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스 리틀 선샤인, 패배자 가족의 사랑스러운 모험기 [영화]

마이너에 대한 고찰 12
글 입력 2019.05.22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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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오피니언에는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올리브의 ‘리틀 미스 선샤인’ 대회를 향한 로드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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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합지졸. 이 영화의 주인공인 올리브네 가족을 설명하기에 이것보다 적합한 단어가 있을까? 헤로인 복용으로 양로원에서 쫓겨난 할아버지와 말도 안 되는 9단계 성공법으로 책을 만들어 팔려고 하는 아빠 리차드. 그리고 그런 리차드를 혐오하는 엄마 쉐릴과 전투 조종사가 되기 전까지는 말을 하지 않기로 선언한 아들 드웨인. 자칭 미국 최고의 프루스트 석학이자 게이 애인에게 차인 후 자살을 기도한 외삼촌 프랭크. 그리고 이 개성 넘치는 구성원 속에서 미인 대회를 꿈꾸고 있는 막내 올리브까지. 누구도 평면적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이 가족은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리틀 미스 선샤인 대회에 출전하고 싶어 하는 올리브를 위해 제대로 굴러가지도 않는 차를 몰며 여정을 시작한다.

시작부터 매끄럽지 않았던 이 여정에는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한다. 리차드가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9단계 성공법 책 발간은 취소되고, 프랭크는 길 위에서 옛 애인을 만나 더욱더 초라함을 느낀다. 전투 조종사가 되고 싶어서 9개월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드웨인은 고물 자동차 안에서 자신이 색맹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FUCK!”이라는 단어로 묵언 수행을 마친다. 그리고 가족들은 여정 중에 할아버지의 임종을 맞이하기도 한다.

우여곡절 끝에 올리브네 가족은 리틀 미스 선샤인 대회에 도착하고, 올리브는 무사히 대회에 출전한다. 그러나 이곳의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온갖 것들로 치장하고 있는 아이들은 마치 인간이 아닌 ‘인형’ 같은 모습을 하고,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각자의 ‘미인스러움’을 뽐낸다. 할아버지의 장례 절차도 미루고 달려온 미인 대회였건만, 올리브 가족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세상의 규격에 맞지 않는 올리브와 올리브 가족이었기에 당연히 그들에 대한 미인 대회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급기야 올리브를 끌어내리라는 상황 속에서 이 가족은 무대에 올라가 다 같이 우스꽝스러운 춤을 춰버린다.



전형적인 이야기, 그럼에도 이 영화가 반짝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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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적인 캐릭터들의 예상 불가능한 행동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들이 하는 모든 선택에 우리는 크고 작은 놀라움을 느낄 수 있지만, 그중 최고는 역시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처하는 법이었다. 올리브와 함께 리틀 미스 선샤인을 가장 고대해왔던 것은 할아버지였다. 그런데 여정 도중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의 장례 절차를 모두 밟으면 오후 3시에 시작하는 대회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지금까지 달려온 목표를 위해, 그리고 할아버지가 원했던 올리브의 대회를 위해, 이 가족은 할아버지의 시체를 몰래 빼돌려 트렁크에 싣는다. 일단 대회를 끝내고 장례 절차를 밟자는 결론이었다. 이들의 황당한 선택은 올리브 가족이기에 개연성이 생긴다. 각자 특이한 결을 가진 그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이 이야기를 크게 본다면 꽤나 전형적이다. 모두 하나 이상의 문제나 결점을 가지고, 그다지 화목하지는 않은 가족이 어떤 계기에 의해 공동의 목표를 가지게 되고, 그로 향하는 여정에서 화합하고 화해하는 이야기. 이러한 이야기를 우리는 분명 어딘가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전형적인 이야기가 우리에게 그토록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큰 이야기 내부의 디테일들이 모두 살아있고, 입체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 움직이는 디테일은 황당한 이야기에 타당한 이유가 되어주기도 한다.


진짜가 호소하는 감동

이 영화에 ‘즙을 짜는’ 감동 따위는 없다. 때로는 시니컬하게, 때로는 웃프게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그릴 뿐이다. 하다못해 슬로우 모션으로 잡은 장면조차 없다. 우리가 흔히 ‘신파’라고 말하는 영화였다면 마지막 장면, 모두가 춤을 추는 장면에서 슬로우 모션을 잡으며, 서정적인 노래를 깔았을 법도 한데, 이 가족에게 그런 것을 허용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날 것 그대로 우스운 춤을 추고, 그런 그들의 마지막은 모두가 사이좋게 경찰서를 가는 것이었다. 있는 그대로를, 혹은 그것보다 과장된 우스움을 보여주지만 우리가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비웃음이 아니라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오합지졸들의 성장, 그리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우리에게도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모험은 가족을 성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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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내 ‘승자’의 조건과 타이틀에 집착하는 리처드이지만, 정작 그의 가정 구성원들은 전부 다 패배자에 가깝다. 입을 뗀 드웨인은 자신의 가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혼! 파산! 자살!
전부 다 패자들이야!”


그렇다. 이들 중 일반적인 시각에서 성공한 승자는 없다. 말하자면 패자들의 집단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패자들’의 이야기를 1시간 40분 내내 보고 있었다면 어떻게 마음 깊숙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겠는가? 그에 대한 답은 영화 내내 쓸모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리처드의 9단계 성공법에서 찾을 수 있었다.


“세상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을 뿐이야. 
차이가 뭔지 알아?
승자는 포기하지 않는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계기와 과정을 거친 ‘미인 대회’라는 목표였지만 올리브 가족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각자는 부딪히고 깨지지만, 꿋꿋이 앞으로 나아간다. 크게 보면 이들은 여정을 포기 하지 않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서로를 포기 하지 않기도 했다. 다시 말해, 서로 미워하는 한이 있어도 누군가가 힘들어할 때면 그 방식이 조금 이상할지라도 다른 누군가가 옆을 지켜줬다. 한 순간에 오랜 꿈을 잃어버린 드웨인의 옆에는 아무 말 않고 등을 쓰다듬어주는 올리브가 있었고, 자신이 미인이 아닌 것 같아 의기소침한 올리브의 옆에는 진심어린 말을 해주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미인 대회에서 올리브가 비웃음을 당할까 걱정한 가족들은 다 같이 올라가 그 비웃음을 함께 받기도 했다. 때로는 서로를 물고 뜯었고, (그것이 설령 결정적인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보듬어주는 올리브 가족은 그 어떤 영화 속 가족보다도 현실적이고 따뜻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환상적인 결말 따위는 없는 모험이었지만, 우당탕 이어간 그들의 모험은 결국 그들을 성장시켰다.

앞으로 올리브 가족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에 대해 상상해보면, 솔직히 영화에서 나온 것과 별반 다를 것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 그랬듯 쉐릴은 리차드가 못마땅할 때가 있을 것이고, 드웨인은 한심한 눈빛을 거두지 않을 것이며, 프랭크는 또다시 자살 기도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해피엔딩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함께할 가족이기 때문이다. 쉐릴이 말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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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ever happens, we are family.”


[김윤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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