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남미히피로드 : 선을 따라 가는 여행, 그리고 이를 따라 펼쳐진 무지개

글 입력 2019.05.30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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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세이를 읽게 된 건 스스로 꽤 의외였다. 애초에 여행에 별 관심이 없었고, 남미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아메리카’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는 어디서 이것저것 주워들은 걸로 만들어진 ‘가난, 범죄, 더러움’이었다. 그런 내가 이 책에 끌렸던 이유는 단 하나, 이 책이 남미히피’로드여서였다.


옛날부터 남모르게 히피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문명과 체제를 거부하고, 자유와 평화를 위해 방랑하는 자들! 나와 너무도 다르고, 우리나라에선 너무도 맞지 않는 존재들. 그렇기에 영원히 그들처럼 될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기에 동경했다. 노동효 작가는 남아메리카를 떠돌며 그들을 삶 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방랑하는 자들의 이야기가 보다 더 생생하게 펼쳐질 거라 생각하고 ‘남미히피로드’를 읽기 시작했다.




선을 따라가는 여행, 그리고 이를 따라 펼쳐진 무지개



작가는 자신의 여행이 ‘선을 따라가는 여행’이라고 했다. ‘선을 따라가는 여행’은 10시간 이상 소요되는 거리를 야간버스가 아닌 주간버스로 가는 것과 같다고 한다. 햇빛 아래 펼쳐지는 길의 풍경. 나무, 바위, 야생동물 등 그 나라의 사소한 모든 것까지 담아 완벽하게 물들여지는 것이다.


실제 작가는 완벽하게 다른 곳에서의 삶에 들어간 것 같았다. 그는 쿠스코에서 가장 싼 숙소이자 막장숙소인 ‘아우키하우스’에 머물렀다. 하룻밤에 2800원이며, 30명이서 샤워실 한 칸을 써야하는 아주 열약한 환경이었지만 그곳엔 방랑자들이 있었다. 그는 매일 밤거리로 나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방랑자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 중 작가는 아르헨티나에서 온 ‘파블로’와 브라질에서 온 ‘가브리엘’과의 일화를 소개해준다. 파블로는 호객행위를 하는 삐끼로 일하며, 능글맞고 허풍쟁이로 묘사가 된다. 그런 파블로는 잉카제국의 유적지인 ‘달의 사원’에서 잉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수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다리가 다쳤음에도 열과 성을 다해 작가를 가이드 해준다. 파블로는 잉카의 유적지에서 발견한 잉카의 문화와 역사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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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어린 소녀인 ‘가브리엘’은 여권이 없이 브라질에서 페루 국경을 넘은 ‘범법자’였다. 잡히면 바로 감방에 들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오로지 ‘마추픽추’를 보고자 하는 열망으로 넘어왔다. 돈이 없던 그녀는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 필요한 400달러 이상을 벌기 위해 매일 거리로 나가 돈을 모았고 결국 마추픽추를 가게 된다. 마추픽추는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는 유명한 관광지였지만, 그녀는 마추픽추를 보기위해 자신의 모든 걸 걸었다. 그리고 해냈다. 작가는 이를 보고. ‘같은 마추픽추라도 다 같은 마추픽추가 아니었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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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



파블로와 가브리엘의 일화에서 느낀 것은 ‘여행에 대한 진정성’이었다. 금전적인 여유가 없어도 그들은 쿠스코에 왔다. 진정으로 페루의 문화와 역사를 사랑해서 온 것이었다. 누구보다 충실하게 새로운 나라에서의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그날 벌어 그날 다 쓰는 ‘방랑자’인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들에게서 진정한 여행의 가치를 볼 수 있었다.




선을 따라가는 여행, 그리고 이를 따라 펼쳐진 무지개




“형제, 집에 온 걸 축하해!” 불가에 모여 있던 예닐곱 명이 전부라고 여겼는데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일까? 수풀 속에서, 나무속에서, 연기인지 안개인지 모를 뿌연 장막 속에서 담요를 덮어쓴 사람들이 하나 둘 연이어 나타나더니 차례차례 우리 일행을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73p)



작가가 전하는 볼리비아에서의 ‘무지개 모임’경험은 히피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베리 아담스가 만든 무지개 모임은 ‘비폭력 평등주의’라는 원칙을 세워놓고 자연을 위한 찬가를 부르고 명상을 하고픈 누구에게나 열려있다고 한다. 초승달이 뜰 때부터 그믐달이 질 때까지 한  달 동안 숲이나 강변에서 열린다.


