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명랑하지만 명랑하지 못한 "모던 씨크 명랑" [도서]

글 입력 2019.06.0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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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슬픔과 분노, 점차 유입되는 서양 문물에 대한 경이감, 신분제가 폐지되고 점차 근대화, 자본주의화 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던 근대 조선인들 사이에 독특한 정서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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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유교 문화에서 벗어나 근대화를 맞이하는 모던걸, 모던 보이들이 등장하고 일본이 제조 공장들을 세우며 생산된 다양한 소비재들이 판매되기 시작하면서 판매를 위해 광고들이 본격적으로 생겨났다. 그 시절의 신문 광고에는 상품과 소비의 역사뿐 아니라,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을 현대 문물의 거대한 물결 앞에서 놀라고 흥분하고 가슴 설렜을 그 시대의 디테일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모던함과 구식이 뒤섞이고 충돌하며 현대 문명이 이 땅에 뿌리내리던 역동적 시기의 삶의 단면들이 드러나 있다. 책 <모던 씨크 명랑>은 근대화가 진행되던 1920년부터 1940년 사이의 광고를 분석함으로써 그 시대 조선의 모습과 정서를 추적한다.


이 책을 보면서 기존에 알려졌던 사실들 중 틀린 점이 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의 맨 처음에 소개되는 껌 광고가 그 예 중 하나이다. 껌은 한국전쟁 때 미군에 의해 한국인에게 처음 전해졌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1925년 3월 신문에 껌 광고가 기재되어있는 것을 통해 1920년대 중반 조선 땅에서 이미 껌이 판매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광고가 그 시대에 새로 선보였거나 유행하는 제품을 홍보하는 글인 만큼 하나의 역사서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많은 옛 시대의 광고물을 찾아낸다면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역사를 뒤엎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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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알려진 사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 시대에 대한 나의 막연한 인식 또한 실제와 많이 달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920년부터 1940년 사이. 조선 후기의 모습과 가치관이 많이 남아있으며 일본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그저 고통 받고 불행한 나날들을 보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많은 광고들이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카페가 생겨나고 향수, 포마드와 같은 사치품뿐만 아니라 연애편지 예문집, 섹스 이론서와 콘돔 같은 이성과의 관계를 위한 제품까지, 생활필수품이 아니라 상당히 즐거움을 추구하는 제품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생필품은 크게 광고하지 않아도 팔리기 때문에 이러한 제품들이 광고에 실렸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처럼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렵고 보수적이었던 상황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근대화를 좇고 즐거움을 추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의문은 저러한 제품들을 실제로 구입하고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제의 탄압과 토지조사사업 등의 영향으로 빈민이 되고 어려운 생활을 했을 것이다. 친일파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사용했을지 또는 집안 상황이 넉넉지 않아도 모던 걸, 모던 보이가 되기를 추구했던 젊은이들 또한 구입했을 지가 궁금하다.


또한 앞에서 말했던 섹스 이론서, 콘돔, 기생집 광고(물론 이 때의 기생은 현재의 아이돌, 아티스트 같은 느낌이었겠지만)도 있고, 도망간 기생 광고 등이 신문 1면의 광고에 있었다는 점은 꽤나 놀라웠다. 성병약 광고도 있는걸 보니 조선시대의 성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대 표현들이 지금보다 오히려 솔직하고 대담하다는 것 또한 의외라고 생각되는 부분이었다. 옛 글이라고 배운 것들이 대부분 시조여서 그런지 옛날 광고도 왠지 시적이고 함축적인 표현을 썼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오늘날만큼 세세하고 독특한 비유를 하지는 않아도 상당히 시적일 것 같았다. 하지만 서민들이 함께 읽는 신문 속 광고여서 그런지 매우 직설적이고 투박하면서도 영악했다. 빙빙 돌려 말하는 표현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보수적인 사회였기에 광고 문구 또한 보수적으로 글을 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몇몇 광고들은 오히려 현재보다 더 대담하고 솔직했다.


