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꽃의 아이들, 책 "남미히피로드"

남미의 풍경과 길, 그 너머에 존재하는 사람들
글 입력 2019.05.27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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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비슷한 듯 보이는 이야기마저 절대 똑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느끼는가는 모방할 수 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부분이기에, 여행이란, 그게 어떤 이야기일지라도 여행지에 대해 느낀점은 그곳의 여행자 수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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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 여행자의 이야기는 뭐랄까. 꾸민 흔적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여행에서 먹고, 자고, 보는 것만큼 값지고 소중한 건, 누구를 만나느냐일 것이다. 마치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똑같은 장소도 전혀 다른 기억 속 공간이 되는 것처럼.


이 책 속의 이야기들은 남미의 페루를 가고, 아르헨티나를 가고, 칠레를 가고, 쿠바를 가도 결국엔 사람으로 귀결된다. 어느 길 위에 있어도 누군가를 만났고,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가 된 그의 이야기는 그래서 꾸며내래야 꾸밀 수가 없는 솔직하고 흔하지 않은 경험들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제목에도 있듯 남미 ‘히피’ 로드라는 책의 이름은, 이 책을 잘 압축해놓은 듯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남미를 여행했던 작가가, 히피와 히피 문화를 온전히 느끼며 길을 떠나는 여정을 담은 이야기.


책 중에 작가의 말에 의하면 작가는 풍경과 길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여행자라고 말했지만, 내 생각에 그는 풍경과 길 안에 있는 사람을 가장 우선으로 여기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그래서 그는 자연과 풍경 그 속에 부유하듯 흘러가는 히피족, 꽃의 아이들(The Flower’s Children)을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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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내용이 느낌과 감성이 가득한 아름다운 여행 이야기가 아닌 것은, 지역적인 차별화에 오는 특징도 분명 존재할 거로 생각한다. 남미는, 한국인에게 가까운 아시아 (일본, 중국 등)을 비롯해 북아메리카나 유럽에 비하면 수요가 적은 지역임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꽤나 결심 한번 굳게 해야만 갈 수 있는, 꽤 쉽지 않고, 위험할 수 있고, 흔히들 생각하는 잘 정비된 휴양지 느낌의 관광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미를 소비하듯 여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행지의 ‘도착’에 의의를 두고, 도장 깨기 식의 출발과 도착이 분명한 여행. 그러나 그는 점을 찍는 여행 대신 선을 따라가는 여행을 했다. 야간버스는 영사기가 꺼진 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 그의 말에서 그가 얼마나 마음을 다해 길을 바라보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작가의 시선으로 본 남미는 왠지 모르게 아득하고 여운이 깊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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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한가지 확신했던 것은, 이 작가는 균형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책 중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예솔이랑 헤어진 지 몇달 후 나는 라틴아메리카 우프협회에 가입했다. 잠깐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말하자면, 여행으로부터의 도피"



사람들은 열정을 갖고 여행을 떠나지만, 오랜 기간 여행을 하다 보면 그 열정이 고갈되기 마련이다. 어쩌면 무엇이든 시작과 동시에 누적되기 시작하는 권태란 사실 수많은 행복과 성공의 그늘 아래 숨어있다. 그래서 구태여 언급하지 않으면 반짝이는 행복의 경험에 가려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초심자들은 더욱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작가는 굳이 그런 경험의 일면들을 행복으로 덮어버리려 하지는 않는 듯 보인다. 그래서 그가 여행 중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는 말이 흥미로웠던 것도 그런 것 같다. 여행지에서의 기나긴 밤을 보내면 한국에서의 라면이 그리워지듯, 그는 모두가 갈망하는 여행의 자유로움 속에서 다시 기상 시간이 정해지고, 일과를 마치는 시간이 정해진 일상을 그리워했다.


그래서 여행으로부터 도피를 하기 위해 우프협회에 가입된 바릴로체의 유기농 농장에서 숙식을 제공 받으며, 일을 시작한다. 여행자 중에서 일하며 여행을 하는 이들은 많지만, 그들의 이유가 경제적 사정이 아니라, 여행의 자유로움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어서, 혹은 일상을 다시 경험하고 싶어서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한국을 떠났을 땐 정말 날아다녔어요, 근데 이젠 설렘이라고 할까, 열정이라고 할까, 그런 게 사라진 것 같아요. 뭘 봐도 그게 그거 같고.“


“많은 사람들이 오래 여행하다 보면 그런 상태가 되곤 해. 처음엔 눌러놓은 용수철처럼 에너지가 넘치지. 그러다 튀어나갈 만큼 나가면 탄성이 사라져. 그럴 땐 스스로 용수철을 눌러줘야 돼. 일. 놀이. 공부. 휴식. 이 4가지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삶의 활력이 솟구치지 않아. 공부만 하거나 일만 하면 재미없잖아? 놀이, 휴식도 마찬가지야. 놀기만 하면, 쉬기만 하면, 늘어져서 뭘 봐도 시큰둥하고, 뭘 해도 흥미가 안생기지.”


“내가 바로 딱 그런 상태예요. 이럴 땐 어떻게 해결하죠?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요?”


“방을 렌트해서 한 도시에서 오래 머물며 생활하거나, 한시적인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방법이지. 정시에 기상하고, 노동하고, 퇴근. 그러다 보면 자유에 대한 갈망이 샘솟고 어느 순간 탕! 하고 튀어나갈 탄성이 생길 거야."


- 책, <남미히피로드> 중



어떤 상황과 일에 온 마음을 다하진 말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언제든 고갈될 수 있음을 아는 것, 그래서 그런 상황이 왔을 때, 균형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탄성을 회복하는 건, 그래서 쉽지 않지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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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며, 그의 책이 잘 읽혔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결론은 하나, 과하지 않은 표현방식 덕분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의 이야기가 과하지 않게 느껴질 수 있었던 건, 그가 머무르던 남미의 볼리비아, 파라과이와 같은 수많은 장소와 지역들에 대한 그의 배경지식과 견문이 어렵지도 않지만 또 너무 가볍지도 않은 정도로 잘 녹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과 이해와 많은 것들이 온전한 감상에만 젖지 않았던 건 그래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볼리비아의 안데스 일대를 지날 때 했던 이야기는 마치 체 게바라를 모르는 이든, 잘 아는 이든 간에 마음 깊은 울림을 느끼고, 여행이 사람을 만들어낸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할 것이다. 그 이외에도 작가가 스쳐 지나간 장소 너머의 일화와 배경들, 굳이 해주지 않으면 들을 일이 없는 그런 이야기들이 물 흐르듯 곁들여져, 더욱 풍부한 관점으로 남미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물론, 이 책을 읽음으로 인해 남미여행이나 남미 히피여행에 대한 환상이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런데 또 그러면 어떤가. 모든 여행 에세이들이 그 여행지에 대한 관광 서적도 아닐뿐더러, 환상을 품고 간다 해도 환상대로 흘러주지 않는 게 여행이고, 무엇보다 이 책은 환상적인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여행은, 그리고 그가 바라본 남미는 한 단어로는 설명하지 못할 자유분방함과 다양함이 각자의 방식대로 부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고, 그런 남미를 여행한 사람의 이야기를 엿듣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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