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영지가 온다

연극 '영지' 프리뷰
글 입력 2019.05.2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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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포스터]영지_190523-190615.jpg
 

청소년기는 여러 모로 혼란스럽고 신비롭다.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지만 동시에 그 가능성만큼 큰 불안을 떠안은 시기라서 그럴 수도, 한 존재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때여서 그럴 수도 있겠다. 이 시기를 떠올릴 때면 어쩐지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특히 '청소년'이 붙은 작품을 만날 때면 더욱 더. 청소년극 <영지>의 시놉시스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시놉시스>

“나는 영지야. 새의 머리에 인간의 몸통에 개구리의 다리를 가졌어. 날개도 있고 꼬리도 있지. 내일은 또 다르고 모레는 또 달라.”

‘가장 깨끗한 동네 1위’에 뽑힌 완전무결의 마을 병목안. 그곳에 어딘가 이상한 아이 ‘영지’가 전학 온다.

마을의 마스코트 효정과 모범생 소희는 영지가 알려주는 신기한 놀이와 이야기에 빠져들고, 완벽한 줄만 알았던 병목안의 균열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완전무결한 마을 '병목안'은 병목현상을 연상시키고, 병목현상은 입시를 치르기 위해 교실에 줄줄이 앉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똑같은 문제집을 풀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좁디 좁은 문 너머에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까지의 고통을 한번에 해결해 줄 무언가가 있다고 어른들은 말했다.

그 문을 통과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는지 모르겠다. 다른 선택지는 거의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도 성적 순으로 입학하는 비평준화 지역에 살았기에 조금 더 일찍부터 입시 압박을 받았다. 공부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들은 우선순위가 뒤로 밀렸다. 내가 아끼던 것들이 소리소문 없이 버려지곤 했다.

어른들은 그게 우리를 위한 거라고 미소를 머금고 점잖게 말했다. 나는 그게 폭력인 줄도 모르고 그 시간을 살았다. 우리나라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면 이건 나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병목안 마을은 우리 사회의 아주 보편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국립극단]영지_홍보사진_03_왼쪽부터 소희役(전선우), 영지役(김수빈), 효정役(박소연).jpg
 

연극 <영지>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상한 아이, '영지'를 통해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병목안 마을을 삐뚤어진 시각으로 보고자 한다. 영지는 이전에는 찾아보기 힘들던 당당하고 주체적인 청소년 캐릭터로, 철저한 규칙과 완벽한 청결로 무장한 마을에 질문을 던질 것이다.

청소년극 <햄스터 살인사건>(2014)로 데뷔한 허선혜가 각본을 썼고, <좋아하고 있어>(2017)로 호평을 받은 김미란이 연출을 맡았다. 이들은 불안한 청소년기를 다양한 오브제와 무대장치를 통해 기묘한 환상세계로 그려낼 예정이다.

또한 실제 초등,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연구 리서치, 워크숍 등으로 어른의 좁은 시선으로만 청소년을 정의하고 그려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힘썼다.


[국립극단]영지_홍보사진_07_영지役(김수빈).JPG
 

내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청소년기의 나는 <영지>의 소희처럼 이런 병목안 마을에 잘 어울릴만한 모범생이었다. 어른들이 만든 규칙을 잘 지키면 칭찬을 받았고, 칭찬 받는 게 좋아서 모범생이 되려고 부단히도 애썼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새의 머리를 하고 개구리의 다리를 가진, 기묘한 모습의 '영지'가 은밀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그 애는 여러가지 감정과 생각을 심어주며 모범생인 나를 늘 불안하게 했다. 나는 그 애를 외면하며 잡히지 않는 미래를 좇느라 바빴다.

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나는 해 주고 싶은 말이 많다. 하지만 그게 정말 맞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내 안의 영지에게 귀 기울이지 않은 결과 지금까지 무난하게 '알려진 길', '일반적인 길'을 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에 가지 않았다면, 또는 지금과 다른 전공을 선택했더라면, 공부 대신 그때 정말 좋아했던 일에 나를 쏟아부었다면... 가정은 하지만 정말 그렇게 했을 때, 실패를 용납하지 않고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을 배척하는 사회에서 내가 정말 괜찮았을지는 알 수 없다.


[국립극단]영지_홍보사진_06_왼쪽부터 소희役(전선우), 영지役(김수빈), 효정役(박소연).JPG
 

그래서 이미 청소년기를 지나왔음에도 지금 청소년기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선뜻 무어라 조언하기가 조심스럽다. 때론 그런 모습이 나를 힘들게 하던 어른들과 겹치는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쩌면 연극이 내가 못 하는 일을 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말 몇마디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므로. 70분 동안 마음을 어루만지고 힘을 북돋아 줄 것이라 고대한다.

동시에 <영지>가 어떤 결말을 맞을지도 궁금하다. 차가운 현실에서 영지의 존재는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두 모범생 친구는 영지라는 이질적인 존재와 끝가지 함께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계속 병목안 마을에 살면서도 행복할 수 있을까?

어떤 결말이든, 지금은 우리를 찾아올 영지가 마냥 기대된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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