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꽃비 흩날리는 날 - 연극 "나쁜자석" [공연예술]

글 입력 2019.05.14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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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들이 읽는 동화 이야기를 어른들이 다시 찾고 읽곤 한다. 예를 들어 <어린 왕자>가 있다. 어릴 때 읽었던 <어린 왕자>를 어른이 되어 다시 읽어보면 그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이 어린 왕자를 계속해서 찾으며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기에 정말 어린 아이들을 위한 ‘동화’ 같은 이야기들도 어른의 눈으로 보면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


이 연극 <나쁜 자석>에 나오는 고든이 만든 이야기도 그런 이야기다. 꼭꼭 숨겨두고 십년이 지난 뒤 만나는 이 이야기는 주인공 프레이져, 폴, 앨런 모두에게 색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이를 객석에서 만나는 관객들에게도 하루하루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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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나쁜 자석>은 스코틀랜드 작은 해변마을에서 고든, 프레이져, 폴, 앨런 이 네 명의 친구가 9살 때, 19살 때, 29살 때 겪는 이야기들을 그린 작품이다. 사람을 만나서 느끼는 모든 감정들을 보여주며 그들이 겪는 갈등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이 4명의 친구들은 모두 현실에 있을 법한, 있는 친구들이다.


그들은 닮았으면서 정말 다르다. 사람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사고방식, 사람을 대하는 방법, 가치관이 다른데 그런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만나 친구가 된다. 우리도 모두 그렇게 친구를 사귀고 친구가 된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만 다를 뿐 우리는 모두 커가면서, 살아가면서 갈등을 겪고 아픔을 맛본다. 그래서 더 이 연극 <나쁜 자석>이 몰입감이 높았던 것 같다.


 


​고든의 이야기



고든은 이야기를 쓴다.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혹은 자신의 무료함을 없애기 위해, 혹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받고 싶은 것을 표현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아버지의 폭력과 어두운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의 유일한 방법은 바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현재의 나를 표현하기도 하며 자신의 욕망을 실현한다. 작가는 저마다 자신이 쓰는 소설과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에 자신을 담는다고 한다. 고든도 마찬가지로 동화 이야기에 자신을 꼭꼭 숨겨둔다.


<하늘 정원> 속 순수하고 아름다운 소녀와 <나쁜 자석> 속 사랑할 수 없는 자석을 사랑해 나쁜 자석이 되기로 마음먹은 자석. 고든은 이야기 속 다양한 인물로 자신의 마음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의 마지막은 이미 그의 이야기 속에서 예견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고든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꼈고 보는 내내 고든이 한번만 웃어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의 아버지는 고든보다 인형 휴고를 더 좋아했다. 그 인형에게 자신이 받아야 할 모든 사랑과 감정들을 빼앗긴다. 그리고 남은 건 자신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뿐이었다. 그래서 더 이야기에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에게 프레이져라는 특별한 존재가 생긴다. 프레이져는 엄마, 아빠 모두 의사인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다. 겉으로 보기에 사랑도 많이 받고 부족함 없이 자랐을 것 같지만, 아니었다.


친구들 무리에서 ‘대장’을 할 만큼 자존심도 세고 활발한 아이지만, 아버지의 억압 속에 자라나 어릴 때부터 트라우마가 있다. 프레이져는 전학 온 말 없이 소심한 아이인 고든을 자신의 무리에 껴준다. 그에게 특별함을 느꼈을까? 그에게서 숨겨진 자신의 내면의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에 그런 걸까? 프레이져는 고든의 이야기 <하늘 정원>을 듣고 그와 비밀 장소였던 폐교도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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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 폐교에서 그들은 자신의 마음 속에 깊이 숨겨둔 감정들을 꺼내며, 고든은 자기가 죽으면 착한 귀신으로 돌아올 거라고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프레이져는 자기가 먼저 죽으면 널 공격하는 귀신들을 무찌르기 위해 공격했지만 실은 그게 고든이 아니라 귀신들의 막대기라 귀신들이 자기를 속이고 데려갔다고 말해달라고 전한다. 어린 아홉 살이 견디기 힘들었을 환경이 이렇게 그들을 서로 의지할 수 있게 만들었다.


고든이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오직 이야기였는데 정말 특별한 존재, ‘친구’가 생겼다. 아무도 자신에게 주지 않았던 사랑을 프레이져가 그에게 준다는 사실에 정말 기뻐했을 것이다. 19살까지, 아니 9살 때 폐교에서 말했던 것처럼 귀신이 되었다면 계속해서 고든은 프레이져를 특별한 존재, 사랑으로 기억했을 것 같다.

