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설과 뮤지컬, 번갈아 바라보기 [공연예술]

글 입력 2019.06.0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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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앤 하이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레미제라블>, <두도시 이야기>. 이 뮤지컬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오래된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전은 시간이 흘러 드라마, 영화, 연극, 뮤지컬, 심지어는 게임 등의 다양한 매체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시대에 맞게, 매체의 특성에 맞게 혹은 제작자의 의도에 맞게 각색되어 다듬어진 작품을 원작과 비교하며 폭넓게 즐기는 것은 1차 콘텐츠가 존재하는 작품만의 특별한 매력이다. 이러한 매력을 가진 다양한 작품 중 세 작품을 꼽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숨지 않는 하이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와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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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오디 뮤지컬 컴퍼니 트위터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뮤지컬 중 하나일 것이다. 극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제목을 들으면 선과 악의 대립, 혹은 이중인격 등의 키워드를 떠올릴 법한 이 작품과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는 묘하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하이드가 등장한 배경에 있다. 자신의 아버지를 포함한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던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지킬은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을 분리하여 악한 부분을 통제하고자 하는 묘안을 실험하고자 하나 허가받지 못한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실험을 진행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하이드이다. 그는 이타적인 의도로 실험을 하였고 하이드의 탄생과 행동은 그가 의도했던 일이 아니었다.


*


그러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의 지킬 박사는 의도부터가 어쩐지 불순한 느낌이 든다. 명망 있는 유명인사인 지킬 박사는 자신의 존재가 너무나 알려진 탓에 자신이 욕망하는 행동을 마음껏 하지 못하자, 또다른 자신을 만들어 내기로 결심하며 그것이 바로 하이드이다. 그의 이름이 하이드인 이유는 숨겨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의 하이드는 지킬보다 작고 볼품없는, 왜소한 몸집을 가진 존재로 표현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이드의 몸집은 점점 커지고, 모습을 통제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지킬 박사는 하이드의 몸으로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실험을 계속한다. 그는 끝까지 하이드의 모습을 숨기고자 노력하며, 끝끝내 자신의 모습이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자살하며 하이드의 모습으로 죽는다.


처음부터 다소 모호하던 지킬과 하이드의 구분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차 희미해져 가며 악행 앞의 위선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인지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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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오디 뮤지컬 컴퍼니 트위터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하이드는 하이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탄생과 동시에 자신의 이름을 명명하며 두터운 털옷을 두른 채 지킬보다도 더 크고 위압적인 모습을 보인다. 타인 앞에서 지킬로 변화하는 모습을 당당히 보여주기까지 하는 하이드는 악행을 하고 있을 뿐이지 소설 속의 하이드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극 중의 그는 분명하게 지킬과 대립하고 있으며 서로가 주도권을 잡으려는 싸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둘이 이어져 있음은 분명하다. 하이드의 악행은 지킬의 욕망과 맞닿아있고, 지킬 역시 그가 자신이 숨기고 싶어 했던 내면의 추한 모습이자 또다른 자신임을 시인한다. 공존이 불가능하다 대립하면서도 동시에 둘은 같은 존재라고 이야기 하는 모순은 마지막 까지 이어지며 끝끝내 지킬은 하이드를 멈추기 위해 지킬의 모습으로 죽음을 택한다.


흔히 생각되는 이미지인 선과 악의 대립이든, 위선의 뜻을 대리하는 위악의 이미지이든 뮤지컬과 소설은 서로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가진다.




헨리 워튼이 말하는 아름다움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와 소설<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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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의 유미주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으로 하는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가 몇 해 전 우리나라에서 창작 초연되었다. 원작과 뮤지컬의 가장 다른 매력을 꼽자면 도리안 그레이를 타락시키는 주요한 인물인 ‘헨리 워튼’에 대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무대 위의 헨리 워튼은 화려한 언변으로 쾌락주의를 설파하며 순수한 소년 도리안 그레이를 타락시키고 사람들의 귀를 현혹하지만 작품의 후반에는 자못 다른 태도를 취한다. 도리안 그레이의 내면이 타락해도 여전히 아름다운 겉모습에 만족하는 변하지 않는 태도의 소설 속 헨리 워튼과는 달리 뮤지컬 속의 헨리 워튼의 태도는 변화하고 그가 말하는 아름다움의 정의 역시 소설과는 다르다.


그는 단순히 표면적인 아름다움을 가질 뿐 아니라 쾌락에 휘둘리지 않는 초인적인 존재를 원했고, 그것이 도리안 그레이를 통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으나 시간이 흘러 자신이 실패했음을 깨닫는다. 캐릭터의 행동에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것을 실패로 결론지으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여줌에 따라 캐릭터는 더욱 매력적으로 부각된다. 또한 극 중의 큰 메시지라고 할 수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도 헨리워튼이 변화함에 따라 더욱 풍부하게 다가온다.






두 음악의 천사

뮤지컬 <팬텀>과 소설 <오페라의 유령>



소설 오페라의 유령이라고 한다면 검은 옷을 입고 위압적으로 ‘Sing for me!'를 외치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떠오를 수도 있겠다. 영국에서 처음 공연 된 후 큰 성공을 거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외에도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이 한 편 더 있다. 바로 뮤지컬 <팬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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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원작과 흡사한 내용의 뮤지컬 <오페리의 유령>과는 달리 뮤지컬 <팬텀>은 주인공인 에릭을 불쌍하고 안타깝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려낸다. 추한 외모탓에 사람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가지지 못하는 점을 제외한다면 소설과 <팬텀>의 주인공 에릭은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진다. 압도적이고 무서운 태도를 보이는 원작의 에릭과는 달리 뮤지컬 팬텀의 에릭은 사랑에 서투르기에 보다 더 조심스럽고 정중하다.


 *


소설 오페라의 유령에서 음악의 천사는 크리스틴의 아버지와 얽힌 이야기와 관련된 소재로, 에릭은 자신이 그 음악의 천사인 양 크리스틴을 속인다. 그러나 뮤지컬 팬텀에서 음악의 천사는 크리스틴이다. 평생을 오페라 하우스 지하에서 살아왔던 에릭에게 크리스틴은 그의 구원이자 음악의 천사이다.


소설 속의 크리스틴은 늘 가면 뒤에 감춰진 에릭의 얼굴을 궁금해하며, 호기심에 잠시 잠이든 에릭 몰래 그의 가면을 벗긴다. 그리고 드러난 흉측한 얼굴과 불같이 화를 내는 그에 놀라 달아난다. 그러나 극 중에서 에릭의 가면을 벗기는 것은 호기심이 아닌 사랑이다. 크리스틴은 자신이 그의 얼굴을 보고도 그를 사랑할 수 있다며 에릭에게 가면을 벗어 보일 것을 간청하고 에릭은 그녀를 믿고 가면을 벗어 보이지만 크리스틴은 그의 얼굴에 놀라 달아난다.


그러나 그 뒤에 그녀는 도망친 것을 후회하며 다시 돌아가고자 한다.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소설과 뮤지컬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과 관계의 차이를 단적으로 느낄 수 있으며, 공연을 보며 에릭의 불행을 함께 슬퍼하게 된다.





[김민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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