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남미 히피 로드

글 입력 2019.05.30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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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위에 사람들은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이나, 나는 정말 가본 적이 없다. 여행을 굳이 가지 않아도 될만큼 현재의 삶에서 바쁘기도 했고, 굳이 시간을 내서 돈을 사용해서 투자할 만큼의 가치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경험이 없다보니 여전히 여행이란 내게 미지의 영역이다.


물론 '여행'이라는 것이 꼭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가야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퉁상적인 의미에서는 현재를 떠나 대게 외국을 의미하는 바가 많다. 국내 여행도 국외 여행도 가보지 않았다. '너같은 성격이면 여행을 좋아하고 많이 가봤을 것 같은데? 정말 의외네'라는 소리도 굉장히 많이 듣는다. 나도 내 성격이라면 여행을 마다할 필요가 없을 텐데 왜? 라고 생각해보면 -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고 또, 겁이 많았으리라. 나는 생각보다 더 강하게 안정감을 추구하는 불안한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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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내가 가지 않은 길의 이야기이다. 800일간의 남미 여행기. 나는 그런 고로 여행에 대해 관심도 없고, 사실 많이 가보지 않은 나이기에 아주 조금의 자격지심이 있다. 나빼고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기에 질투가 나거든. 나중에 물론 갈 생각이나, 지금은 아쉬운 상태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 에세이는 취향이 아니었다. '내가 굳이 남의 여행기를 왜 읽어야해?' 400페이지 가량 되는 책을 보기에는 조금, 버거웠다. 그래서 오래 걸렸다. 조금씩 읽다가 점차 속도가 붙었다.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을 간 사람의 이야기는 이토록 흥미롭구나. 만약 내가 여행을 많이 했다면 또 어떻게 읽을까? 혹은 평생(미래에도) 여행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읽어질지 조금 궁금해지기도 했다. 점차 괜찮게 읽어들여진 건 반복 노출의 효과로 친근감이 증가해서일까? 아니면 상상되지 않는, 허구처럼 보이는 일을 계속해서 읽으며 접하다 보니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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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거부감과는 달리 또 읽다보면 같이 여행을 하게 된다. 엄청나게 생생한 현장감이나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듣닷이, 단편적인 스토리를 보듯이 그렇게 들었다. 내가 관심 없어하던 에세이의 매력이 여기서도 드러났다. '남의 이야기를 뭐하러 내가 봐야해?' 에서 '한 사람의 이야기는 철학과 세계가 담겨있다.'고 생각이 바뀌는 중이다. 과도기 구간이기에 선뜻 나서고 싶지는 않지만, 막상 주어지면 시간은 좀 걸려도 받아들여지기 마련이다.

인상 깊은 내용 몇 가지가 있다.


1. 나는 유명한 여행지를 다 가보고 싶었다. 그저 '왜 유명한지 궁금해서'. 그 외의 의미는 없다. 역사나 유적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마추픽추를 온 가비의 이야기가 찡했다. 상품 구매하듯 관광객들은 찍어냈고, 가비에게는 모든 것을 털어서 왔기에 얼마나 소중한지. 나에게 그렇게 소중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까? 부럽기도 하고 인상이 깊었다.

2. 일, 놀이, 공부, 휴식. 이 네 가지가 중요한데. 나는 일, 놀이 두 가지만 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내가 휴식과 공부가 그렇게나 하고 싶은가보다. 저자는 너무 방랑만 하면 힘드니까, 잠시 또 머무면서 용수철을 늘려준다고 했다. 여행의 철학이 멋있었다.

3. 여행에 대해서 얘기할 때면 역시 돈 문제가 먼저 떠오른다. 가장 웃음이 났던 구간은 해커라는 직업을 가진 집시였다. 나라의 개념도 없으나, 디지털 노마드로써 여행하면서 디지털로 돈을 벌고 생활했다. 어떻게 가능한 거지..? 돈에 대한 개념이 없는 나로써는 능숙한 '인생의 생활'을 사는 집시가 너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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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르헨티나. 직업이나 하는 일을 물어보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종사하는 일' 대신 '자신이 마냥 좋아서 하는 일'을 얘기하곤 했다. 그들에게 '예술'이란 전문직업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어떤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일상에서 향유하는 어떤 것이었다. - 우리도 이처럼 자유롭게, 예술을 누리고 인정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말하는 그 자체가 너무 좋았다. 또한 전문적일 필요가 없는 예술까지.

5. "로, 네가 택시를 탔을 뿐인데. 벌써 네가 그리워!!"