광고의 형태가 오늘날이랑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게 무척 흥미롭다. 자극적인 문구와 위트있는 삽화!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이 자극적인 표현에 눈길을 돌린다는 것과 그 시대의 욕망이 현대인과 크게 다른 점이 없는 것 같다. 거의 100년 전의 광고임에도 불구하고 무척 세련된 삽화가 꽤 많다는 것도 놀라웠다. 지금 다시 나와도 사람들이 맛있어 보인다고 생각하고 관심을 가질 것 같은 그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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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덜 발달된 때여서 그런지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광고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 약을 먹으면 아들을 가질 수 있다고 광고한 아들 낳는 약, 몸에 좋은 술이라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정력제 광고처럼 되어버린 포도주 광고 등. 여기서 드는 의문은 잘못된 정보들 그 시대 사람들에게 실제로 그 정보가 사실이라고 알려져 있고 사실이라고 믿어서 허위, 과장된 정보를 광고한 것인지, 아니면 현대의 미용 제품과 같이 과장된 ‘비포 에프터’ 형식의 광고를 보며 그 것이 과장되어있음을 알면서도 혹하는 것과 같은 심리가 작용된 것인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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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영어가 생각보다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는 점도 놀라웠다. 영어가 대중 사이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고 일부 학생이나 지식인 층만 영어를 알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췌잉껌’, ‘스피어민트’, ‘주시 프루트’, ‘쵸코레트’, ‘아이스 케이크’와 같은 제품 명뿐만 아니라 ‘웨트레쓰’, ‘사비쓰’, ‘오리지나루’ 등 광고 속 설명에도 영어가 쓰였다. 쉽고 실용적인 단어들은 서민들 사이에서도 알고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상이 변화하고 있던 만큼 새로운 것에 대한 사람들의 습득력이 높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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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의 여성이 얼마나 낮은 인권을 가지고 있었는지 또한 알 수 있었다. ‘비누’ 파트를 보면 신체를 함부로 노출하지 말라고 가르친 유교 문화 때문에 조선인들은 자주 씻지 않았다고 한다. 구한말의 주일특명전권공사 조병식은 남의 눈이 없는 곳에서조차 몸을 벌거숭이로 노출하는 것이 유도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일본에 머물 동안 실내복을 입고 목욕했다고 쓰여 있다. 그 정도로 육체성을 부정적으로 보고 신체의 노출을 꺼리는 보수적인 사회에서 여성의 몸을 크게 드러낸 그림이 신문 광고로 쓰였다.


사진이 아닌 일러스트였지만 여성의 나체가 흔히 쓰였으며 유두가 보이는 적나라한 그림들 또한 많았다. 뿐만 아니라 백화점이나 대형 매점에서 신제품 옷이나 장신구 등을 착용하고 손님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제품 광고를 하는 마네킹 걸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면서 그 시대의 여성의 지위가 얼마나 낮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여성은 그저 도구이며 눈요깃거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키스걸, 스틱걸이라는 직업이 생겨났다는 것 또한 놀라웠다. 그 시대에도 돈을 내고 여성과 키스를 하는 곳이 있었다는 점과 대놓고 성적인 행위를 드러내는 표현을 썼다는 점이 충격적이었다. 보수적인 사회였던 만큼 그와 반대되는 개방적인 서구문화가 들어옴에 따라 억눌렸던 욕구가 더 크게 터져 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민지 시대의 암담했던 현실을 볼 수 있는 광고들도 많았다. 아이들 분유, 캬라멜 광고에도 전쟁 말기의 일본 군국주의가 녹아든 것을 보면 당시 전쟁으로 인한 참담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악기점에서 사냥총을 판매한다고 광고하는 이상한 현상은 우습게도 사냥총이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친일파의 집을 털고 그들을 응징하던 독립 운동가들을 잡기 위한 친일파들의 호신용으로 쓰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태극기가 들어가는 광고도 금지되었고, 이순신 CM송 가사에 임진왜란이 아닌 임진난리라고 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부정할 수 없는 식민지 시대의 자화상이었다.


