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성 그리고 음악, "두 개의 목소리" [도서]

나의 플레이 리스트를 풍성하게 채워주는 책
글 입력 2019.06.0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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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 내 삶에 침투한 이후로 달라진 것 중 하나는 '플레이 리스트'다. 여성혐오적인 표현으로 노래하는 곡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일삼거나 성범죄를 저지른 뮤지션의 곡들을 더는 들을 수 없게 되면서 페미니즘에 반하는 노래들이 내 플레이 리스트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플레이 리스트에 있던 노래들이 사라지는 만큼 새로운 곡들이 채워지지는 못했다. 플레이 리스트에 담을 곡을 선별하는 기준은 까다로워진 데 반해, 들을 만한 곡들을 만날 기회는 턱없이 부족했다.

듣는 것에 대한 갈증은 커져만 갔고, 대중음악에 대한 인터뷰나 글이 보이기 시작하면 읽기 시작했다. 괜찮은 곡이나 뮤지션을 알게 될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만난 책 중의 하나가 '두 개의 목소리'였다. 노래를 짓거나 음악을 하는 9명의 뮤지션 중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다룰 수 있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 더욱 흥미가 갔다.

이 책의 제목인 '두 개의 목소리'는 음악가의 목소리를 말한다. 이는 곧 음악을 위해 노래하는 목소리와 무대에서 내려와 삶을 말하는 진솔한 목소리 두 가지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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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X 음악


인터뷰어이자 편집자인 이민희는 10년간 대중음악 평론가로 활약했다고 한다. 굵직한 경력에서 알 수 있듯이, 다채로운 뮤지션들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된 이야기는 뮤지션으로서의 삶과 여성이라는 젠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9명의 뮤지션 각각의 두 목소리는 읽기 쉽게 편집되어 잘 다듬어졌다. 덕분에 뮤지션의 음악 이야기와 페미니즘이 서로 맞닿은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 모두 해당 뮤지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 도움이 되었다.

​안예은은 영화 스토커에서 영감을 받아, 동명의 곡 스토커를 만들었다. 그러나 페미니즘을 알게 된 이후로 스토킹과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제목도 스티커로 바꾸고, 가사도 수정하였다.

요조는 자신의 음악보다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거론되고, 자신의 이름 뒤에 홍대여신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을 그저 팔자로 치부해왔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눈을 뜨고, 이유도 모른 채 막연히 불쾌했던 것들에 대해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소히는 음악 활동 초기에는 여성이기 때문에 누리는 것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여성 뮤지션에게 음악적인 기대치가 낮은 만큼 오래 살아남기 힘든 상황에 대해서도 말한다. 남성이 독점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편곡이나 프로듀싱 영역은 남성 뮤지션들이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계발에 힘쓴 데에서 기인한 것으로 본다.

이외에도 출산과 육아로 음악 활동이 단절될 뻔하고, 남성 중심의 영역에서 음악을 하는 펑크밴드의 보컬과 드러머, 귀엽거나 센 음악으로 양분되고 평가되는 여성 음악 세계에서 마녀로 불리던 뮤지션, 더 많은 여성 음악가와 여성 평론가를 만나고 싶다고 말하는 남성 뮤지션, 여성 음악가들을 연구하는 여성 음악가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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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의 두 개의 목소리를 알아갈수록 반가우면서도 코끝이 찡했다. 장르, 연주하는 악기, 곡 작업의 주류문화는 이미 남성이 선점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음악적 색깔을 비롯해 외향적인 스타일은 여성 뮤지션이 더욱 신경 써야 할 부분으로 작용했고, 대중의 평가는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오히려 피로하게 만든다. 여기에 개인의 생애주기와 맞물리면서 생산보다는 중단과 거절의 경험이 많은 여성의 음악 세계는 누구에게나 절대적으로 살아남기 힘든 구조로 작용한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은 어느 분야에서건 존재하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출산 이후에도 앨범을 내고, 활동을 지속하는 여성 뮤지션은 김윤아, 장윤정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애초에 활동하는 40대 이상의 여성 뮤지션을 찾기 어려운 것이 씁쓸한 현실이다.

​현재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들과 음악으로 소통하면서 이따금씩 같이 나이 먹어간다는 사실에 재미를 느끼는 것, 공감되거나 추억할만한 가사로 일상의 피로를 풀어내는 것은 나의 소소한 기쁨 중 하나다. 그런데 이 기쁨이 어느 순간 단절된다면, 한동안 그 슬픔으로 괴로울 것이다. 일순간 사라진 여성 뮤지션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출간일을 보니 이 책이 발간된 지 1년이 되어가는데, 책 속의 뮤지션들 안부가 궁금하다.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뮤지션들이 더 많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두 개의 목소리를 내고 있을 이들을 응원하고 싶다. 살며시 책을 덮고, 유튜브와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를 오가며 뮤지션들의 곡과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플레이 리스트에 새 폴더를 만들고 들어볼 곡들을 추가했다.

한동안 이 아홉 뮤지션의 음악을 듣는 재미를 느껴볼까 한다. 그리고 되도록 꾸준히 들을 것이다. 더 많은 여성 음악가들과 페미니즘에 반하지 않는 뮤지션들의 곡들로 내 플레이 리스트가 풍성해지기를 바라며.


[이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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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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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y4282
    • 관심이 가는 책이네요! 문화계에서 이런 목소리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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