내가 아마 여행기를 읽다가 점점 몰입하게 된 부분이 소설같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낯선 유입이 없는 내 생활에 여행자는 조금 거리가 먼 인물이다. 소개된 선량한 사람들은 여행자이기에 환대하는 걸까, 아니면 사람에 대해 특별히 정을 붙여서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잠깐 머물다 가는 사람. 여행자의 이야기가 특별히 매력있는 건 만남의 '끝'이 있어서가 아닐까.


물론 물리적인 끝일 뿐이지만 유한함이 애정을 더 증폭시킨다. 그리고 끝이 있다한들 이렇게까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일이라니,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조금 났다. 여행자라면 (특히 이런 경험이 많다면) 얼마나 많은 기억, 추억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정말 가슴 벅차오르고 세계 어디든 다 고향같겠다. 아니, 고향이란 건 의미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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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당신 가난하잖아!" "너 부자구나, 서울에집이 있다니."


어린왕자에 나온 부모님들이 친구를 평가하는 기준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는 걸 싫어하지만, 점차 나도 이렇게 생각이 드는 나를 느꼈다. 돈에 대한 열등감. 사회에서 제시하는 기준이 얼마나 안정적인지, 틀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두려움과 공포감. 현재에 집중하기 참 어렵다.

7. 국제 방랑 서커스단. 내 앞에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삶이.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친구들이 길에서 노래할 때면 행인들이 동전을 내려놓았다. 사람들이 그들에게주는 건 거리의 악사를 '동정'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삶을, 지루한 일상을, 단조로운 세상을 다채로운 색깔로 칠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노벰버' 영화가 생각났다. 거리 예술단이라니. 그것도 국제적으로. 어릴 때는 서커스단에 대한 로망, 동심이 있어 만화도 재미있게 봤는데. 막상 생각해보면 불안한 거리 생활이 달갑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저 먼 얘기와 동경뿐이었는데, 물건을 도둑맞아서 어쩔 수 없이 같이 유랑하게 되다니. 이것 또한 운명인 걸까. 소설같은, 꿈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8.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근데 어딘가 이상했다.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사라졌다.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간다는 의식도 없었다. 그저 방랑, 그 자체가 되어 한 생이 지나가고 있을 뿐.

9. 이 세계 어디에 있든, 모국어로 생각하기 떄문이야.

10. 남아메리카를 여행하면서 길을 안내하고선 나중에 돈을 요구하는 사람을 만나곤 했다. 그래서 이 또한 그럴지 모른다고 의심했는데 그는 오히려 자신의 집 주소까지 적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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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나는 남아메리카에서 누구를 만나든 소설에서 나온 주인공이라도 만난 것처럼 대했다. 그러면 진짜 소설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 인간은 모두 저마다 하나의 '문화'이자 '나라'며 '세계'다. 그리고 관심을 가지는 만큼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어쩜 이렇게 소설같은 일이 많이 벌어질까 생각했는데 역시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나보다. 대하는 사람을 소설 속 주인공으로 만들기. 인상 깊은 그의 철학이었다. 나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면 많은 스토리를 들려줄 것이다. 그게 로의 특급 비법이었다. 지나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닌, 모두가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선의를 갖고 보면 왠만하면 호의는 베풀어주기에.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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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재미있게 읽었던 <키노의 여행>이 생각나는 여행기였다. 자신의 여행 철학이 확고했다. 2~3년은 다른 대륙에서, 2~3년은 국내에서 체류하기. 관광객이 많은 도시가 아닌 현지인이 사는 곳에서 머물기. 소설 속 주인 공 키노도 한 나라에 최대 3일 이상을 머무르지 않았다. 내가 여행을 하게 된다면 어떤 규칙이 생길까?

처음에는 질투와 무관심이었다. 가지 않은 길이니까 부러워서. 내가 부러워하는 걸 알았다. 그러나 계속 보다보니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가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아마 여행에 꽂힌다면 머무르지 않고 계속 돌아다닐 것 같긴 하다. 내가 일상 생활의 불편함을 얼마나 감내할 수 있는 역치의 정도는 잘 모르지만.


