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저씨가 되기를 강요받는 당신 안의 소년을 위로해줘 [음악]

2019년에 다시 쓴 소년의 이야기
글 입력 2019.05.2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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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비의 ‘소년을 위로해줘’를 듣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은희경 작가가 장편소설<소년을 위로해줘>의 연재를 앞두고 쓴 글에서 소설이 동명의 노래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글을 읽으니 대체 어떤 노래이기에 은희경 작가로 하여금 몇 달 전 비행기에서 8시간 동안 울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는지, 듣는 동안 움직일 수 없게 했는지, 삼십 분쯤 내내 가슴 아프게 했는지 궁금했다. 소설을 시작하게 한 그 노래를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호기심에 노래를 틀자마자 흘러나온 암울하면서도 감미로운 멜로디는 단번에 내 귀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박또박하게 진심을 전달하는 정직한 랩은 나를 한순간에 키비의 팬으로 만들었다. 그 노래는 여태 내가 들어왔던 모든 노래와 전혀 달랐다. 힙합은 그저 거친 장르라고 생각해왔던 내게, 음악은 그저 흥을 돋우는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해왔던 내게 키비는 아직 소년으로 머물고 싶은 사람의 불안한 내면을 솔직하게 들려주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고, 10대라는 나의 나이에 취해있었다. 나 자신을 스스로 어린아이처럼 마냥 순진하지도 않고, 어른처럼 세상에 찌들지도 않은, 지적이면서도 빛나는 청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의 오만함에 노래 ‘소년을 위로해줘’는 그야말로 불길에 기름을 들이붓는 격이었다.

 

나는 키비의 음악을 좋아했지만 사실 그보다 키비의 음악을 좋아하는 나를 더 좋아했었다. 어린 나는 친구들이 모르는 음악, 보다 더 어렵고 심오한 가사를 듣는 나의 모습을 자랑했었다. 가사 속 소년이 지닌 슬픔의 무게도 전혀 모른 채 키비의 노래가 진정한 음악이라고 떠들고 다녔었다. 그렇게 나의 10대 시절은 나는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오만함과 그 오만함이 결국 설탕조각처럼 달콤하면서도 깨지기 쉬운 것이었다는 깨달음, 그 깨달음 뒤에 찾아온 열등감으로 범벅된 채 끝났다. 키비의 노래를 다시 듣게 되었을 때 나는 그 열등감에 늪에서 겨우 헤어 나온 성인이 되어있었다.

 

2019년에 다시 들은 ‘소년을 위로해줘’는 10대 시절의 나보다 여성성의 감옥에서 탈출하려는 지금의 내게 더 와 닿는 노래였다. 그 노래는 당시 내가 단편적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히 자라기 싫은 소년의 투정이 아니었다. 모든 소년을 어른의 세계, 즉 아저씨의 세계로 억지로 몰아넣고 개인이 지닌 특징은 거세한 채 남성성을 주입하는 세상에 대한 분노였다.

 

“하지만 내 주위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편하지 않아

그들이 내게 강요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남자스러움’ 말이야.

난 자꾸 그럴수록, 마냥 불쾌한 듯

찡그리다가 나중엔 그냥 웃지.“

 

노래 속 화자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남성성을 따를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남성성을 강요하기도 하는 사람들을 향해 끊임없이 거부감을 드러낸다. 나의 한 친구는 녹슨 지갑에서 돈을 꺼내며 여자가 돈을 쓰는 짓은 몹쓸 짓이라고 말하고 다른 친구들은 나에게 박력을 요구하고 친밀감의 표시라며 욕을 한다.

 

“난 남자래. 이로써 난 남과 내 것을 가르고,

만만해 보이는 녀석 위로 올라가 밟아야만 해.

그래야 내 안의 것을 찾을 수 있대.

방금 힘들게 스무고개를 넘어온 이때,

난 ‘아저씨’를 강요당하고 있어.

대체 나를 왜, 난 그냥 소년으로 남을래.”

