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to X] episode 1.

글 입력 2019.05.30 18:0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from A to X

episode 1.


 

나무와 아파트.jpg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목차-

   

약국

밀물

피아노 연주자

작은 기쁨

굶주림

다른 길

겨울 음악회

튤립

여행 바구니

병 속의 배

불안

범죄자



*



내가 현명한 사람을 떠올리는 일은 엄마를 떠올리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나는 그의 일대기라도 작성할 거처럼, 그녀의 스무 살 적과 첫째를 낳아 기르던 때, 좀 더 거슬러 올라가 열일곱의 찬란한 소녀, 또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마흔을 지나 쉰의 나이를 바라보는 그를 생각합니다. 그에게 강요되었을 매섭고 야속한 선택의 순간들을 헤아리고 그가 결단함으로써 이루어낸 현재의 것들을 함께 가늠하며, 어째서 그는 그같이 행동할 수 있었나, 그의 삶의 위대함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하나의 강요, 하나의 포기, 하나의 결단이 되었을 순간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를 스쳐 간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누군가는 그를 말이 많은 수다스러운 아주머니로 기억할 것이고, 누군가는 엄격하고 다소 매정한 사람으로 기억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눈치가 없고 행동이 둔한 사람으로, 누군가에게는 정반대의 민첩하고 예민한 신경의 소유자로.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는 결코 잊지 못할 소중한 사람으로서 기억될 것이며, 나와 나의 자매들은 그를 떠올릴 때면 복잡 미묘한 감정에 휩싸여 그저 그를 어떤 사람으로 분류해 기억하는 건 불가함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삶은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우리를 넘어뜨리고 뒤흔듭니다. 나는 삶에 대해 말한다는 게 무척이나 민망하지만, 그것에 대해 말해야 한다면, 삶은 언제나 알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고 평생 미워한 사람을 용서해야 했다거나 수치와 모욕을 참아야 했습니다. 삶에 남겨진 것이 남루해도, 천박해지더라도, 뻔뻔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짐작할 수도 없었고, 그 일이 몹시 어려울 것이기에 시작하기도 전에 겁에 질리기 십상이었습니다.


나는 그럴 때 현명한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그들이 통과해낸 삶을 생각합니다. 그들도 나처럼 억울한 마음에 남몰래 울었을지, 처음 하는 일 앞에서 망설였을지, 사랑하고 열망하고 욕망하는 일을 반복하고 달뜨거나 지쳤을지, 무엇보다 그들도 나처럼 삶을 이어나가는 일이 곤혹스러웠을지. 나는 스물넷. 나의 엄마는 마흔여덟. 꼭 내가 살아온 만큼의 두 배입니다. 그는 왼손으로 이마를 짚고 낮잠을 자곤 합니다. 미간이 찌푸려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는 눈을 감고, 다 듣고 있어, 하고 나직이 말하며 나와 우리 자매들의 수다스러운 잡담을 듣곤 합니다. 그는 새벽에도 쉬이 깨버리고 그러면 다시 잠들기가 부쩍 어렵다고 합니다. 나는 그를 생각합니다. 그의 고요와 침묵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잠자코 그를 생각합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지친 그녀는 파도를 느꼈다. 감사의, 그리고 회한의 파도를, 그리고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햇살 좋은 이 방을, 햇살이 어루만진 벽을, 바깥의 베이베리를. 그것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세상이. 그러나 올리브는 아직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았다.

_ 「강」 발췌


  

‘아직’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그의 삶의 존재함]은 용기가 됩니다. 나를 비롯해 여성이 그의 엄마를 생각하고 그리는 일에는 타인은 결코 간섭할 수 없는 슬픔과 미움, 애틋함이 짙고 깊게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이 마음이 어떤 식으로 말해질 수 있을까, 말들을 잃고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만을 움켜쥡니다. 그는 기껏해야 나의 입속에서, 또는 우리의 자매들 사이에서 어설프게 정의되고 정리될 뿐이며, 그 사실은 우리를 무척 안타깝게 합니다. 우리는 엄마의 이야기가, 삶을 살아온 어떤 여성의 이야기가 몹시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는 우리에게 잊지 않고 말합니다. 세상이, 그를 힘들게 한다 해도 세상을 등지지 않았음을. 삶의 파도를 견딜 수 있게 해주었던 단단한 이유를 떠먹여 줍니다.

 

당신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결코 함부로 놓아버리지 않은 무언과 무형의 것을 믿습니다.

 


널 놓지 않을게. 파도가 칠 때마다 햇살이 반짝이는 짠 바닷물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케빈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그 옛날 여왕처럼 줄넘기를 하던 소녀, 지금은 바다에 빠진 젖은 머리의 여인이 두 사람의 구조만을 바라며 바다의 힘만큼이나 격렬하게 그를 붙잡고 있는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오, 미친, 이 우스운, 알 수 없는 세상이여! 보라, 그녀가 얼마나 살고 싶어하는지. 그녀가 얼마나 붙잡고 싶어하는지.


_ 「밀물」 발췌



[양나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