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가의 지극히 일상적인 고통, 뮤지컬 '루드윅' [공연]

글 입력 2019.06.06 02:1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7ecc22a7d51f23a3cb5b1c2c587ebfe5_ZkfGkBKxDO.jpg
 

처절했다.

단순히 베토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휴머니즘 감동 실화’ 정도이지 않을까 했던 예상은 단 몇 분만에 깨져버렸다. 베토벤의 감정은 절망적이었고, 죽음에 가까웠으며, 그가 겪게 되는 사건들도 비극적이었다. 실화를 완결된 스토리로서 확장시키기 위해 등장한 발터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뮤지컬의 비극적 서사를 완성시킨다.

전체적으로 이 뮤지컬은 무엇을 얘기하려는 지 혼란스러웠다. 오로지 베토벤이 이런저런 상황 때문에 이토록 비극적이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고뇌와 사유의 흔적보다도 직접적인 감정표출과 상황 설명이 주가 되었던 것 같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자 동행했던 친구와도 무대 연출에 대한 부분과 몇 가지 대사 외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뮤지컬 ‘루드윅’의 의의는 보통 사람들이 평소엔 표현하지 못하는 극한의 감정을 접하고, 그들에게 이런 종류의 절망감과 고뇌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 절망을 처절하게 아는 사람으로서는 뮤지컬을 보는 시간이 고통이기도 했다.


e6a68cd9b35104f31d3e053366cc56a6_bROXpo4XLK9xHsWQE5UnAbbmDuHsl.jpg
 

이 글을 쓰기 위해 여러 장면들을 떠올릴 때도 기억나지 않던 장면은 극 초반 베토벤이 첫 번 째 자살을 시도하려던 장면이었다. 발터가 들이닥쳐 죽음은 면했지만, 자살을 위해 책상에 올라가 총구를 머리에 겨누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때문에 많은 시간 기억 속에 잊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뮤지컬을 다시 보고 싶은 이유가 그 장면에 있기도 하다. 몇 개월간의 심리상담을 해가며 겨우 잊은 절망감과 무기력함을 갑작스럽게 맞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동질감이 느껴졌다.

마치 서로 힘들었던 얘기를 털어놓으며 위안을 얻듯, 머리에 총구를 겨누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도 처절해서 도리어 과거에게 위안의 손길을 내미는 것처럼 느껴졌다.


0cd8473e71fb5ccd913b51fb7bc08b67_jW18AkQ4cCnksc1rqsTXfyV1RG.jpg
 

감정적인 부분에 압도되어 서사는 크게 기억에 남지 않는다. 적당히 전형적이었고, 전형성을 적당히 탈피하지 않았나 싶다. 몇 가지 무대 연출과 상황에 대해 인상 깊었던 부분을 나열식으로 정리하며 마무리하겠다.

이명을 표현해내는 방식이 창의적이라고 느꼈다. 이명을 레이저를 쏘고 주변 소리를 모두 소거하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또한 베토벤이 점차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묘사해내는 것에서 감탄했다. 대체로 조명을 잘 썼다고 느꼈다.

특이했던 부분은 과거 회상 장면 중 베토벤이 어린 시절 모차르트와 비교당하며 혼나던 부분이다. 어린 베토벤이 반대로 성인 배토벤을 혼내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성인이 어린이를 혼내는 상황을 역할을 바꾸어 표현하니 현재 성인 베토벤이 겪고 있을 트라우마를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여성 캐릭터에 대한 전형성을 탈피하려는 모습이 보여 좋았다. 마치 초반엔 공중파 드라마 속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에 그칠 줄 알았기에 중반부의 변화가 더욱 드라마틱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흥미롭게도 함께 관람한 친구와 내가 모두 건축학과 여성이라서 마리가 처한 상황에 좀 더 이입할 수 있었다.


7ecc22a7d51f23a3cb5b1c2c587ebfe5_az4nSEEIf.jpg
 

베토벤이 고통스러워하며 치던 피아노 소리에 어떤 이는 꿈을 키웠다는 상황은 모순적이었지만, 매우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문화를 향유하는 우리는 문화를 창작하는 자의 고뇌, 고통과 절망을 알지 못한다. 일상적인 삶조차 들여다볼 기회가 적다.

‘루드윅’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감정들이 아닐까 싶다. 예술가의 지극히 일상적인 고통이 궁금하다면 한 번쯤 경험해도 좋을 뮤지컬이다. 하지만 본인이 그런 종류의 감정들로 인해 힘들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중을 노려봐도 좋을 것이다.



8810f5e708bf30b8d2f0462749e1d70e_opZL1Fl4JMxikxa.jpg
 

[황혜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