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로 철학하다, 연극 "낯선 사람"

글 입력 2019.05.16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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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낯선 사람>은 중국 의화단 운동을 소재로 한다. 의화단 운동이란, 1900년대 유럽 연합군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저항했던 중국 민중의 투쟁이다. 그러나 <낯선 사람>은 의화단 운동을 서술하는 연극은 아니다. 당시의 사건 자체를 보여주기 위한 시대극은 아니라는 얘기다.

사실 의화단 운동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역사다. 20세기 초 서양 국가들의 제국주의는 거의 모든 아시아 국가에게 영향을 미쳤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의 수탈을 겪은 우리나라로서는 온몸으로 와닿는 뼈아픈 역사다. 그러나 이 연극은 역사에 공감하고 아파하는 것을 넘어서, 좀 더 넓은 범위로 생각을 확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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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극은 과거 오스트리아 연합군 장교였던, 지금은 할아버지가 된 '울리히'와 손녀의 대화로 시작한다. 성악가인 손녀는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를 연습한다. 그런데 이 오페라의 내용이 묘하게 울리히의 과거와 겹친다. 혁명가를 좇는 경찰 스카르피아가 그의 과거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이어서 극은 잔인했던 그 과거로 돌아간다. 울리히는 중국인들에 무자비하게 사형을 집행하지만, 혁명가 '천샤오보'를 보고 극심한 혼란을 느낀다. 사형을 한 시간 앞두고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초연하게 소설을 읽는 모습이 울리히를 뒤흔들었던 것일까. 그는 결국 천샤오보를 놓아주고 만다.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서사의 틀은 계속해서 깨어진다. 울리히는 손녀와 대화를 하는 다정한 할아버지였다가, 분노하는 장교였다가, 심지어 마지막에는 환자가 된다. 극의 초점이 사건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울리히의 내면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오가는 장면들은 중국인들의 투쟁을 진압하던 그가 현재 어떤 일상을 살고 있는지 관찰하게 만든다. 즉,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충돌하고 분열하는 그의 내면을 따라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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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성실한 직업인"이었을 뿐이라며 열심히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는데, 내면 깊은 곳에서는 느끼는 죄책감 때문에 더욱 처절하게 자신을 변호한다. 제국주의라는 사회적, 시대적 배경에 종속되어 '개'가 된 그의 모습이 씁쓸했다. 사회에 '영향'을 받을 수는 있지만 완전히 '종속'되어 인간성을 상실해버릴 때, 울리히와 같이 되어버리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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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울리히는 명백한 가해자이다. 때문에 그의 갈등을 보여주는 것이 '그 역시 피해자'라는 식으로 인식하게 할 수 있다는 게 다소 위험하게 느껴진다. 현상금 때문에 병원에서 쫓겨나게 된 그가 살짝 가엾게 느껴졌을 때, 스스로 조금 놀랐다. 간호사가 마치 돈 때문에 그를 신고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오히려 간호사가 속물이고 울리히가 불쌍한 처지인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전범자를 신고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 말이다.

간호사가 전범자를 신고하는데, 왜 하필 "현상금을 노리고" 신고한 것처럼 연출했을까? 자본주의가 개인의 윤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까? 연극의 설정이 관객들로 하여금 그릇된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그 경계를 질문하고 싶었던 것인지 잘은 모르겠다.

<낯선 사람>은 확실히 쉽지 않은 연극이다. 주제뿐만 아니라 연출도 그렇다. 특히 울리히와 천샤오보가 대립하는 장면에서 그랬다. 무겁고 직설적인 대사가 소리치듯, 오랫동안 쏟아져서 다소 피로했다. 이 때문인지 굉장히 강렬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동시에 조금 지루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에 마땅히 고민해야 할 질문을 던져주었던 시간이었다. 앞으로 이 극단이 또 어떤 질문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낯선 사람
- 나는 분열한다, 고로 존재한다. -


일자 : 2019.05.10 ~ 05.19

시간
평일 19시 30분
토 15시, 19시
일 15시
(월 쉼)

장소 : 문래예술공장 박스시어터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주최/주관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공연시간
110분


[박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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