작가가 묘사한 무지개 모임은 놀라웠다. 고기, 술, 돈거래가 금지된 대신 모인 사람들은 형제가 되어 사랑과 평화를 노래한다. 남녀 구분 없이 나체로 물장구를 치고, 운동을 한다. 공동부엌에서 다같이 요리를 하고 다같이 먹는다. 밤마다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숲을 벗어나 방랑자로 돌아갈 때 생존할 수 있도록 서로 기술을 알려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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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모임


이런 삶을 꿈꾼 적이 있다. 그것은 내가 무언가에 심하게 얽매이고 있다는 생각에서 못 벗어나올 때, 그로 인한 피로감이 축적되었을 때였다. 동시에 어떤 세상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때는 지향하던 세상, 즉 혼자 생각하던 유토피아도 있었다. 인간이 자신들이 만든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평등하게 인간으로서만 존재하는 세상이었다. 홉스는 자연상태의 인간은 결국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귀결된다 했지만, 자연 상태의 인간은 자신들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결국 아름다울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추상적으로 둥둥 떠다니던 그런 세상과 삶이 이 장면을 통해 형상화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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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지금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 작년 말에 한 달간 치앙마이에서 혼자살기를 해봤다.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삶을 조금이라도 따라하고 싶었는 듯, 그 때 치앙마이에서는 한 달간 비건이 되기로 결심하고, 아무런 선입견 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명상을 하며 인간과 평화에 대한 고찰을 하고자 했다. 아무한테도 간섭받지 않는 자유를 얻으면 가능할 줄 알았다.


그러나 치앙마이에 도착하고 고작 일주일 만에 고기를 먹었고 그 이후로도 계속 고기를 먹었다. 신나게.. 거의 매일 먹었다..  현지인들의 삶을 경험하고 싶어 치앙마이 시내에서 많이 떨어진 곳으로 숙소를 잡았는데, 너무 지루해서 매번 시내로 나가고 나중에는 숙소를 멀리 잡은 걸 땅을 치고 후회했다. 또한, 영어나 태국어에 자신이 없어서 치앙마이 사람들과 몇 마디 나눠보지도 못하고 한국인들이랑만 놀았다. 그리고 그 관계에서조차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치앙마이의 분위기는 정말 좋았고 사람들도 친절했지만, 치앙마이의 생활은 한국에서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외로움과 서러움을 느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책을 읽고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에서의 나’를 놓지 못해서였던 거 같다. 무지개 모임의 패밀리들처럼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다는 마음으로 새로운 나라를 밟았어야 했다. 그래야 그 나라의 모든 것을 담고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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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151p)


이제는 무지개 모임을 꿈꾸게 되었다. 언젠가는 그 곳에 가서 히피들의 ‘사랑과 평화’의 씨앗들을 얻고, 나도 다른 곳에 그 씨앗을 퍼트리는 존재가 되어보고 싶다.






사람들은 내가 여행을 좋아할 거라고 여긴다. 그러나 내가 진정 사랑하는 건 언제나 ‘다른 곳에서의 삶’이었다. 여행을 하든, 관광을 하든, 다른 곳으로 가는 길‘은 늘 존재하지만 ’다른 곳에서의 삶‘이 늘 존재하는 건 아니다. (154p)



‘남미히피로드’에는 작가가 경험한 남아메리카의 문화, 사람, 역사가 생생하게 서술되어 있다.남미는 방랑의 대륙이었고 그런 방랑자들이 펼치는 예술의 나라였다. 탱고, 살사, 바차타, 메렝게, 보사노바 등 수많은 음악과 축제가 매일 거리를 흥겹게 만드는 ‘잘’노는 나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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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



남미는 확실하게 다른 곳에서의 삶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자유와 평화아래에 결국 같은 ‘인간’으로 귀결되어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작가가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듯한 사람들과 잠시라도 함께 삶을 그려나가는 모습은 낭만적이었다.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에 내가 새겨지고, 내 삶에 그 사람이 새겨지는 것. 다른 곳에서의 삶이 내 삶의 일부가 되는 것. 작가의 여행은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제야 내가 원하던 여행을 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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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량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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