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방랑하는 영혼의 이야기, 남미 히피 로드

800일간의 남미 방랑
글 입력 2019.05.21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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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효 작가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카메라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다. 대다수의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지구 반대편에 실존하는 우리에게 '이국적인' 세계다. 과연 그가 비추는 투명한 렌즈 속에는 남아메리카만이 가진 태초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높다란 산, 이름 모를 들꽃들이 핀 길가, 하얀 구름이 점점이 떠다니는 푸른 하늘, 수채화처럼 번져나가는 불타는 저녁노을, 찬란한 문명의 흔적, 그리고 사람들이 있다.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의 포커스를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사진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리고 작가가 든 카메라의 포커스는 온전히 '사람들'에 맞추어져 있다.


그 사람들은 한 손에는 흰 종이에 말아 담배처럼 만든 마리화나가, 어깨에는 평화주의 타투가, 등에는 저글링 공과 디아블로 또는 직접 손으로 만든 팔찌와 목걸이들이 가득한 낡은 배낭이, 몸에는 벌써 오래전에 빛바랜 옷들이, 발에는 헤어진 샌들이, 그리고 얼굴에는 화사한 미소를 머금었다.


작가가 바라보는 렌즈 속에는 분명 풍요로운 자연의 모습이 엿보이지만, 렌즈의 포커스는 애정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이 사람들을  따뜻하게 조명한다. 그렇다. 이 책의 주인공은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작가가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은 '히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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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2년간 책에도 나와있지 않은 장소와 마을을 찾아다니며 남미 구석구석을 쏘다녔다. 끊임없이 매일매일 사람을 만나고 금세 친구가 되고 대화하며 말동무가 되었다. 그리고 히피들은 작가가 남미를 여행하며 진짜로 살아있음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가장 큰 행복의 요인이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선 자본주의와 강박적인 소유 관념에 찌든 각박한 현대사회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자유로움과 진정한 무소유 정신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에 대한 자세한 정보나 유명한 관광명소들 소개를 기대하고 이 책을 선택한다면, 당신은 다른 책을 집어 들어야한다. 작가는 비싼 호텔에서 지내며 관광명소를 찾아다니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인증샷만을 남기는 여행이 아니라, 가장 싼 숙소를 찾아다니고 길 위에서 진짜 현지인들을 만나고 일하며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곳만을 찾아다니는 진정한 의미로써의 '여행'을 했기에.

그 무엇보다도, 지구 반대편에서 생생하게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형태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세마포로'가 있다. 이들은 주말에는 시장으로, 평일엔 신호등 앞 건널목으로 출근해 건널목에 파란 신호등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건널목을 건너는 사이 차량들 앞에서 묘기를 부린 후, 운전사들은 멈춰 있는 동안의 지루함을 떨쳐준 이들에게 동전을 건넨다. 세마포로는 매일 신호등 앞에서 일하고 낮에는 공원에서 놀거나 숙소에서 쉬다가 다시 일을 하고 또다시 어디론가로 떠나는, 방랑과 노동이 조화를 이룬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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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대학 영어 수업 시간 때 교재에서 홈리스에 관해 읽은 적이 있다. 집도 없고, 자동차도 없고, 돈도 별로 없지만 발길 닿는 대로 걷고, 자기가 머무는 곳이 집이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집시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홈리스들이자,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인간상과는 정반대에 서있다. 하지만 그저 '이렇게도 살아가고, 저렇게도 살아가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른 삶의 양식을 가진 것 일뿐. 가진 것은 별로 없지만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정신적인 풍요로움으로 가득 차 하루하루 즐겁고 명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부러울 정도였다.

작가의 재기 넘치는 언어를 통해 또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었다. 현대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집시들. 그리고 집시의 눈으로 바라보는 현대인들. 집시가 아닌 나야 물론 전자의 경우다. 현대인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집시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떠돌아다니기만 하는 홈리스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히피의 눈으로 현대인들을 재조명하기도 한다. 걷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이나 학교에서 보내고, 길 위에서 천천히 걷는 삶의 여유가 없다 보니 차량 안의 승객이 볼 수 있을 만큼 비대하게 커진 글자가 적힌 간판들이 즐비한 고층 빌딩들이 늘어선 모습.

