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재현의 이미지에 재현 불가능을 담다 - 에릭요한슨 사진전

초현실주의 기법을 '사진 예술'에 녹이다
글 입력 2019.05.20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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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현 이미지로서의 사진


    


1) 물체의 형상을 감광막 위에 나타나도록 찍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만든 영상. 물체로부터 오는 광선을 사진기 렌즈로 모아 필름, 건판 따위에 결상(結像)을 시킨 뒤에, 이것을 현상액으로 처리하여 음화(陰畫)를 만들고 다시 인화지로 양화(陽畫)를 만든다.


2) 물체를 있는 모양 그대로 그려 냄. 또는 그렇게 그려 낸 형상.


 

‘사진’의 사전적 정의는 이상과 같다. 눈에 보이는 이 순간을 ‘있는 그래도’ 담아낸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사진이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 현대미술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사실에 가까워질 수 있을 뿐, 사실 그 자체인 그림을 그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미술은 작가 개인의 독창성과 감정을 부각하는 방향으로 (인상파와 야수파, 입체파, 초현실주의파 등)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사진의 힘은 강력했다. 제한적인 공간 안에서 특정한 순간을 특정한 시간대에 고정시켰다. 무엇인가 존재했음을 물리적인 증거로 남긴다. 그러므로 사진은 재현(representation)의 이미지이다. 어떤 것보다도 물질세계를 사실적으로 포착한다.

 

초창기에 사진은 일종의 기록 매체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진과 예술을 융합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이러한 시도는 사진이 구현하는 사실성에서 기인하였다. ‘리얼리티(reality)’를 하나의 예술 기법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카메라 렌즈가 포착한 순간은 포착과 동시에 과거가 된다. 그것이 사진으로 인화되면 과거인 동시에 현재가 된다. 사진이 담고 있는 사건은 과거에 발생했지만 사진이 존재하고 있는 시점은 현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 예술은 회상이라는 문학적인 기법을 이용한다. 현재의 감상자로 하여금 과거의 순간에 몰입하도록, 적어도 사진 속의 순간을 머릿속에서 떠올리도록 한다. 이 때 감상자는 희로애락과 같은 일련의 감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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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현실주의’의 개입


 

하지만 모든 예술 사조이나 기법이 그러하듯 반항아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사진 예술의 주된 특징은 현재성과 사실성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세계를 벗어난 ‘초현실’적인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땅이 있어야 할 자리에 하늘이 위치한다든가, 비가 아닌 다른 물질이 하늘에서 떨어진다든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초현실주의라는 미술 사조가 사진이라는 매체에 개입했다고 보아야 한다. 르네 마그리트도 스스로를 사진작가가 아닌 화가로 칭했듯이 말이다. 다시 말해,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사진은 그림을 그릴 다양한 수단 중에 하나였다.

 

어쩌면 화가들은 이처럼 사진이 수단화되는 순간을 기다려왔을지도 모른다. 회화의 권위를 크게 손상시킨 주범이니 말이다. 얼마나 시기적절하게 등장한 미술 사조인가. 초현실주의 기법이 유행하면서 사진은 유용한 작업 수단으로 부상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현상이나 대상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표현하기에 적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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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는 스스로를 사진작가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사진은 회화 작품을 그리기 위한 도구 중 하나였다.



 

3. 에릭 요한슨 — 재현 불가능을 녹여낸 ‘사진작가’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초현실주의 기법을 사용하는 ‘사진작가’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들 사진의 공통점은 사진이 회화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진만으로도 초현실이라는 특징을 구현하고 있었다.


이전의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사진을 그림의 도구로 삼아 만들었던 작품들을 보자. 앞서 말했듯이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이 대표적인 예시다. 그의 작품은 분명히 전통적인 회화의 기법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림’이라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초현실주의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 보인다. 화가나 사진작가나 똑같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법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건 똑같다. 하지만 비현실을 그림으로 묘사하는지, 사진으로 묘사하는지의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에릭 요한슨은 후자에 해당하는 사진작가다. 전시 해설에도 나와 있듯 그의 사진 작품은 ‘합성’을 기본으로 만들어진다. 그중에서도 포토샵을 활용하여 이미지를 조작하는 방법이다. 포토샵은 이미지를 합성하기 위한 그래픽 툴인데, 기능이 매우 다양하고 정교하다. 그래서 섬세하게 작업하지 않으면 전문가들일지라도 ‘부자연스럽다’는 평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에릭의 작품처럼 주제가 완전히 다른 (ex. 육지가 배경인 사진과 하늘이나 바다가 배경인 사진) 사진들을 하나로 합칠 때 더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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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에릭의 포토샵 실력은 아주 탁월해서,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현실 그 이상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시공간과 주제 등, 모든 면에서 공통점이 없는 사진들이 그의 작품에서는 하나의 세계로 합쳐진다.


이처럼 그의 사진은 리얼리티와 초현실 모두를 담고 있다. 카메라 렌즈로 재현할 수 없는 것들이 마치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하나의 사실처럼 드러난다. 동년배 사진작가들 중에 그가 주목 받는 사진작가인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사진 특유의 사실성과, 미술 사조의 초현실주의 기법을 동시에 ‘사진 작품’에서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예술의전당에서 회화전이 아닌 사진전이 열리는 건 오랜만이다. 그것도 한 작가의 개인전이. 그래서 처음에 소식을 듣고 다소 놀랐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놀랐던 이유에는 내 편견이 한 몫 한 것 같다. 나도 모르게 회화가 사진보다 더 ‘예술다운’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여태껏 나는 사진이 작품보다는,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프리뷰를 쓰면서 깨달았다. 내가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소 편협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동시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사진전을 계기로 예술 작품이 무엇인지 다시금 정의해볼 수 있겠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있는지, 예술 작품으로 불릴 만한 사진은 무엇인지. 그동안 의문을 품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그리고 서로 다른 공간이 하나의 사진 안에서 공존하는 것을 목격하고 싶다면. 오는 6월 5일부터 열리는 본 전시회에 방문해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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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요한슨 사진전
- Impossible is Possible -


일자 : 2019.06.05 ~ 2019.09.15

시간
오전 11시 ~ 오후 8시
(입장마감: 오후 7시 20분)

*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 휴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티켓가격
성인 12,000원
청소년(만13세-18세) 10,000원
어린이(36개월 이상-만 13세) 8,000원

주최/주관
씨씨오씨

후원
주한스웨덴대사관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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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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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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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nonymous
    • 프리뷰의 수준이 놀랍네요. 단순히 작품 소개와 감상 늘어놓기에서 머무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사진이 회화에 끼친 영향과 초현실주의를 중심으로 에릭 요한슨의 작업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맥락화해서 제시해준 부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마지막에 통렬한 자기성찰과 비판까지 :) 또 글 읽으면서 호흡이 경쾌해서 좋았습니다. 툭툭 짧게 던지는 문장들을 읽어 가는 일이 마치 탁구 랠리를 보는 것 같아서 즐거웠네요. 항상 좋은 글을 생산해 내시려고 하는 에디터님의 노력이 너무 잘 보이는 것 같습니다.:) 더 고생하셔서(?) 좋은 글 계속해서 써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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