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선식같은 사람 [여행]

타인을 위해 기념품을 구매하는 행위, 그것의 진정한 의의
글 입력 2019.06.03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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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지역에서 소중한 누군가를 생각하며 구매한 물건들은 값진 의미를 갖는다. 이때, 그 일종의 기념품들이 그 사람에게 주어지는 순간 더욱 각별해질 때 그러하다. 열여덟에서 스물넷이라는 나이까지. 개인의 수많은 선택과 상황의 형편들을 피상적으로 판단하지도, 진정성 없는 ‘걱정’이라는 말들로 채점하지도 않는 인연이 있다. 최근 여행을 다녀온 후 그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친구와 나의 
한국에서의 대화


R : 짜잔. 이건 온통 너스러운 것들. 그런 것들 여행하며 틈틈이 사서 모아온 거야.

N : 아이고, 이게 다 뭐야. 뼈 해장국 2그릇 어치도 더 되겠네. 뭘 이렇게 많이 샀어?

R : 그냥, 우연히 무언가를 딱 보고 네가 떠오를 때마다 산 거지 뭐. 지나치려 해도 네가 자동적으로 생각이 나서 그럴 수 없더라.

N : 근데 나 궁금한 거. 네가 보기에 나스러운 건 어떤 거야?

R : 글쎄, 굉장히 고운 모래 느낌? 널 떠올리면 뭔가 미숫가루가 생각나. 색깔이 잔잔하고 부드러운데 무언가 첨가되어 달달한 것 같기도 하고. 여기 비슷한 배경 색깔 위에 그려진 그림체처럼 투박하면서도 무심하게 그려진 듯한 드로잉들 같기도 하고.

N : 아, 미숫가루 같다면 고소하기도 해?

R : 맞아. 사람이 참 적절하게 담백하다고 해야 하나. 넌 모든 이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느낌이야.

N : 엽서들은 분위기가 일정한 느낌이네. 그런데, 이 미숫가루 같은 느낌들이랑 이 귀여운 그림들. 두 가지로 나뉘네?

R : 맞아. 또 이런 백지에 마구 크레파스로 그려놓은 듯한 자유로운 아이 같은 그림을 보면 네 생각이 나. 그런 것 보면 너에게는 또 다른 면모도 있는 거 같아.

N : 그거는 그럼 또 어떤 느낌인데?

R : 되게 맑아. 그냥 너를 보면 굉장히 순수한 사람 같아. 내가 액상 프로방스 지역에서 너 생각하면서 골라온 비누도 봐봐. 온통 새하얗잖아. 참고로 이 비누, 너랑 가장 잘 어울리는 색들 중에 각 향기들을 하나하나 맡아보면서 너랑 어울리는 향을 골라온 거다. 다른 몇몇 친구들 것도 고르는데, 막판에는 코가 중독된 기분이라 자르고 싶더라.

N : 아 웃겨. 냄새 되게 좋다. 진짜 고마워. 이거 엽서들도 그렇고 비누도 아까워서 내가 어떻게 쓰냐.

R : 그럼 평생 같이 간직하든가. 어딘가에 같이 놓아둬, 포근한 향 맡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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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에 관한 이야기가 종료되고 우리는 여느 때와 같이 메시지들로는 다 전할 수 없었던 세부적인 최근의 일화들, 앞으로의 계획 등과 관련해서 생각을 나누었다.

그러다 그녀에게서 요즈음 새롭게 배우고 싶은 분야가 생겨 다시 공부를 하고 싶어졌으며, 이를 익힐 수 있는 학교를 찾았고 이에 긍정적인 의향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사회적 기업에 들어가고 싶으며 연탄 나르기와 같은 특정 활동들도 하고 싶다는 대략적인 윤곽들까지. 함께한 지난 몇 년이 가루 필터를 씌운 필름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녀가 스무 살 여름을 견뎌낼 무렵. 흔히 말하는 사학의 명문대 사무소에 자퇴서를 제출하기 직전, 전화로 자신의 감정을 전하던 떨리는 음성. 그 후, 홀홀히 지내다가도 비슷한 생각과 고민을 가진 또래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적은 것 같다며 때로 허함과 외로움을 내비치던 눈동자. 그 누구도 원치 않았을 소중한 이의 부재로 흔들리던 시기. 금전적인 것과 더불어 원하는 분야를 끊임없이 찾기 위해 했던 관련 아르바이트들, 때로는 그와 상관없는 일들을 하며 몸이 상해 가도 내색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

그녀에게 내 삶을 꽤 차지하는 좋은 친구들을 새로이 소개해주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3명의 이들과 협의해 무작정 만남을 주도하던 시절. 보편적인 또래의 공통 관심사 혹은 개인의 특수적인 환희와 슬픔의 공유. 수개월 정도의 각자의 여행으로 인해 약 8000km 떨어진 곳에서도 서로를 응원해주던 때부터. 낯선 타국의 도시이지만 그녀 자신에게 맞을 것 같다는, 막연히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이유로 서로 맞닿을 수 없었던 꽤 긴 공백의 기간까지.

시간을 거스르는 듯한 경험은 때론 심히 당연한 말을 새삼스럽게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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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 야아, 넌 나랑 같이 있으면 여러 면에서 재미있어?

N : 뭐야? 갑자기 그건 왜 물어.

R : 글쎄. 그냥, 궁금해서.

N : 당연하지. 나 인간관계 되게 좁은 거 알면서. 나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잖아. 특히 너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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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무엇인가를 깊게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은 그 자체로 삶의 활약이 된다. 누군가는 무엇인가를 새로 배우기에 다소 늦은 나이가 아니겠냐며 속으로 비아냥거릴 수도 있다지만, 우리는 여전히 ‘스물넷’이라는 남들과 유별나게 다르다고 볼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한 청년기를 지내고 있을 뿐이다. 중년과 노년이 되어서도 ‘끌리는 새로움’을 대하는 자세를 지금의 너처럼 유지하고 살고 싶다는 과도히 이상적인 생각을 해보며.

비가 사선으로 무한정 쏟아지던 날. 아마 20여 개가 넘는 양말짝들이 교실 창가 쇠로 된 가로 기둥에 말려져있는 것을 보며 우리들 참 귀엽다고 자찬하던 시절처럼. 여전히 투명한 너를 보면 네 앞에서 만큼은 언제나 나만의 비밀이 탄로나고 싶어진다.


[류승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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