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극 "페이퍼" - 용기를 가져 [공연예술]

글 입력 2019.05.2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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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로가 차단되었던 1980년대.

정의와 진실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불법 인쇄물이 유일했다.

대중을 향한 선전수단 PAPER, P

 

한 남자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

한 남자의 반성에 대한 이야기다.



페이퍼_포스터.jpg
 
 

 

장진구의 마음



장진구는 20살 갓 대학생이 된 남자다. 사랑, 인간관계 등 모든 게 서툴기만 하다. 1984년 3월 8일 아무것도 모르고 길을 가다가 학생운동 시위를 하는 곳을 지나치게 되고 최루탄 연기에 정신을 못 차리던 도중, 박 양의 도움을 받고 살아남는다. 그녀에게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처음 느끼게 되고 그녀가 두고 간 책을 다시 돌려주기 위해 그녀를 찾는다. 버스 정류장에서 한없이 기다리고 어쩌다가 만나면 그녀에게 말을 걸지 못하고 놓치기도 한다. 계속해서 책을 돌려주기 위해 그녀를 찾았던 노력을, 그녀와 만나는 날을 노트에다가 상세히 기록한다.


그 노력 끝에 그녀를 따라가 그녀의 연희동 지하 페이퍼 제작소를 우연히 들리게 되고 그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된다. 전두환 정권이 언론의 자유를 막고, 보도지침을 내리며 진실을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는 정의와 진실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불법 인쇄물, 페이퍼를 제작하고 있었다.

 

장진구는 그녀를 사랑했고 좋아했다. 그리고 어쩌다가 ‘P'에 대해 적은 노트를 잃어버리고, 그 노트를 주운 강만철 형사가 이를 수상쩍게 여기고 조사를 한다. 진구는 그녀가 페이퍼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기에 경찰에게 그녀에 대해 정확히 말할 수가 없어서 거짓말을 한다.



비오는 3월 8일,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는 그녀를 우연히 마주치고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사랑고백도 못하고 그녀에게 책을 전해주는 것도 실패하고 있다.



이렇게 그 기록의 이야기를 바꾸고 노트에 적은 P는 절대 페이퍼의 약자가 아니라 박 양에 대해서 적은 것이라 한다.


진구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박 양은 도대체 그에게 무슨 존재였을까? 민주화 학생운동에 관심도 없었던, 아무것도 모르는 진구에게 어떤 존재였길래 보안부에 잡혀가 고문, 폭행을 받아도 제대로 된 그녀의 정보를 알리지 않았을까. 진구에게 첫사랑? 생명의 은인? 마지막까지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간다는 그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좀 더 잘 나타내게 진구에 대한 설명이 더 잘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강만철



형사 만철은 자신이 받은 뇌물에 대해 상세히 적은 뇌물 장부를 불태우려고 하다가 박양의 노트와 그 장부 더미가 뒤바뀌고 만다. 그래서 박 양을 만나기 위해 그녀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진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 과정에서 웃을 수 있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연극의 배경이 어둡긴 하지만 그 속에서도 유머를 살렸다는 게 정말 좋았다! 담뱃가게 사장님 이 씨네, 김 씨네 아저씨도 구수하고 서로의 호흡이 굉장히 잘 맞았던 것 같다. 박 양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진구와 만철의 모습도 너무 재밌고 좋았다.


만철은 진구의 편지 쓰기를 도와주며 만철이 진구만 할 때 겪었던 사랑 이야기를 회상한다. 이런 연출도 좋았던 것 같다. 둘이 이야기하다가 각자의 과거로 돌아가 관객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그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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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철이 좋아했던 연순이에게 편지를 보내는 그의 과거를 보며 진구가 좋아하는 박 양에게 편지를 보내려는 그의 현재를 같이 보면서 풋풋한 설렘과 사랑의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연순이는 북에서 내려온 삼촌으로 인해 모든 가족들이 위험에 빠지자 결혼까지 생각하던 만철을 떠나보내며 만철에게 그동안 주고받은 편지들을 다 태워 없애라고 한다. 그런 시대의 아픔으로 사랑을 잃고 현실에 타협하며 살아온 만철이 스무 살,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부닥쳐있는 진구를 보며 동질감을 느끼며 끝까지 진구가 위험에서 빠져나오도록 도움을 주려고 한다. 그를 보며 불편함, 반성, 후회, 미안함 등 복잡한 감정들을 느끼는 만철이가 더 안타깝게 다가온 것 같다.


