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따뜻하지만 뻔하지 않은 세계로 - 톤코하우스 애니메이션 展

톤코하우스 애니메이션 전 리뷰
글 입력 2019.05.31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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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코하우스'라는 이름은 생소했다. 그래서인지 전시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다. 다만 픽사의 애니메이터들이 픽사에서 나와 만든 제작사라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 관심이 생겼고, 대표 캐릭터를 보며 아동용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곳인가보다 생각했을 뿐이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어린이를 타겟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에는 큰 관심이 없었기에 막연히 귀여운 캐릭터들만 실컷 보고 오겠다고 예상한 것도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전시를 보면서 나의 편협함을 인정해야 했다. 귀여워 보이는 캐릭터들은 톤코하우스의 일면일 뿐이었다. 톤코하우스의 작품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심오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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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코하우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댐 키퍼(Dam Keeper)>는 동글동글한 그림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주인공 격인 피그와 폭스는 물론이고 어른들이나 마을에 있는 건물같이 직선으로 표현될 법한 것들도 모두 곡선이 두드러진다.

또 한가지 눈에 띄는 건 빛 표현이다. 이른 아침 마을을 비추는 태양, 학교의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 노을이 지며 그림자가 길어지는 모습 등 시간의 변화에 따라 생기는 빛의 변화를 <댐 키퍼>는 섬세하게 표현한다. 이러한 빛 표현은 단순해 보일 수 있는 둥그런 그림체에 입체감을 더한다. 독특한 미학을 위해 빛과 그림자의 생동감 표현에 힘썼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림체로 봐서는 피그와 친구들의 일상이 애니메이션의 주된 내용이 될 것 같았다. 학교에 가고, 친구들과 다투는 이야기들 말이다. 실제로 댐 키퍼는 피그를 중심으로 피그의 일상을 그려낸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는 않는다. <댐 키퍼>를 정말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는 그림체와 상반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주인공인 피그가 가진 어둠이다.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은 사실 댐 너머에 있는 검은 안개에 의해 언제 파괴될지 모르는 상태고, 동글동글하게 그려진 캐릭터들은 피그를 비웃고 그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이 마을의 안위를 책임지는 '댐 키퍼'가 마을에서 가장 홀대받는 피그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매일 풍차를 돌려 검은 안개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피그의 모습은 너무 결연해 학교에 다니는 나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성숙하다. 하지만 동시에 믿었던 친구와의 오해 때문에 자신의 의무를 져버리는 모습에서는 그 또래의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따스하기만 할 것 같은 그림에 빛과 어둠이 뒤섞인 이야기가 더해지자 <댐 키퍼>는 겉으로만 봤을 때는 상상하기 힘든 입체적인 작품이 되었다.

18분짜리 단편과 몇 개의 짧은 에피소드만으로는 <댐 키퍼> 속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감춰진 부분들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단편에서 끝날 예정이던 이야기가 그래픽 노블 시리즈로까지 나오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래서 놀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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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 키퍼> 외에 소개된 다른 작품들도 흥미롭다. <뭄(Moom)>은 아예 기억이라는 추상적인 요소를 가져온다. 잊히고 버려진 물건들에 대한 기억이 살고 있는 마을이 배경이다. <슬리피 파인즈(Sleepy Pines)>는 곤충으로 이루어진 아마추어 밴드의 도전기다. <레오(LEO)>는 로봇이 주인공인 공상과학 만화다. 일본의 신화적 이야기를 현대로 가져왔다는 <오니>역시 독특했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무한해 보이는 이야기들도 사실 정해진 몇 가지의 구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톤코하우스의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다. 친구와의 우정담이나 주인공의 성장기, 모험기는 흔한 이야기다. 하지만 톤코하우스는 독특한 캐릭터나 세계관을 통해 흔한 이야기도 흥미롭게 만든다. 작품 각각이 가진 세계관이 모두 다르면서도 흥미로워서 소개글만 보고도 전체 내용이 궁금해졌다.

조금 결이 다른 이야기지만 전시 공간을 세심하게 꾸민 것도 인상적이었다. 크지 않은 규모의 전시장에서 톤코하우스의 색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여러가지 장치를 해 놓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층계참이나 벽 구석구석에 그려놓은 일러스트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고, 2층에서는 증강현실 앱을 이용해 좀 더 능동적으로 전시장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었다.

다양한 시도를 접하며 애니메이션 전시에서 단순히 애니메이션 원화를 전시하는 것 이외에 어떤 요소를 도입하면 좋을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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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 영화가 그려내기 힘든 기상천외한 배경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은 제약 없이 눈 앞에 펼쳐보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아무리 정교한 CG와 뛰어난 그림이라 할지라도 그 소재가 실사 영화에서도 충분히 다룰 수 있는 내용이라면 애니메이션으로서의 가치는 그렇게 크지 않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추상적이고 개성있는 세계로 사람들을 안내하는 톤코하우스의 작품들은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십분 살리고 있다. 특히 여러 개의 짧은 에피소드로 구성된 <댐 키퍼:피그 이야기>는 초현실적이고 추상적인 요소로 기발하게 이야기를 엮어서 보는 내내 감탄했던 작품이다. 전시를 보는 사람들에게 꼭 감상을 권하고 싶다.

탄탄하고 입체적인 이야기와 그런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기술력이 있기에, 톤코하우스에서는 앞으로 분명 더 다양하고 훌륭한 작품이 탄생할 것이라 예상한다. 이번 전시는 톤코하우스라는 새로운 제작사의 도움닫기를 지켜본 기분이 들었다. 확장된 세계관과 더 많아진 작품들을 몇 년 뒤에 더 큰 전시로 만나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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