 

노래 속 ‘나’는 그 세상에 대해 자신은 소년으로 남겠다고 외친다. 그러나 소년으로 남고 싶다는 나의 외침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소년의 울부짖음 따위 남자다움을 강요하는 세상의 견고한 벽을 뚫기엔 역부족이다. 나는 결국 머릿속에 머쓱해지는 느낌만 가진 채 그 행동을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이 어른이라고 부르는 남성성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곧 세상과의 불화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절벽 끝으로 몰아가던 결국 난

세상을 깨달았다며 내뱉는 허무함.

(너만은 지금처럼 변하지 말아줘)”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 ‘나’ 역시 그토록 되기 싫어했던 아저씨가 되어버렸다. 그런 나에게 남은 건 세상을 깨달았다며 내뱉는 허무함뿐이다.

 

어린 나는 이것을 남자들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누구도 내게 박력을 요구하지 않았고, 친밀감의 표시라며 욕을 하지도 않았고 자신보다 약한 적은 물리쳐야 한다고 가르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9년에 와서 다시 듣는 ‘소년을 위로해줘’는 많은 부분이 내가 겪어온 여자다움에 대한 강요를 가리키고 있었다.

 

“몸 여기저기에 검은 실이 올라오면서

내 가치에 대한 저울질이 시작되었어.”

 

몸 여기저기에 검은 실이 올라오자 사회는 내게 그 검은 실을 없애라고 말했다. 매체 속 연예인들이 그러했고, 주변의 여성들이 그러했고, ‘제발 그것 좀 어떻게 하라’는 같은 반 남자애의 한 마디가 그러했다. 남성에게 검은 실은 어른이 된다는 증거였고 여성에게 그것은 어른이 된 이상 용납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시간이 더 흐르자 안경을 쓴 나는 당연하게 렌즈를 끼고 눈 화장을 해야 했고 바지를 즐겨 입던 나는 유행하는 치마를 사야 했다. 아무도 내게 직접적으로 그래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 빼고 모든 여성이 그러고 있었다. 나는 그 모든 여성들이 하고 있는 모습에 가까워져야 했다. 그 가까워지는 노력으로 어느 날은 안 맞는 구두를 신고 나서 피를 흘리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내가 있었던 좁은 교실을 떠올려보았다. 돌이켜 보니 그 교실은 쉴 새 없이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이라는 이름의 총알을 쏘아 대던 전쟁터였다. 겨우 초등학생에 불과했던 아이들은 앉아서 공기를 하는 남자아이에게 여자 같다고 놀렸고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남자 같다며 놀렸다. 그 아이들이 모두 어른이 될 만큼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의 망령은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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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이 사회는 성장하는 아이에게 ‘이제 여자/남자 다 됐네.’라는 말을 쉽게 던진다. 왜 어른이 되면 남자다워져야 하고, 여자다워져야 하는 걸까? 왜 남자는 강해야 하고, 여자는 약해야 할까? 저마다 다른 특징을 가진 인간들을 모두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에 던져버리는 일차원적인 성 고정관념은 대체 언제쯤 사라질까?

 

지금도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의 심판은 계속되고 있다. 그 심판에 의해 개인이 지닌 고유의 특징은 해당 성별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무시된다.

 

“무엇다워야 한다는 가르침에 난 또 놀라.

우린 아마 이렇게 멍들어 가는지도 몰라.

큰 혼란, 물론 나를 이토록 많은 함정 속에

빠트려가는 건 바로 나 자신인 걸.”

 

무엇다워야 한다는 가르침은 성별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대입되어 우리를 괴롭힌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그 가르침에 의해 지배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는 사이 우리의 내면은 멍들어 가고 있다.

 

나의 정체성은 여자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이 깨달음을 얻게 된 지 겨우 몇 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나는 무엇도 아닌 ‘나’다운 나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이제 당신이 그 차례다. 더 늦기 전에 당신 안의 소년을 위로해주기 바란다.


 

P.S.


키비의 ‘소년을 위로해줘’는 2004년에 버벌진트와 함께 한 버전, 2005년에 키비 혼자서 부른 버전 두 개가 있다. 이 글에서 들려준 버전은 2005년 <soul company official bootleg vol.1> 앨범에 수록 된 키비 솔로 버전이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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