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너의 긴 수학여행이 끝나면 - 연극 "명왕성에서"

연극 "명왕성에서"
글 입력 2019.05.2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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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다. 괜한 것에도 의미부여를 잘하는 나는 하늘도 우는 날인가 싶었다. <명왕성에서>를 보고 온 날엔 묵직한 빗방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염없이 하염없이 내렸다.

그날 5년 전 TV에선 앵커가 전원 구조를 떠들었다 다시 나와 진척이 없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금방 내일이면 돌아올 줄 알았는데 허망하게 가라앉았다. 녹슨 고철이 되어 끌어 올려진 선체를 봤을 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아직도 수학여행이 끝난 것 같지 않다. 우린 아직도 긴 수학여행을 가고 있는 것 같다. 그 일을 인정하고 이별할 날이 아직 멀고도 먼 것 같다.


나는 고작 TV로 접했을 뿐이다. TV가 매체가 다뤄주지 않는 진실을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도. 이 연극은 내가 몰랐던, 그날의 일을 재현한다. 자원봉사자, 민간 잠수사, 유가족의 입으로. 이 연극은 숫자로, 한 문장으로 쓰여질 수 없는, 세월호 참사 당시의 실제 증언과 인터뷰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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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시작되자, 수학여행 전날 방송실의 설레고 활기찬 음성이 흘러나왔다. 배를 타고 가는 시간 동안 무얼 하며 재밌게 보낼까 고민하는 모습이 벌써 신나 보였다. 그렇게 수학여행의 전날 밤이 지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한 공간에 동그랗게 모여있었다. 저마다 자신을 소개했다. 들어보니 저마다의 꿈을 간직한 아이들이었다. 랩을 잘하는 아이, 춤을 잘 추는 아이, 반에서 1등 하는 모범생, 오늘 오기 전에 엄마한테 괜한 심술을 부리고 온 아이는 앞으로 나와 ‘엄마 미안해’라고 사과한다. 그러곤 다시 신나게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를 외치며 뛰어논다. 그러다 한 아이가 멈춰선 말한다.


“우리 왜 그랬을까. 바보같이.”


왜 멈추라는 대로 멈추고, 가만히 있으라는 대로 가만히 있었을까. 나갈걸. 얼른 나갈걸. 아이들은 자신을 탓했다. 책에서 본대로, 학교에서 배운 대로 착하게 구해줄 때까지 기다린 것뿐인데 아이들이 자신을 탓하게 했다. 그때 어두운 공간 어디선가 한 줄기 빛이 들어온다. 따뜻한 음성이 들려온다.


여기 다 모여있었구나-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불빛을 꼼짝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발걸음이 늦은 어른들을.




남겨진 어른들의 이야기



그날 많은 어른들은 무능력한 자신을 탓했다. 가만히 있으라고, 움직이는 것이 더 위험하다며 거기 그대로 멈춰 있으라고 말해놓고 구하지 못한 어른들을 대신해 자신을 탓했다. 지켜주지 못한 무능한 어른이라 미안하다 했다. 숨 막히고 무섭고 아팠을 텐데 그 옆에 있어 주지 못해 마음 아파했다.


잠수사들끼리 하는 얘기에 우린 많이 울었다. 물속에서 아이들을 직접 봤을, 그래서 더 처연한 마음을 가지고 살 사람들의 말에 속이 미어졌다. 그 얼굴들이 지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물속으로 들어가 복도를 지나며 처음으로 아이를 발견했을 때. 그 아이를 데리고 올라가려 하는데 올라가지 않아 뒤돌아보니 다른 한 아이가 끈을 꼭 부여잡고 있는 걸 봤을 때. 그 손을 떼려 해도 얼마나 꼭 붙잡았었는지 떼지지 않을 때. 결국 줄을 끊어내고 “금방 데리러 올게”라고 해야 했을 때. 그들은 물속에서 울었다.

 

목사 부부가 주님의 뜻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다. 목사는 말했다. 주님의 뜻일 거라고. 더 큰 안녕을 위해 희생이 필요했던 걸 수도 있다고. 그러니 우리 아이는 다음 생에 다시 환생할 거라고. 목사는 아이의 죽음을 어떻게 해서든 납득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라도 믿어야 마음이 나아지기 때문일까.