이 연극 <페이퍼>의 시놉시스 설명을 보면 ‘한 남자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 한 남자의 반성에 대한 이야기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처음 봤을 때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은 잘 느껴졌는데 반성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래도 계속 곱씹고 연극을 3번 정도 보니 만철이 느낀 반성이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더 확 다가왔다.



 

1980년대; 거짓을 말하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상황들과 내레이션이 너무나 대치되어 마음이 아프고 아이러니했다. 물질적 풍요와 더불어 정신적인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전두환의 말.



전두환 대통령은 선진사회는 물질적 풍요를 더불어 정신적 행복이 보장되는 복지와 정의의 사회라 강조했습니다. 다가오는 21세기가 국민 다수가 부유층으로서의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만족을 체감하는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누림은 물론 자유와 자주와 자립에 부강 하는 나라 그것이야말로 새 세기를 사는 우리의 자화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말이 통제된 언론을 통해 전하면서 국가가 시민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약자를 짓밟는 그들, 보도지침으로 언론의 역할을 막고 언론인들마저 진실을 전할 수 없다는 부끄러움에 붓을 놓게 만든 정권. 거짓을 진실처럼 말하며 진실을 말하는 우리를 억압해 갔다. 연극이 진행될수록 마음이 너무나 무거워졌다.

 

보안부 형사의 대사. “그 옷 벗어.” 이 때부터 정말 소름 돋았다. “너희들은 인간이 아니다. 생각을 하지 마라..” 그렇게 형사는 계속해서 죄없는 진구를 추궁하고 폭력을 행사한다. 그런 장면은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충분히 상상이 가고 마음 아팠다. 복합되어 거짓을 말한다. 그 당시에는 정말 고문과 각종 악한 행위로 그들이 거짓을 말하게끔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진실보다 거짓이 판치는 시대였던 1980년대를 무대를 통해 직접 느껴보니 너무나 답답하고 큰 부당함을 느꼈다.

 

만철은 박 양에게 편지를 전달해준다는 명목으로 진구에게서 박 양의 거처를 알게 되지만 편지를 전달하지도 못한다. 필사의 노력을 했지만 결국 전해주지 못한다. 울면서 박 양에게 이 편지들을 전해주고 싶어 편지들을 뿌리는 만철을 보며 그가 어릴 때의 연순이에 대한 미안함과 진구를 지키지 못했다는 슬픔과 크게 ‘반성’의 감정이 잘 느껴졌다.

 

진구는 거짓 자백을 해 결국 박 양을 잡지 않고 진구가 처벌을 받는 식으로 사건을 마무리되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아마 사랑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박 양이 나의 목숨도 구해주었기에 그녀에 대해 경찰에게 말할 수는 없다며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폭행 수사, 억압을 당했지만, 끝끝내 그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는 20살, 갓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였다. 그리고 박 양을 만난 건 3월 8일, 경찰에 잡혀 온 것도 3월 말이다. 대학 생활의 로망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도 하고 싶었던 그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크게 민주화 운동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을, 그런 아직 어린 순수한 청년에게 국가가 행한 짓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고 더욱 그가 더 ‘사랑’이라는 감정에 매달리게 만든 것 같다.


아직 그의 선택에 대해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불과 몇십년 전에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에 더 눈물이 났던 것 같다. 나와 같은 20살밖에 되지 않은 청년이 겪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일들이다. 그런 일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그것이 지금의 20대로서 내가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인 것 같다. 나에게도 진구의 용기를 있을까? 용기를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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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 공연이었던 이 연극 <페이퍼>. 좀 더 진구의 이야기를 자세히 나타내고, 만철의 감정을 더 관객들이 잘 느낄 수 있게끔 만들어 꼭꼭 돌아왔으면 한다. 시범 공연 8회 중 3회를 만날 수 있어 행복했고 더 볼 수 있었던 시간이 없어서 약간의 아쉬움도 있지만, 꼭 본공연으로 돌아와 진구를 만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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