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페라 "나비부인", 오페라와 사랑에 대한 단상 [공연]

글 입력 2019.06.02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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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노블아트오페라단에서 주관한 오페라 <리골레토>를 흥미롭게 관람하기도 했고, 최근 공연예술과 관련된 강의를 듣고 있다 보니 관심이 생겨 오페라 <나비부인>을 관람했다. 공연 전 예상한 것들과는 다른 점이 많았는데, 그런 점을 중심으로 리뷰를 작성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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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련의 여주인공보다는 미성숙한 아이



<나비부인>하면 주인공 초초상의 비극적인 사랑이 떠오른다. 보통 그녀는 이름이나 ‘여인’이라는 용어로 서술되기에, 그녀의 사랑은 순애보 적이고 아름다운 것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비부인의 나이는 열다섯 살이다. 프리뷰를 작성하며 리브레토의 시대착오적인 측면에 집중하다 보니 나비부인의 나이는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처음 나이를 노래하는 장면에서 그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부인’이나 ‘여인’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나이는 전혀 아니다. 그 시대의 15세는 지금의 15세와는 다르겠지만, 핑커턴이 계속해서 ‘어린 신부’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일반적인 결혼 연령보다는 어렸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기에 초초상의 사랑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녀의 태도는 세상 모르는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에 가깝다. 아버지는 할복자살을 하고 어머니는 없는 몰락한 귀족으로서, 어린 나이에 게이샤가 된 초초상은 세상에 기댈 곳이 없다. 그렇기에 그녀는 일본 바깥에서 온 핑커턴이 보이는 단순한 호기심과 가벼운 마음을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 결혼 후 친척들도 등을 돌리자, 그녀는 말 그대로 사랑에 눈이 멀어 버린다. 결론적으로 초초상은 그저 자신을 조건 없이 사랑해줄, 가족의 사랑에 목말랐던 어린아이였을 뿐이었다.


그녀의 순수함이 핑커턴의 행위를 합리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기는커녕 이용하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이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이 핑커턴 역을 맡은 배우에게 장난 섞인 야유를 보냈을 정도로, 그는 끝까지 비겁하고 책임질 줄 모르는 사람이다.


1막의 핑커턴과 2막에서 핑커턴이 떠난 후 ‘어느 갠 날’을 부르는 초초상을 보며 사회심리학 교과서에서 보았던 내용이 기억이 났다. 흔히 사이비 종교에서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에 관한 내용이었다. 우선 그들은 돌아갈 가족이나 친구가 없도록 관계를 단절시켜 버린다. 또 인생에서 큰 상실을 경험한 후 연약한 상태에 빠진 사람을 달콤하고 듣기 좋은 말들로 현혹한다. 선후관계가 완벽하게 들어맞지는 않으나, 기만적인 사랑이 사이비 종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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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한 배경, 보편적인 이야기와 음악, 그리고 훌륭한 연출


이 오페라는 동양적 테마를 사용한 흔치 않은 오페라라는 이유로 잘 알려졌다. 포털이나 인터넷 백과사전에도 이 오페라의 가치를 거기에서 찾은 결과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 작품이 꾸준히 사랑받게 된 계기에는 그것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순수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사랑에 배신당했던 경험이 있으므로,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이는 초초상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외모에 가려 연기력은 잘 언급되지 않는 배우처럼, 이 작품도 주제의 특수성 때문에 아름다운 음악이 충분히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자주 언급되는 2막 초초상의 아리아 ‘어느 갠 날’ 이외에도, 인물의 성격이나 심정을 섬세하게 묘사한 음악들이 많았다. 1막에서 핑커턴과 결혼식을 올린 후, 어찌할 수 없는 불안감과 멈출 수 없는 사랑을 표현한 ‘저녁이 온다네’와 3막에서 절망적인 소식을 전하는 샤플레스, 핑커턴과 슬퍼하는 스즈키의 3중창이 특히나 기억에 남는다.


3막은 초초상의 마음을 대변하는 춤으로 막을 연다. 다른 오페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신선한 부분이었다. 발 없이 춤을 추는 흰 나비와 같았다. 그녀의 기나긴 기다림을 관객이 그대로 느낄 수 있었던 좋은 연출이었다. 일본의 절제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세트 역시도 공연을 보는 내내 감탄을 자아냈다. 박제된 나비처럼 홀로 강렬한 죽음을 맞이하는 초초상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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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시각으로 고전 예술을 향유하기



앞서 말했듯, 이 작품은 동서양의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은 시기에 형성되었던 편견을 바탕으로 한다. 그렇기에 이 작품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동양인 여성이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지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러나 이러한 줄거리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되, 줄거리만으로 이 작품을 판단하고 외면해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이 작품의 내용은 ‘아메리칸 드림’을 산산조각내는 쪽에 가깝다. 제국주의자인 핑커턴은 처음부터 가벼운 마음으로 초초상에게 접근하고, 초초상은 그런 핑커턴을 순진하게 기다리다 자결하는 가련한 여인으로 그려진다. 초초상이 3년씩이나 희망을 품고 기다렸던 일은 아마도 미국 혹은 미국인을 바라보는 동양인들의 시각을 보여주고, 마침내 자결하는 초초상의 모습은 식민지국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푸치니라는 인간의 경험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푸치니의 어머니와 부인은 모두 <나비부인>의 초초상과는 상당히 다른, 강하고 단단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에 대한 열망이 존재했고, 그것이 <나비부인>의 원작에 매료되었던 이유라고 보는 분석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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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진입장벽 낮추기



오페라는 공연예술 중 가장 진입장벽이 높은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음악 대부분이 이탈리아 원어로 불리기 때문에 내용을 모르고 간다면 무대와 자막을 번갈아 보느라 힘들 수도 있다. 또 뮤지컬만큼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오랜 시간 클래식을 듣는 것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제한적인 공연 횟수와 높은 가격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


이러한 진입장벽을 낮추고자 지난달 17일부터 6월 7일까지 개최되는 2019 제 10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에는 <나비부인>외에도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 백제가요 정읍사를 재해석한 <달하, 비취시오라>, 판소리를 오페라로 재탄생시킨 <배비장전> 등의 작품이 참가했다. 유료공연뿐만 아니라 야외에서 진행되는 무료 갈라 공연, 오페라를 사랑하는 일반인들이 직접 무대에 설 기회를 제공하는 도전! 오페라스타 등의 행사도 진행되었다.


<나비부인>을 관람한 후 비로소 오페라의 아름다운 음악에 흠뻑 빠지게 되었는데, 이미 페스티벌이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어 정말 아쉬웠다. 앞으로는 꼭 유료공연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클래식 행사에 참여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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