하지만 목사 아내는 그런 남편의 말에 울부짖으며 소리친다. 그렇다고 우리 아이가 살아 돌아오는 게 아니지 않냐고. 지금 내 아이가 아니지 않냐고. 그럼 주님의 뜻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주님의 뜻이 정녕 그렇다면 왜 하필 우리 아이였냐고. 정말 신이 있다면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갈 게 아니고 아이들을 바다로 내몬 나쁜 사람들을 데려가야 하는 게 맞지 않냐고.

 

그 말을 듣고 생각한다. 누군가 이들의 죽음에 주님의 뜻이라 위로한다면 그게 유가족에게 있어 위로되고 인정될 수 있는 걸까. 신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 아니다. 나 또한 신을 믿기에. 다만 이 죽음들을 설명하기엔 역설되는 게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의 뜻으로도 설명하지 못할 영역이 희생과 죽음이지 않을까 싶다. 그날의 죽음을 온전히 신의 뜻이다 그러니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


이 장면이 연출자가 긍정적으로 다루려고 넣은 것인지 부정적으로 다루려고 넣은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이 죽음이 주님의 뜻이라 말하고 믿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목사 아내의 말로 역으로 질문하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난 그렇게 이해했다.




흩어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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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까?


아이들은 우주로 뻗어 나가 명왕성에 도착했다. 이제는 “134340”으로 명명된 명왕성에. 달의 2/3보다 작고 질량도 매우 작아 태양계 행성으로서의 지위를 잃고 추방됐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서 돌고 있다. 없어지지 않고. 아마 우리가 있는 이 지구에서 너무 멀고 작아 보이지 않는 것뿐 일 거다. 그들은 듣고 있었다. 명왕성에는 지구에서부터 날아온 많은 소리가 부유하고 있다. 모든 소리들. 차가 움직이는 소리, 걷는 소리, 비가 오는 소리, 음악 소리, 드라마 소리. 두고 와서 미안하다고,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남은 가족들과 친구들과 사람들이 보내는 편지를 보고 듣고 있다.


그러다 그들은 이내 명왕성에서도 사라질 거다. 흩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뻤던 기억도, 슬펐던 기억도 전부. 먼지처럼 이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소리도 없이 그렇게 사라질 거라고. 그러니 너무 미안해하지도, 죄책감 느끼지도, 슬퍼하지도 말라고. 나는 거기 없다고. 나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고. 이 우주에서 영영.


대신 사라지기 전에 완전히 흩어지고 없어지기 전에 불러보고 싶다고. ‘엄마’하고.


연극의 마지막에서 난 이별을 느낀다. 한 아버지가 나와 아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지금 엄마랑 아빠는 세계여행을 하고 있다고. 아들이 가지 못한 곳 엄마 아빠가 열심히 보고 곁에 있는 것처럼 잘 여행하고 있다고. 우리는 잘 지내고 있다고. 아들은 거기서 잘 있냐고.


아이들이 함께 부르던 노래가 생각난다. 아직도 믿을 수 없고 잊히지 않는 그 날을 우린 어떻게 보내야 할까. 유가족, 잠수부, 자원봉사자, 경찰. 이 연극은 그날을 겪어 상처가 난 우리에게 쓰인 것 같기도 했다. 죄책감과 미안함으로부터 보내주는 연습을 하자고. 아이들이 저 먼 무대를 향해 미소지어 줬던 것처럼. 다만 가슴에 잊지 말고 기억하자고. 흩어져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


비틀즈 - Yesterday


Yesterday, all my troubles
seemed so far away
Now it looks as though
they're here to stay
Oh, I believe in yesterday


모든 문제들이 참 멀리 있는 곳 같았는데

이제는 그 모든 문제들이 여기에 있는 것처럼 보여요

오, 그때가 좋았는데


Suddenly,
I'm not half the man I used to be
There's a shadow hanging over me
Oh, yesterday came suddenly


갑자기 나는 그 사람의 반신이었던 내가 아니게 되었어요.
어두운 그림자가 나를 괴롭혀요.

오, 어제는 너무 갑자기 와버렸어요


Why she had to go I don't know
she wouldn't say
I said something wrong
Now I long for yesterday


그녀가 왜 가야만 했는지 모르겠어

뭔가 나쁜 말을 내가 한 것일까?

이젠 그랬던 어제를 그리워하고 있어요


Yesterday
love was such an easy game to play
Now I need a place to hide away
Oh, I believe in yesterday


사랑은 쉬운 게임이었어요.
지금 나는 숨을 곳을 찾고 있어요.
나는 행복했던 어제를 생각해요.



[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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