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녹천에는 똥이 많다 - 우리의 가치를 지키는 방법에 대해 [공연예술]

마이너에 대한 고찰 14
글 입력 2019.06.05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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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opsis

어린 시절 홀로 상경해 갖은 고생을 거쳐 마침내 교사가 된 준식은 아홉 번의 실패 끝에 당첨된 아파트에 입주한다. 힘든 시기를 지나 그가 그토록 꿈꾸었던 안정된 직장과 집을 얻게 된 그 때, 십여 년간 만나지 못했던 그의 이복동생 민우가 집으로 온다. 준식 가족은 민우와 다소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다. 준식의 아내 미숙은 민우와 점차 가까워지며 자연스럽게 민우와 준식을 비교하게 된다. 준식은 그동안 힘들게 꾸렸던 자신의 안정된 삶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이창동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80년대를 살아가는 전혀 다른 두 형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형 준식은 어렸을 때부터 생존이나 안정적인 삶을 위해 이따금 양심은 내려놓고 옳지 못한 선택을 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빵을 훔치는 행위를 돕는 것이나 학교에서 비리로 타낸 돈으로 조금의 보너스를 타내는 정도였다. 그 외에 그의 삶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벌고 그 끝에 서울 변두리이지만 작은 아파트를 얻는 결실도 있는, 꽤나 열심인 삶이었다.

반면 동생 민우는 어릴 때부터 조그마한 비양심적인 행동도 용납하지 못했다. 그래서 빵 도둑질을 하는 엄마와 형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대학을 간 뒤에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운동을 하다가 경찰들에게 쫓기는 처지에 놓인다.

그렇게 각자 다른 삶을 살아오던 두 형제는 민우가 준식의 집에 들어가게 되면서 불편한 동거를 이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준식의 아내 미숙은 준식에 대한 실증과 민우에 대한 동경, 감정을 갖게 되고, 애써 꾸려온 준식의 가정은 산산조각 날 위기에 처한다. 이에 불안감을 느낀 준식은 민우를 경찰에 신고하고, 자신의 삶 한중간에서 길을 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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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인가, 누가 될 것인가, 그리고 누구를 비난할 것인가?


개인이 무언가를 감상할 때 완벽히 객관적이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어떠한 이야기를 접할 때 자연스럽게 ‘투영’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감정이입을 하거나 각기 다른 정도의 거리를 두면서 이리저리 비춰보고, 그 ‘비춰봄’의 행위는 각자가 살아온 흐름에 따라 상이해진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구든 영화나 드라마 혹은 책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쟤처럼 살지는 말아야지.’ ‘저렇게 사는 게 진짜 인생이지!’ 등등. 나 또한 되돌아봤을 때 그래왔다. 작품을 감상할 때 일어나는 이러한 과정에 대해서 한 번도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이 흐름이 본성처럼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는 작품을 감상하면서 각자의 기준으로 인물을 판단하고, 선과 악을 나누곤 하는데, 대조적인 두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선과 악은 명확히 구별되어 있기 마련이다.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도 마찬가지이다. 표면적인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곳에서의 선과 악은 명확하다. 정의와 신념을 위해 살아가는 동생 민우와 생존을 위해 약간의 양심 정도는 버릴 수 있는, 이야기의 끝에서는 동생마저 저버리는 준식. 이 두 형제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확실히 선은 민우이고 악은 준식이다.

그러나 과연 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한 것인가? 그리고 인간의 삶이 그렇게도 단순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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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식의 삶


먼저 준식의 삶을 생각해보자. 가난한 준식은 먹고 사는 문제, 그리고 안정적인 삶을 꾸리기 위해 어느 정도의 양심과 도덕은 내려놓고 절실하게 내달린다. 그런 그에게 낭만이나 정의 같은 것이 의미 있을 리 없다. 덕분에 미숙과의 관계 또한 점점 권태로워지고, 그의 삶은 돈을 벌기 위해 이리저리 치이는 것으로 가득 찬다. 서울 변두리에 23평 아파트를 얻기까지 그의 삶은 생존과의 투쟁과도 같았다.

그 투쟁의 과정에서 준식이 조금씩 내려놨던 도덕성의 결과를 바라보면서 누군가는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준식은 생존이라는 기본조건을 이루는 것만으로도 벅찼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존을 위해 양심을 놓는 이는 준식뿐만이 아니다. 극의 마지막 장면은 비리로 보너스를 타내고 술을 마시는 선생들의 모습을 담는다. 어느 정도의 양심을 버리고 사는 이가 준식 하나가 아님을, 그 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그 그림자는 극을 보고 있는 나에게로 드리워지고, 이는 더 이상 준식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보이지 않는 많은 이들이 생존을 위해 양심을 저버리고 살아가고 있다면, 과연 그것이  개인의 문제 때문인 것이냐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이러한 의문의 제기는 이들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함은 아니다. 우리 전체가 더 나은 곳으로 향하기 위해 준식과 같은 개인에 대한 비난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회의가 들 뿐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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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의 삶


그렇다면 민우의 삶은 어떤가? 그의 삶에는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이 있다. 낭만, 시, 정의와 같은 것들. 그는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해를 입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여기까지 민우의 삶은 마치 절대선과도 같다.

그러나 민우가 정의를 지키는 동안 준식과 그의 어머니는 민우의 생존을 위해 양심을 버렸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들이 먹고 살 수 있었던 것은 편법이 아니고서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민우와 준식의 어머니는 시장에서 악착같이 김밥과 오뎅을 팔다가 똥을 지리기도 했고, 아들을 이용해 빵을 훔치기도 했다. 결국 민우의 정의로운 삶 뒤에는 애처로운 어머니와 준식의 발버둥이 있었던 것이다. 과연 준식과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민우가 정말로 생존의 위협을 바는 상황이었다면 끝까지 자신의 가치를 지킬 수 있었을까?

설령 민우가 그럴 수 있었다고 해도, 그 범주를 민우와 같은 사람들로 넓혔을 때 확률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오롯이 지키는 이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민우의 정의로운 행위들에 대해 준식처럼 ‘배부른 소리’로 치부하고 싶지도, 그 가치를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인간으로써의 최소한의 양심, 그리고 가치를 지키는 것은 우선적으로 생존이라는 가장 본능적인 필수조건이 충족되어야 하고, 극 속의 사회에는 그 필수조건이 무조건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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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이야기에 절대악과 절대선은 없다. 그저 각자의 이상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이들의 이야기일 뿐. 다만, 그 이상이라는 것은 환경에 따라 개인이 선택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비참함은 남아있다. 준식이 말하듯, 누가 그렇게 살고 싶어서 그렇게 살았겠는가? 불가항력, 불가피한 것들, 그것을 개인의 핑계로 두고 손가락질하기엔 사회는 개인들에게 충분히 너그럽지 않았다. 더 나은 무언가를 원한다면 준식에게 손가락질하기 보다는 모든 이들이 자신만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게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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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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