 

 

 

나쁜 자석이 되다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의 모든 것을 알려줄 수 있는 단 한 명의 친구가 있을 것이다. 고든과 프레이져는 서로 그런 존재였다. 그들은 자라면서 사소한 갈등을 겪고 다툼이 일어나 결국은 끝을 맺는다. 19살, 프레이져는 폐교를 불태우려고 하는 고든을 막고 그를 감싸준다. 그리고 깊은 입맞춤을 하며 프레이져는 고든에게 빠져들고 서로 연결됨을 느낀다. 나는 고든이 프레이져에게 동성애를 느낀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토록 받길 원했던 ‘사랑’을 서로 채워나가고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프레이져는 온갖 혼란을 느끼고 현실에 눈을 뜨면서 놀라고 그를 혼자 두고 달아난다. 프레이져는 이 모습이 고든의 마지막임을 알았다면 이런 선택을 했을까..? 아직 열아홉 살밖에 안된 그들에겐 너무 익숙하지 않은, 낯설고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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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고든은 철저히 버림받았는지도 모른다. 폴은 예전부터 그를 호의적으로 보지 않았고 밴드에서 나가줬으면 했었고, 앨런은 술에 취한 채 그에게 밴드에서 나가고 그런 이상한 가사를 더이상 우리에게 가져오지 말라고 당부하는 말을 전하고, 프레이져는 폐교에서 복잡한 감정을 느낀 채 서로 연결되었던 모든 것을 끊고 그로부터 달아난다.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친구들, 손가락에 그들의 이니셜을 새길 정도로 아꼈던 친구들이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은 그가 버티기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그가 만든 이야기 <나쁜 자석>을 보면, 자석은 서로에게 다가갈 수 없으며 각자 흩어져 살아야만 했다. 그리고 자석을 사랑한 자석은 그 자석에게 다가가기 위해 나쁜 자석이 되기로 결심한다. 나쁜 자석이 되는 방법은 자신을 죽이는 것. 고든은 프레이져를 사랑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 마침내 나쁜 자석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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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29살의 친구들이 중간 중간 9살의 이야기, 19살의 이야기로 돌아가면서 전개된다. 그래서 처음 볼 때는 극을 따라가기 어려웠는데 고든의 동화 <나쁜 자석>을 통해 연극 <나쁜 자석>을 이해할 수 있었다. 프레이져는 29살이 되어 현실을 마주하기 힘들어하고 계속해서 고든을 생각하며 극도의 우울증 증세를 보인다. 고든이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리고 결과, 이에 따른 프레이져의 남은 생은 너무나 그들에게 버거웠던 것 같다. 초등학생이 견디기 버거웠고, 19살 청소년이 견디기 버거웠고, 그런 고난을 겪고 된 성인이 견디기에 너무 힘든 상황이었다. 마지막까지 그들이 너무 안타깝고 안아주고 싶었다.

 


29살의 폴, 앨런, 프레이져



29살 재회한 그들,, 3명 모두 각자의 사고관이 뚜렷하다. 그래서 더 싸우고 갈등을 겪는다. 연극을 보며 폴이 정말 나쁘다고 느껴졌는데, 지나고 보니 그는 그냥 현실의 눈을 가진, 약간의 사업수완 능력이 있는 청년이었다. 친구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고, 그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싶어 했다. 여자 문제로는 나쁜 사람이 맞긴 하지만, 그가 고든을 위하는 방식에 대해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아니다.


앨런은 정말 착하고 친구들을 많이 생각하는 청년이다. 슬퍼하는 친구를 위해 소시지를 준비하고, 친구들이 웃을 수 있도록 노력하며, 눈치를 많이 보며 그 나름의 방식으로 친구들을 대한다. 한없이 친구들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그의 모습이 연극이 끝나고, 더 슬프게 기억에 남는다.


극의 엔딩, 고든을 두고 갈등의 절정에 다다르는 친구들을 말리기 위해 노력하며 항상 웃는 앨런은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한다. 그에게도 말 못 할 아픔이 있었지만 친구들을 위해 웃으며 그들을 반기고 대하는 것이 너무 슬펐다.

 

그리고 고든을 위해, 우리 4명을 위해 만든 꽃비 기계가 터질 때, 내 심장도 멎는 기분이었고 나의 감정도 함께 터졌다. 꾹꾹 담아오던 감정들이 순식간에 꽃비가 내리자 나도 모르게 흘러넘쳤다. 끝까지 친구들을 생각하는 앨런이 너무나 마음 아팠고, 꽃비가 내리는 것을 상상했던 고든이 생각나 마음 아팠고, 고든의 이야기가 펼쳐진 그 속에서 꽃비를 바라보는 프레이져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연극을 순간 순간 볼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조각 맞춰지듯 꽃비 내릴 때 온전히 느껴졌고 다시금 생각하니 배로 감정이 커진 것 같다. 늦게 이 연극을 본 게 후회가 되었다. 용바위에 묻어뒀던 타임캡슐처럼, 나도 어릴 적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고 연극 <나쁜자석>도 나중에 올라오면 다시 한번 꺼내보고 싶다. 그 때는 지금과 또다른 감정을 느끼겠지? 지금 이 감정, 분위기도 잘 간직해둘 것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생각나는 작품이 있는데 이 <나쁜자석>은 꽃비가 내릴 때 떠올릴 나의 연극이 되었다. 


난생처음 느끼는 아름다움

하늘은 꽃잎들로 가득해요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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