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토록 인간적인, 그의 이야기 -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

베토벤의 음악과 삶에 대하여
글 입력 2019.06.0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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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윅 메인포스터.jpg
 

 

 

Prologue. 위인전에 대한 기억



어린 시절에 집에 있던 위인전 전집이 생각났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나에게 책 읽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논리력과 수리력(?)을 높여준다는 어떤 출판사의 카피에 혹하셨는지 약 20권 가량 되는 위인전들을 거실 책장에 들여놓으셨다. 이 중 기억나는 위인 몇 명 중에 베토벤이 있었다. 청력을 잃고 음악을 한다니, 시력을 잃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보다 더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 같았다.


그의 음악적인 업적보다도 불가능해 보이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어린 나에게는 더 충격적이었다. 좀 더 크고 나자, 훌륭한 음악가이자 악성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는 베토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제는 진짜 그의 삶, 어딘가 어둡고 장엄한 이미지 뒤의 베토벤의 삶에 대해 뮤지컬을 보며 의문을 갖게 되었다.


 

 

Synopsis.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천재 음악가’ 베토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와 같은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존재 의미와 사랑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고뇌했던 ‘인간’ 베토벤이 무대에서 다시 태어난다.

 

얼마 남지 않은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앞두고 쓰인 베토벤의 편지 한 통. 그리고 그 편지가 한 여자 앞으로 전달된다.

 

청력을 일고 좌절의 늪에 빠져 있던 청년 베토벤이 죽음을 마주하고 있던 바로 그날 밤, 세차게 내리치는 폭풍우 소리와 함께 낯선 여자 마리가 어린 소년 발터를 데리고 무작정 찾아와 그에게 발터의 피아노 선생님이 되어 달라 청한다. 망가진 청력, 나락으로 떨어진 자괴감에 베토벤은 그녀의 제안을 완강히 거부하고, 마리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그에게, 또 다른 세상의 문을 열어 두고 떠난다.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인연을 마주한 베토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 되는데…


 

 

애증에서 애정으로



베토벤은 음악을 자신의 의지로 좋아서 시작한 케이스는 아니었다. 7살에 음악을 시작했다는 모차르트에게 지지 않기 위해, 9살이던 베토벤의 나이를 속여 공연 순회를 시킬 만큼 베토벤의 아버지는 매우 가혹한 사람이었다.


그 자신도 역시 궁중 음악가였지만, 모차르트보다 더 위대한 음악가로 베토벤을 키워내고자 매일같이 다락방에서 어린 베토벤에게 피아노 연습을 시켰다. 그 모습은 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유년기의 베토벤을 힘들게 했으며, 음악에 대한 생각을 해볼 겨를도 없이 눈앞의 공연을 그저 억척스럽게 소화하는 것에만 매달리게 만들었다.

 


청년 역 이용규.jpg
 


그랬던 소년은 자라면서 음악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시작하고 자신의 길을 찾기 시작한다. 음악은 비로소 자신이 따라야 할 운명이 되었고 창조적 욕구는 매일같이 샘솟았다. 청년기의 베토벤은 음악에 완전히 미쳐 지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작을 해냈다. ‘피아노 3중주곡’, ‘비창’과 같은 곡들이 이 때 쏟아져 나왔다.

 

 

 

침묵 속의 예술



한창 음악적 역량을 발휘하던 그에게 예상치 못한 난관이 찾아온다. 어느 순간부터 약해진 청력으로 인해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을 만난 것이다. 어떤 심정으로 그가 음악을 대하게 되었을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베토벤은 커다란 고통과 괴로움을 겪게 된다. 이 장면에서 무대는 어두워지고 조명은 비극적으로 그를 비추어낸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침묵 속에서 모든 걸 내버리고 술과 슬픔에 젖어 사는 그의 모습은 보는 사람도 정말 힘들게 했다. 애정과 증오의 양가적인 감정이 다시 한 번 그를 찾아와 고통의 소용돌이로 내몰아 버리는 모습은 극적인 무대연출로 표현된다. 운명과 예술 속에서 고뇌하고 존재의 의미를 찾던 음악을 상실한 베토벤의 모습은 껍데기만 남은 듯 곧 사라질 것처럼 위태해보였다.

