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24시간의 예술, 안봐도사는데 지장없는 전시 [전시]

일상을 예술로, 예술이 일상으로!
글 입력 2019.05.15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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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을 내어 예술을 보러 가는 것에는 여유가 필요하다. 시간이든 금전이든 어느 정도의 여유로움이 예술로, 사색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많은 현대인이 눈코 뜰 새 없는 일상을 보내면서도 예술을 찾는다. 대체 먹고 살기도 바쁜 우리에게 ‘예술’이란 어떤 의미이길래? 굳이 어디론가 떠나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예술을 느낄 순 없을까? 또 일상 어디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그 해답을 말하기 위해 서울미술관은 이 전시를 기획했다.

이 대장정의 시작, <안봐도사는데 지장없는전시>는 하루동안 그저 스쳐 가는 순간들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를 시각화한 전시이다. 나는 전시를 보러 가기 전에 기획 의도를 읽고 놀랐다. 일상을 예술로 표현한다는 것이 말로는 간단하고 쉬워 보이지만 정말 어려운 작업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이나마 현대미술을 전공한 내게 가장 어렵던 숙제가 바로 일상을 예술로 승화하는 것이었다. 차라리 비장하고 웅장한 공상 판타지를 작업으로 풀어내는 게 더 쉬울지도 모른다.

이제는 예술을 보는 대중의 안목이 높아서 작가만의 상상을 예술로 풀어낸 것보다 모두가 알고 친숙한 ‘일상’이란 재료를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이 더욱 머리 아픈 일이다. 게다가 색다른 관점이 없으면, 어디서 많이 본 방식이라면 곧장 진부하다는 평을 얻는 것이 ‘일상’에 관한 예술이다. 해서, 서울미술관과 젊은 작가들이 내건 ‘일상의 예술’이란 주제 선정이 꽤 호기롭게 보였다.





전체적인 전시의 인상은 ‘스토리 텔링’이었다. 아침-낮-저녁-새벽으로 구성된 공간은 그 시간대의 컨셉에 맞게 꾸며졌다. 작품들을 마주하기 전 바라보는 시계로 지금이 어느 쯤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한 센스가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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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황선태


어스름한 새벽의 찬 공기를 마주한 듯하다. 아니면 마치 해가 뜨는 것 같다. ‘아침’ 구역에 전시된 황선태 작가의 작품 말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황선태 작가의 작품들이 돋보인 구역이었다. 그의 작업은 드로잉과 유리 위로 LED 빛을 활용하여 햇빛이 공간에 스며드는 장면을 표현한다. 그는 조명이란 미래지향적인 재료를 가지고 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데 탁월하다. 그의 작업 앞에 서면 ‘햇살이 이렇게 예뻤나?’ 싶다. 그러다 어딘가 아련해진다. 창살 사이로 스며든 햇빛이 서사가 되고 묘한 감정을 일으켜서 감상에 젖는다. 그의 작업은 참 신기하게도 이른 아침, 낮, 저녁, 새벽 모두를 아우른다. 하지만 이 작업을 아침에 배치하여 밝아오는 태양과 맞이할 미래를 향할 설렘을 극대화한 것은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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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 문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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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낮’ 구역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존재로 가득 차 있다. 아직 일행이 오지 않아 혼자인 존재들은 낱장의 천 속에서 한편으로 가장 여유롭기도 하다. 곧 올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혼자라는 것에 겁먹지 않고 의기소침해지지 않는다. 그저 각자 할 일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행인 구경을 하는 것이 딱 오후의 풍경이다.

그리고 그 옆, 벤치 하나가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 옆에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척 해보라는 뜻일까. 물론 그냥 앉았다 가라는 의미겠지만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배치였다. 전시장 곳곳에 센스가 넘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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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 민족


그리고 이 구역 한켠을 메운 포스트잇은 ‘배달의 민족’과 협업한 작업이라고 한다. 사실 현대 한국인을 말할 때 배달을 빼놓으면 섭섭하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배달 서비스와 그것이 익숙해진 일상을 전시장으로 들였더니 색달랐다. 배달의 민족은 자주 접속해서 음식을 시켜 먹던 어플 중 하나였는데 전시라는 공간에서 마주하니 낯설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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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0, 오쿠야마 요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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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연히 어두워진 전시장 조명을 보니 ‘저녁’ 구역이었다. 저녁 7시, 퇴근길 버스에 올라 창밖을 바라보면 아직도 고층 건물에 불이 켜진 곳이 많다. 그럴 때마다 덩달아 감정이입을 해 안쓰럽고, 곧 나의 미래가 될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행복해야 할 발걸음이 피곤에 찌들어 더욱 무거운 것이 나만 그런 것은 아닌가 보다. 왠지 이 구역도 그런 기분이었다. 언뜻 피카소의 그림처럼 보이는 회화작품부터 버려진 재활용품을 실로 엮어 새로운 디자인을 연출한 작업, 전면에 배치된 큰 거울까지 감성적이다.

영화의 명대사들을 인용해 새겨놓은 구조물들을 보며 격하게 공감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한 사진 앞에서 발길을 멈췄는데, 오쿠야마 요시유키의 작업이었다. 불현듯 이루지 못한 첫사랑이라도 생각날 것 같은 서정적인 사진들이 막 차오른 해질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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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 가버린 씁쓸함과 새벽공기의 센치함이 만나면 이상하게 책을 읽고 싶다. 가끔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종이책을 넘기는 이유이다. 그런 내게 공감하듯 '새벽' 구역에는 출판사 ‘열린책들’의 감각적인 책표지가 전시됐다. 그리고 공간 한가운데를 차지한 거대한 와인색 소파와 그 뒤로 영화 포스터를 모은 설치 작업들이 있다. 이 영화 포스터들을 보려면 작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이것은 내내 평평하던 전시장 바닥에서 벗어나 중력을 거스른 유일한 공간이었다. 시각적으로만 새벽을 표현한 게 아니라 반질반질한 소파에 앉는 촉각과 계단을 오르내리는 몸의 움직임까지 유도해낸 설계가 몽환적인 새벽 같았다. 유달리 공상적이고 쓸데없는 잡념으로 가득 찬 때에 꾼 꿈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것같은 공간이었다.

*

<안봐도사는데 지장없는전시>가 말하고자 했던 일상 속 ‘예술’이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내가 이 전시를 보고 생각한 대답은 ‘애틋함’이다. 이 전시를 보고 갑자기 삶의 위엄, 수명의 유한함을 깨닫고 진리를 탐구하는 진중한 사색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상의 이면을 보고 느낀 색다른 감정과 익숙해서 등한시하던 찰나가 이토록 애틋한 것이었는지를 느꼈다.

이 순간도 메모장을 키면서 이미 과거가 된 것처럼, 바꿀 수 없는 진리 속에서 나는 멈출 수 없는 하루하루가 안타깝다. 그래서 나는 예술을 찾는다. 나처럼 시간이 아쉬웠던 머나먼 옛사람들이 시간을 잡아두려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었을 것 같아서. 그리고 이날, 후반부를 향해 달려가는 예술의 끝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도전하는 현대미술을 만났다.

우리는 일상을 예술이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한순간의 예술들이 모여 소우주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찰나를 안타까워하고 아름답다 여기며 일상을, 인생을 예술로 살아가야 한다. 이 전시가 내게 말한 것은 그것이다. 일상의 곳곳을 보세요. 꾸준히 관찰하세요. 아픈 일상도 아름답다 여기며 살아가세요. 내게 속삭였다.




[장재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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