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첫 오페라 : La Cenerentola [공연예술]

신데렐라 아닌, La Cenerentola
글 입력 2019.05.15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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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는 내게 친숙하지 않은 장르다. 평소 ‘공연 덕후’를 자청하면서도, 장르가 주는 무게감과 비싼 푯값 덕에 정작 오페라 공연은 한 번도 관람해 본 적이 없었다. 스토리와 음악이 있다는 점에서 뮤지컬과 비슷하면서도, 극 전체가 생소한 언어와 고전적인 이야기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뮤지컬보다는 조금 더 이해하기 힘들고 지루할 것으로 생각했다.

 

오페라에 관해서는 이토록 문외한이었던 나의 첫 오페라는 밴쿠버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만난 ‘La Cenerentola’다. ‘La Cenerentola’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데렐라를 원작으로 한 로시니의 오페라로, 평소 가지고 있던 오페라에 관한 선입견을 깔끔하게 없애 준 작품이다.


지루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작품은 위트가 넘쳤고, 자막을 굳이 읽지 않아도 배우들의 노래와 표정 연기를 통해 작품의 흐름이 깔끔하게 전달되었다. 또한, 신데렐라라는 소재에서 오는 진부함을 느낄 새도 없이, 나는 이 생기 넘치고 아름다운 145분가량의 공연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생기 넘치는 유머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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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를 한 번도 접해 본 적이 없었던 사람으로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바로 작품의 유머 감각이었다.

계부 ‘돈 마그니피코’는 굵고 강한 목소리로 과장된 동작을 반복하며 탐욕스러우면서도 우스꽝스럽게 표현되고, 이복언니 ‘클로린다’와 ‘리스베’는 높은 소리를 속도감 있게 내고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동작을 반복하며 얄미우면서도 한없이 가벼운 존재로 표현된다. 또한 왕자인 ‘돈 라미로’가 시종인 ‘단디니’와 옷을 바꾸어 입고 하인 행세를 하는 장면에서는 계부와 이복 언니들이 왕자 행세를 한 하인에게 아양을 떨고 하인 행세를 한 왕자를 못살게 구는 모습이 익살스럽게 그려진다.

 

그들은 동화에 하나쯤 있는 진부한 악역이면서도 극에 생기를 돌게 하는 활력소다. 왕자가 하인의 옷을 벗고 자신의 정체를 밝혔을 때 느껴지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도, 어찌 보면 그들의 부산스러운 어리석음 덕이다. 왕자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충실한 시종들과 왕자 행세가 익숙하지 않은 단디니의 어색한 모습도 볼만 하다. 오페라라면 괜히 심각하고 어려운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내게 위트와 생기가 넘치는 이 모든 장면은 꽤나 신선하고 즐거운 충격이었다.


  

신데렐라 아닌 La Cenerent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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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신데렐라 스토리’라 하면, 가난한 여주인공이 부잣집 도련님을 만나 인생역전에 성공하는 진부한 이야기가 떠오를 것이다. 마음 착하고 아름다운 신데렐라가 요정 대모와 유리 구두를 만나 왕자와의 결혼에 골인하는 수동적이고 우연한 로맨스. 한때는 ‘신데렐라적’ 여주인공의 인생 역전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지만, 대유행을 타고 너무나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로 변주되어 쏟아져 나온 탓인지 신데렐라 로맨스는 이제 대중에게 조금은 진부하고 재미없는 소재가 되었다.

 

하지만 훗날 ‘신데렐라 스토리’가 진부하다는 오명을 쓸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 이 작품의 신데렐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리 구두를 흘리는 것이 아니라 왕자에게 직접 팔찌를 주며 자신을 정말 사랑한다면 날 찾아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왕자로 변장한 시종의 춤 제안을,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며 거절하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신데렐라는 스스로 사랑을 선택하고 시험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데렐라보다 당차고 능동적인 모습으로 사랑을 이루어내는 모습이다.
 

또한 ‘La Cenerentola’에는 악랄한 계모도, 마법을 부리는 요정 대모도, 반짝이는 유리 구두도 없다. 원작 ‘샹드리옹’을 충실하게 재현한 이 작품에서는 요정을 철학자로, 유리 구두를 팔찌로 변형하여 마법적 요소를 배제했으며, 신데렐라와 왕자의 감정적 교류와 선택에 집중하며 신선하고 위트 있는 신데렐라 로맨스를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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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단연 음악이다. 마이크 없이 사람의 목소리가 이토록 크고 아름답게 울릴 수 있다는 사실이 오페라를 처음 접한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고, 극의 모든 이야기를 대사 없이 노래로, 그것도 이탈리아어로 부르는데도 등장인물들의 모든 감정과 상황이 바로 내게 전달된다는 점이 정말 신기했다.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음정과 박자, 그리고 배우들의 감정이 더해져 텍스트에 대한 이해 없이도 등장인물들의 기쁨과 슬픔, 감동, 환희와 같은 감정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이 오페라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는 오페라와 더 자주 만나게 될 것 같다.



[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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