책이 꽤 두꺼운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지루함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문체와 표현을 보며 옛스러워서 흥미로운 부분도 있었고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놀라웠던 부분도 있었다. 적어도 광고 내용과 그 시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정서만큼은 현재와 무척이나 닮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러분 감기 걸리면 죽어요! 이 약을 드십시오!' 하는 말에 손 벌벌 떨며 냉큼 감기약을 구매하던 그 때 사람들이나 '여러분 명문대 못가면 죽어요! 당장 저희 학원에 등록하십시오!' 하는 말에 벌벌 떨며 학원을 등록하는 오늘 날 사람들이나 다를 게 없다.


먼 미래에 현대의 광고를 모아서 책으로 낸다면 그 시대의 사람들의 반응 또한 지금 이 책을 읽는 우리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머 이 때도 수험생이랑 정력에 좋다 그럼 다들 환장을 했구나’, ‘이 때도 시간이 임박했다는 둥, 한정이라 몇 개 남지 않았다는 둥의 방법을 썼었구나’ 하면서 ‘역시 사람 사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현재와 과거, 또 현재와 미래 각 시대의 가치관은 조금 다르겠지만 사람 사는 이야기인 만큼 통하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그 시대를 공유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을 추적하고, 이해할 수 있다. 통하는 구석이 있는 한 편 의외의 구석들 또한 튀어나온다. 그래서 이 책이 지루하지 않고 신선하고, 재미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단순히 광고들을 소개하는 정도로 그쳤다는 것이다. 당시의 시대상이나 유행, 사람들의 삶을 조금 더 조명하고 일제 강점기 때였던 만큼 일본이 인위적으로 주입시킨 것들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분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업을 들으며 일제가 조선을 자신들에게 흡수시키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매우 섬세하고 영악하게 전략을 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광고는 당대의 시대를 한꺼번에 압축하는 엄청난 콘텐츠이기에 이를 시대의 상황과 매치시키며 분석하면 그 때의 체제, 문화, 정서를 구체적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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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씨크 명랑> 속 광고들은 명랑하지만 명랑하지 못 하다. 일제 시대라 광고 중간 중간 일본어들이 섞여 있는 것이 가슴 아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극기의 디자인을 교묘하게 바꿔 그려 넣어 국산 상품 장려 운동을 벌였던 민족단체들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일부 계층만이 누렸겠지만 근대 조선인들이 끊임없이 놀라고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을 제품과 문화요소들이 많다는 생각에 나라의 상황만으로도 혼란스러웠을 그 시대의 사람들의 매일 매일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정신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광고로 엿본 조선사회는 변화의 물결이 끊임없었다. 의식주 모든 면에서 기존 우리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서양의 문물이 들어왔고 일본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상과 문화를 주입하고 강요했다. 사회, 경제, 과학의 면에서 빠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사람들의 생활은 점차 서양식, 일본식으로 변해고 있었다.


에로티시즘적인 광고, 더 나은 삶을 위한 제품들의 광고를 보며 혼란스럽고 암울한 때였던 만큼 시대의 부정적인 부분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먹을 것이 풍부하여 날씬한 것을 이상적으로 보고 다이어트를 위해 갖은 노력을 현대와는 반대되는 비만제를 팔고 부족한 영양제를 채우기 위해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까지도 분유를 먹자고 광고했다는 것을 통해 일반 서민들은 제대로 된 끼니조차 매일 먹기 힘든 상황이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또한 태극기를 대놓고 광고에 사용할 수 없었고 일본 기업에서 생산한 제품들이 조선인의 일상에 깊숙이 침투하였던 것을 보며 일제 시대의 암울한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한 독립 운동가들의 노력들 또한 광고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근대 조선의 광고를 모은 책 <모던 씨크 명랑>을 읽으며 그 시대상을 읽을 수 있었다. 많은 글이 쓰여 있지도 않은 광고를 통해서 근대 조선인들이 어떠한 것을 추구했고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오늘날의 광고를 미래인들이 접한다면 우리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분석하게 될까. 지독한 외모지상주의와 소비주의 사회, 기술 지향 사회라고 생각할 것 같다. <모던 씨크 명랑>은 광고들을 소개하는 데에 그친 점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긴 하지만 근대 조선의 다양한 광고를 접할 수 있었고 광고와 시대상 간의 긴밀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재미있는 책이었다.



[윤혜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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