이 구절들을 읽으니 새삼 입안이 썼다. 나 역시 반쯤 해동되다 만 동태 눈알 같은 눈을 게으르게 뒤룩거리며 달리는 버스 차창 밖의 똑같은 풍경들을 감흥 없이 쳐다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책을 읽으며 상상을 하고, 작가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색다른 경험을 하면서 크나큰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어디론가로 떠나고 싶어졌다. 꼭 남미가 아니더라도,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이곳을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새로운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정처 없이 걷고 경험해보고 싶어졌다. 이 책은 어디론가로 방랑하고픈 순수한 욕망을 가슴 깊은 곳에서 싹틀 수 있도록 해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 유튜브에서 우연히 접하게 된 밴드 'Gogol Bordello'의 노래, 'Wonderlust King'이 떠올랐다. 'Gogol Bordello'는 1999년 미국 맨해튼에서 결성한 밴드로, 밴드 사운드의 상당 부분을 펑크와 덥, 그리고 집시음악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특이하게 밴드를 이끄는 멤버들이 우크라이나, 러시아, 에티오피아, 에콰도르, 미국 등 다양한 국적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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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 딕셔너리에 따르면

Wonderlust라는 단어의 뜻은

the desire to be in a constant state of wonder,

즉 끊임없이 궁금해하는 욕망 상태를 뜻한다.



그래서 Wonderlust King이라는 노래의 제목이 작가의 끝없는 호기심과 방랑 정신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노래 가사 역시 일맥상통한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가사 구절을 들고 와봤다. 직접 해석/의역 했다보니 번역상 오류가 있을 수도 있으니 너른 양해 바란다. 아마 이 책을 읽고 나면 이 가사의 의미를 더욱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I traveled the world looking for understanding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Of the times that we live in
세계를 여행했어
Hunting and gathering first hand information
사냥하고 직접 정보를 얻어가며
Challenging definitions of sin
죄악이 가진 정의에 도전하면서 말이야

I traveled the world looking for lovers
나는 가장 아름다운 연인을 찾아
Of the ultimate beauty but never settled in
세계를 여행했지만 결코 정착할 수 없었어

I'm a wonderlust king

나는 호기심의 왕이야

I stay on the run, let me out, let me be gone

나는 계속 도망다니지, 날 내보내줘, 날 놓아줘

In the world beat up road sign

세월의 풍파를 맞은 도로 표지판 사이에서 말이야
I saw new history of a time, new history of time
나는 한 시대의 새로운 역사를 보았지, 한 시대의 새로운 역사를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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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히피 로드
- 당신은 잘 지내고 있나요? -

지은이 : 노동효

출판사 : 나무발전소

분야 :
문학, 여행에세이

규격 :
신국판(140*210)

쪽 수 : 380쪽

발행일
2019년 04월 24일

정가 : 17,000원

ISBN
979-11-865366-36 (03810)





저자 소개 - 노동효

지구 풍경과 삶의 베일을 벗기기 위해, 2~3년 주기로 대륙을 옮겨 다니며 여행한다. 위시리스트 따윈 만들지 않는다. 해버리면 되니까. 현재 장기체류 후 이동(Long stay & Run) 기술과 저글링, 공중 외줄타기를 연마 중이다. 지구를 몸에 다 새기고 나면 화성으로 갈 것이다. 그전에 2년 4개월간 떠돈 남아메리카 여행기로 리처드 브라우티건에게 진 빚을 갚는다. 4차산업혁명시대에도 히피는 살아남을 것이다, 길이 존재하는 한.

<길 위의 칸타빌레>, <로드 페로몬에 홀리다>, <길 위에서 책을 만나다>, <푸른 영혼일 때 떠나라>,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안식처 빠이>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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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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