 내 일터에서 직장 동료들은 왠만하면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이고, 꼭 시설 좋은 호텔에 묵는다. 평소에는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다가 또 완전한 히피의 이야기를 읽으니 생경하고 신기하고 재미있다. 나는 어떤 타입일까? 자유를 표방하지만 불편한 건 싫은데. 내 취향은 아닌 장르지만 나름 괜찮게 읽었고, 느끼는 게 많은 책이었다. 방랑이 운명인 로. 나의 여행은 어떨지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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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노트



2~3년 주기로 대륙을 옮기며 여행하는 작가 노동효

7년 만에 내놓은 신작 <남미 히피 로드>

EBS 세계테마기행, KBS <영상앨범 산>, MBC <세계도시여행>, KBS <책 읽는 밤>, TBS <주말이 좋다> 등 TV, 라디오, 신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지구 행성의 풍경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소개해온 작가 노동효가 2년 반 동안 남아메리카 두 바퀴를 돌며 경험한 마술 같은 이야기를 담았다.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히피 공동체 ‘레인보우 패밀리 Rainbow Family’와 안데스 산자락에서의 숲속 생활, 콜롬비아 커피 마을의 서커스 학교 체험, 남아메리카의 광장과 거리에서 만난 악사, 방랑 시인, 떠돌이 명상가, 유랑서커스단, 길거리 수공예가, 쿠바의 젊은 음악가 등 남아메리카의 자유 영혼, 그리고 히피 무리와 어울리며 지낸 체험담이 실제 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다가온다.


여행이란 ‘자신이 태어난 행성, 지구를 몸에 새기는 일’이라고 여기는 작가의 여행 루트를 따라가 보노라면 우리가 여행지에서 풍경처럼 지나쳤던 사람들이 ‘오래 사귄 벗이나 형제’처럼 그립고 애틋해진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한 지역을 깊이 사귀어본 사람에게만 열리는 세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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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꽃의 아이들’이 여기 있다

1장 페루

‘세상 끝’에서 부르는 인생찬가

달의 사원으로 가는 길

세상에서 가장 슬픈 스페인어

마추픽추라도 다 같은 마추픽추가 아닌걸

아레키파에서 만난 에로티시즘

2장 볼리비아

히피의 후예를 찾아서

무지개 씨앗을 나눠드립니다

살아 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한

3장 파라과이

집시 사전엔 ‘고향’이란 단어가 없다

21세기형 첨단 집시, 몽헬

4장 아르헨티나

여행으로부터의 도피

우린 모두 지구인, 우주에서 왔을 뿐이지

외로운 사내들의 춤, 탱고의 기원을 찾아서

주인이, 직원이, 손님이 누군지 알 수 없는 회전목마 여관

미술관보다, 박물관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5장 우루과이

콜로니아에서 진짜 파티를!

지구 대척점, 거꾸로 선 사람들의 세계

푼타델디아블로엔 세바스찬의 집이 있다

천국보다 낯선, 카보폴로니오

6장 칠레

네 심장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건 뭐니?

처음 봐도 친구, 나이가 달라도 동갑

언제나 영화처럼, 언제나 영화처럼

천국의 골짜기에 깃든 파블로 네루다의 방

7장 에콰도르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크눌프의 후예, 히피를 위한 변명

8장 콜롬비아

유목민은 단지 성을 지나갈 뿐이다

마술적 사실주의를 낳은 나라에서 서커스를!

9장 브라질

즐겁지 않은 것은 죄다

제리코아코아라, 야망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

두 도시를 잇는 아마존의 뱃길 2,000킬로미터

10장 쿠바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행성

누구를 위하여 모히토를 마시나

라틴아메리카에 빛나는 전설들

에필로그 나의 지구, 나의 흉터, 나의 뼈, 나의 친구들

인터뷰 호기심, 그곳에 나의 발자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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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알바로가 친구들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 창부와 창부가 아닌 사람. 몸 파는 걸 얘기하는 게 아냐. 난 금속공예품을 팔고, 넌 색소폰 연주를 팔고, 넌 글을 팔 듯이 모두 시간이든, 물건이든, 능력이든 무언가를 팔며 살아가지. 그러나 사랑, 진리, 우정…. 그게 무엇이든 제 심장이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걸 파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본주의의 창부야.” - 207~208쪽

다음날, 후안과 요엔젤이 아바나로 가는 미니버스가 있는 피날데리오 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포옹을 나누고 차 안으로 들어가 좌석에 앉았다. 차창을 통해 우리는 거듭해서 인사를 나눴는데 버스운전사가 시동을 걸자 후안도, 요엔젤도 고개를 돌린 채 우리를 바라보지 않았다. 빨갛게 물든 눈과 눈물을 보여주기 싫었던 것이다. -3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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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



도서명: 남미 히피 로드 -800일간의 방랑-

저자: 노동효

출판사: 나무발전소

장르: 문학 / 여행에세이

페이지: 380페이지

가격: 17,000원



[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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