈물을 흘릴까? 롤라는 말없이 엄마 손에 이끌려 폐허가 된 집을 떠나 엄마와 함께 밤과 지평선을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 그럴 힘만 있다면 그렇게 세상을 떠날 수 있을 텐데.

---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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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



제목: 꼬리박각시(원제: MORO-SPHINX)

분류: 소설 / 외국소설 / 프랑스 소설

지은이: 줄리 에스테브(Julie Estéve)

옮긴이: 이해연

출판사: 도서출판 잔

발행일: 2019년 4월 15일

페이지: 176쪽

정가: 13,000원



▶저자 소개



지은이 줄리 에스테브 Julie Estéve


1979년 프랑스 파리 출생. 2004년 파리소르본대학(Paris IV-Sorbonne University)에서 예술학(Art History) DEA 수료 후 현대미술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꼬리박각시(Moro-sphinx)》(Stock, 2016)는 첫 번째 소설이며 독일에서는 《Lola》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최근 《Simple》(Stock, 2018)을 발표했다.



[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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