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리고 그곳에 해적들이 있었다 - 해적이야기 하나 [공연예술]

뮤지컬 <해적>
글 입력 2019.05.16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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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관련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공연 후기를 쓰는 거야.

어떻게 쓰는 거지.

일단 첫 장을 쓰는 거야.

뭐부터 써야 하지.


극장 후기? 아냐.

공연 내용? 아냐.

배우 평가? 아냐.

보이는 걸 쓰면 돼.






‘해적’. 보통 해적이라는 단어를 보면 수염을 길게 기르고, 머리엔 검은 두건 같은 걸 쓰고, 애꾸눈 안대에 칼을 들고 있는, 무시무시한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보통은 ‘캐리비안의 해적’과 같은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고, 필자 역시 이 극을 접하기 전까지는 이와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애초에 해적과 같은 단어를 많이 접할 경로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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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미지가 주류인 ‘해적’과 ‘낭만’이라는 단어가 공존할 수 있을까? 뮤지컬 <해적>에서는 가능하다.






17살 루이스의 아버지는 해적이다. 매번 ‘이번에 마지막 항해’라고 말하며 떠나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루이스를 남겨두고 떠났다.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는 계속 술만 마셨다. 그리고 해먹에 누워 그대로 영원히 잠이 들어, 매번 마지막이라고 했던 항해는 정말로 마지막 항해가 되어버렸다.


홀로 남겨진 루이스에게 캡틴 칼리코 잭이 찾아왔다. 아버지와 함께 배에 탔던 선장 잭. 잭은 아버지의 유품을 찾는다. 정확히는 유품 사이의 장미가 그려진 종이, 로즈 아일랜드로 향하는 지도를 찾는다. 보물섬 지도! 루이스는 유품을 찾기 위해 자신을 찾아온 잭과 함께 바다로 떠난다. 아버지가 매번 향하던 그 길을 이제는 자신이 걷기 시작한다.


뮤지컬 <해적>은 크게 네 인물이 등장한다. 주인공 루이스, 캡틴 잭, 총잡이 앤, 칼잡이 메리. 특이한 점은 네 인물을 두 명의 배우가 소화한다는 것이다. 한 배우가 루이스와 앤을 동시에 맡고, 다른 배우가 잭과 메리를 연기한다. 그리고 가끔 등장하는 늙은 선원 하워드를 루이스/앤 배우가, 아버지 케일럽 역은 잭/메리 배우가 분하여 나타난다. 즉, 기본적으로 한 배우가 1인 2역, 혹은 그 이상을 연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앵무새 소리도 낸다.)


서사도 서사지만, <해적>은 그 인물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 인물 개인의 서사가 두드러지는 극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글은 중심인물인 루이스, 잭, 앤, 메리 순으로 적어나가 보려고 한다.




01. 루이스




아버진 어떻게 평생 해적선을 탔을까.
일 년에 한 번 집에 와도 해먹 위에서 잠을 잤어.
떠나갈 때마다 거짓말을 했지.
이번이 마지막 항해라고.
아버진 어떻게 평생 거짓말을 했을까.
마지막으로 집에 와서 해먹 위에서 잠들었어.
새벽에 술병이 굴러떨어졌지.
영원히 영원히 잠들었어.



앞서 말했듯 어머니는 떠났고, 아버지는 마지막 항해에서 돌아온 뒤 영원히 잠들었다. 17살의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되어버린 루이스는 유서를 쓴다. 정말 죽으려고 쓰려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유서를 쓰자고 결심한 뒤, 바로 덮어버리니까. 하지만 유서를 쓰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17살의 루이스는 많이 어리고, 외로워한다. 아버지는 자신보다 바다를 더 사랑한다고 말하며 매번 떠났지만 그런 아버지조차 루이스는 사랑했기 때문에. 그러던 그에게 캡틴 잭이 나타난다. 그는 보물섬 지도를 가지고 떠나려 하고, 루이스는 아버지가 매번 나가던 바다에 자신도 가고 싶어 자신도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내 아들 루이스.

똑똑한 루이스.

나와는 다른 루이스.

소설을 쓰겠다고 학교를 그만둔 멍청한 루이스.



아버지 케일럽은 매번 아무도 보지 않는 항해일지를 쓰는 사람이었다. 해적들은 글을 아는 사람이 많이 없어 항해일지를 쓰든지 말든지 아무 상관 없을 텐데, 아버지처럼 루이스도 항해일지를 쓴다. 바로 어젯밤에는 유서를 썼지만, 잭을 만나 바다로 떠난 하룻밤 사이에 항해일지를 쓰고 있다. 어제와는 정반대로, 바다로 떠나면서 설레고, 꿈을 꾸게 되게 되지만 뭐 어떤가, 유서도, 항해일지도 보는 사람은 없을 텐데.




02. 잭




육지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


하나둘씩 해적선을 탔어.

어쩌다 늙어서 퇴역한 병사.

채찍이 무서워 도망친 노예.

재주가 없어서 쫓겨난 일꾼.

모험을 꿈꾸는 용감한 아이.

(...)

내가 보물을 찾는다면 작은 섬 하나 차지하고

뭔가 모자란 해적들의 지상낙원을 만들 거야.

육지에서도 쫓겨나고 바다에서도 길을 잃은

슬픈 해적들 모여 사는 그런 따뜻한 작은 섬에.





잭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허풍쟁이’다. 하지만 동시에 따뜻한 사람이기도 하다. 지옥에서 온 해적, 극악무도한 캡틴 칼리코 잭. 대외적으로 난 소문은 무시무시한 선장이지만, 실제로 그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선원들을 말로 다룰 줄 알고, 해적들의 지상낙원을 만들고자 한다. 극을 끝까지 본 관객들은 알 수 있다. 그는 생각보다 겁이 많고, 그래서 더 허풍쟁이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으며, 그렇기에 더 따뜻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퇴역한 병사, 노예, 쫓겨난 일꾼, 아이는 어쩌면 ‘해적답지 않은’ 해적들이다. 육지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당하였기에 그들은 해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잭은 이런 해적들이 해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지상낙원을 만들고자 한다. 그 역시 직접 사람을 죽인 적 없는, ‘싸움이 싫어서 괴로운 해적’이고, 임기응변과 처세술에 능하기 때문에 선장의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그리고 약간의 패션!) 잭은 어쩌면 본인도 해적답지 않기 때문에 그와 비슷한 길을 잃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용감하지 않아도 괜찮아.

무서우면 울어도 괜찮아.

목소리가 작아도 괜찮아.

꽃을 보고 설레도 괜찮아.

나의 마음속에 가장 완벽한 세상은 바다였어.




*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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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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