 


루드윅 역 서범석, 청년 역 이용규.jpg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발터와 마리가 찾아와 선생님 역할을 부탁하기 전까지는 계속 같은 상태였다. 슬픔 속에 허우적대던 그에게 누군가의 스승이 되기란 당시의 그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었기에 간절한 부탁을 뒤로하고 베토벤은 또다시 혼자만의 동굴 속에 들어간다.


 

 

터널의 끝에서



긴 것만 같았던 터널에서 베토벤은 조금씩 바깥으로 나왔다. 소리는 전보다 더 들리지 않는 상태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에게는 음악이 있었고, 죽은 발터를 곡 닮은 듯한 조카 카를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방법이 옳지만은 않았지만 그는 엄청난 애정과 음악적 요구를 카를에게 매일같이 쏟아부었다. 자신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미래의 음악에 대한 어떠한 환상을 그에게서 실현하려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베토벤의 모습은 안타까웠다.


음악과 존재의 의미를 타인에게서 찾으려는, 이토록 인간적이고 외로운 음악가라니. 그 위인전은 아무래도 왜곡된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물론 그 내용을 다 믿었던 것은 아니지만, 위대함에 가려져 있던 베토벤의 인간적인 삶의 모습을 눈앞에서 여과 없이 보고 있자니 (상상이 가미된 픽션임에도 불구하고) 씁쓸한 기분도 들었다. 

 


마리 역 김지유, 루드윅 역 김주호.jpg
 

 

그러던 어느 날, 다시 찾아온 마리는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건축가가 되었다며, 남자의 행색으로 세계를 돌아다닌 이야기를 신나게 풀어놓았다. 물론 반가운 만남이었지만, 베토벤은 마리가 걱정이 되어 남자의 모습으로 건축가를 계속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마리도 조카 카를에게 발터의 모습을 강요하지 말라는 조언을 하며 두 친구는 또다시 헤어짐을 맞이한다. 결국 카를은 군인의 꿈을 선택해 떠나고 베토벤은 외로이 예술혼을 불태우다 생을 마감한다.

 

 

 

교향곡 같았던 한 편의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는 전체적으로 베토벤의 인간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음악적 과업을 이뤄내기 위해 그가 겪은 외로움과 내·외적 갈등의 서사가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 베토벤과 그가 처한 운명과의 갈등 구조가 작품의 음악과 분위기, 장면 연출과 긴밀하게 어울리며 전개되는 극이다.


여기에 마리의 여성 건축가로서의 어려움, 음악 신동 발터의 죽음과 카를이 군인이 된 이야기가 “꿈”이라는 공통 분모에서 뻗어나가며 베토벤의 삶을 좀 더 다층적으로 비추어 낸다.

 


피아니스트 역 강수영.jpg
 

 

작년 11월이 초연이었음에도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팬덤을 양산하며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잡은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이는 ‘꿈과 운명, 현실과의 갈등’이라는 공감대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한 이야기에 익히 알려져 있는 베토벤의 괴물 같은 예술성이 더해져 빛이 난 결과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이었다. 어떤 공연을 보고서 배우들의 연기에 빠져들어 극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이 참 오랜만이었고, 흡입력이 굉장히 강해서 매순간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청년 역을 맡은 배우가 청년 시절의 베토벤, 조카 카를의 모습을 함께 연기하고 발터 역의 아역 배우가 발터와 어린 베토벤, 카를의 어린 시절을 동시에 소화하는 설정도 매우 매력적이었다.


공연 내내 무대 한쪽에서 라이브로 연주되던 피아노 선율까지 아름다워서, 연기와 음악, 연출이 하나의 교향곡처럼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했다. 베토벤의 음악적 소망에 관한 이토록 인간적인 이야기가, 나는 지금도 음악으로 남아 귀에 맴도는 것 같다.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
- 열정의 베토벤을 만나다 -


일자 : 2019.04.09 ~ 06.30

시간
화, 수, 목, 금 20시
토요일 15, 19시
일요일 및 공휴일 14, 18시

장소 : 드림아트센터 1관

티켓가격
R석 66,000원
S석 44,000원

기획/제작
과수원뮤지컬컴퍼니

관람연령
만 10세이상

공연시간
110분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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