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에릭 요한슨 전 - 상상이 현실이 되는 세계 [전시]

글 입력 2019.06.07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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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사진만 있다면 아무리 기이한 이야기일지라도 진실이 된다는 것을. - 김희선, <공의 기원>(2019년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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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와 사진 사이, 특별한 일상을 그리다



개인적으로 사진은 예술의 한 분야이기는 하지만,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으로서는 좋은 사진을 알아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인물이 아닌 자연물이나 인공물을 찍은 것이라면, 찍은 이의 의도를 파악하는 교육을 받지 않은 이상 해석하기 어렵다고 느낀다. 그래서인지 회화 전시는 여러 차례 가 본 적이 있지만, 사진 전시를 가 본 적은 없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사진이라는 예술 분야에 입문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 에릭 요한슨의 사진을 통해, 우리가 평소 PC나 스마트폰을 통해 쉽게 만날 수 있는 사진을 전시회장에서 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깨달았다. 대형 작품이나 포토존의 경우 직접 사진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고, 사진의 구도와 작품의 전체적인 조도를 꼼꼼히 살피게 되어 작가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사진을 만들어낸 아이디어는 특별하지만, 그의 상상의 세계에서는 그 모습들이 일상이다. 날마다 다른 모양의 달을 갈아 끼우고, 양털을 깎아 구름으로 올려보내고, 축음기의 음파가 호수에 비친 나무가 되는 일이 일어나는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상상의 출발점이 우리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달의 모양이 변하는 것, 양털 같은 구름이 떠 있는 것, 음파의 모양이 호수에 비친 나무의 모습과 비슷한 것에서 착안한 그의 사진들은 우리가 지나치는 일상을 특별한 상상으로 풍요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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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상상력으로 행복해지는 시간



우리는 언제부터 상상하지 않게 되었을까?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풍선을 타고 날아가는 상상을 하고, 바위를 깎아 공중에 떠 있는 도시에 사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자라면서 우리는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도록 강요받는다. 상상의 세계처럼 낭만적인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기대할수록 실망하게 되면서 점점 현실에서 눈으로 보는 것들만 생각하게 된다. 나 역시도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는 법을 잊었다.


그러나 약간의 상상은 삶에 활력소가 된다. 일상의 아름다움에 하나하나 감탄하고 상상하며 감사할 줄 아는 `빨간 머리 앤`처럼, 눈으로 보이는 것 이상을 보면 삶을 다채로운 색으로 채울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상상은 회피적이거나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같은 세계를 경험하지만 좀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하루를 행복하게 할 것이다. 상상력이 부족한 이들도 이 전시에 방문하게 된다면 에릭 요한슨의 상상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묵직한 메시지, 생각하게 하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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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세계조차도 마냥 천진난만하게 채워지지만은 않았다. 그의 작품 ‘Demand&Supply’는 언뜻 보면 르네 마그리트의 `피레네의 성`처럼, 공중에 떠 있는 환상적인 도시의 모습을 찍은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아래쪽에는 도시를 개발하기 위해 돌을 깎아내고 흙을 퍼 올리는 굴착기가 있다.

아마도 전시회에 직접 방문하지 못했다면 영원히 이 굴착기들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기사를 쓰는 지금도 다시 사진을 들여다보아도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닥쳐올 불행을 생각하지 않은 채,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도시를 채우기 위해 혈안이 된 모습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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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Go Your Own Road`는 전시로 만나게 되니 더욱 실제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의지에 찬 표정 또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직접 콘크리트 길을 집어 들고 풀숲을 헤치는 남자는 그 어떤 사진보다도 `개척자`의 의미를 잘 담고 있다.

도슨트 서비스와 오디오 가이드가 있기는 하지만, 원래 작품에는 영문 제목만 있을 뿐 아무런 설명이 없다. 에릭 요한슨은 원래 사람들이 제목만 읽고 사진에 대해 마음껏 상상하기를 바랐다고 한다. 이 작품의 경우 제목이 많은 것을 담고 있으나, 관람객이 직접 자신만의 해석을 채워 넣어야 하는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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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 전 발표된(유튜브의 Behind the Scene 공개일) 2019년의 신작 `Give Me Time’이 그런 작품에 해당한다. 제목은 `Give Me Time`이지만, 모순적이게도 남자는 이미 시간을 상징하는 무거운 시계를 끌고 가고 있다. 시간을 가볍게 이끌고 가지 못하고, 힘겹게 족쇄처럼 끌고 가야 하는 모습은 시간을 지배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분명 나에게도 시간이 있지만, 그 시간은 남들이 시키는 일을 하는 데 소진되어 버리고, 정작 혼자 남겨졌을 때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하릴없이 스마트폰으로 스크롤을 내리고, 남들의 일상을 살펴보기 바빴다. 이제부터라도 내가 나의 시간의 주인이 되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해보고 싶다. 온전히 나의 의지로 행동하는 시간이 아닐 때조차도 그 행동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되새겨보려 한다.



에릭 요한슨과 직접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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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필 사인과 구매한 엽서, 램프


6월 7일 14시경 한가람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우연히 전시회장 앞에서 에릭 요한슨을 직접 만나게 되었다. 홍보 영상을 찍으러 온 듯한 모습이었는데, 한국 팬들을 위해 친절히 사진을 찍어주고, 사인해 주기도 했다. 마침내 나의 차례가 되었을 때, "I came here to write an article about you and this exhibition(저는 당신과 당신의 전시에 관해 기사를 쓰기 위해 여기 왔어요)"라는 말을 건넸는데, 따뜻한 미소를 보여주며 "That’s Great(좋군요)!"이라고 대답해 주기도 했다. 한국 전시회에서 최초로 신작 2점을 공개하기도 한 만큼,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더 묻고 싶었지만, 뒤에 기다리는 수많은 관람객을 위해 자리를 비켜줘야 했다.


전시 내내 작가를 직접 만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사진과 함께 그가 작업한 과정을 담은 영상을 함께 보며 더욱 놀랐다. 그의 사진은 처음에는 그의 귀여운(!) 드로잉으로 구상이 되고, 사진에 필요한 소품을 직접 구해서 짧은 시간 안에 계획적으로 사진을 찍은 후, 포토샵을 통해 약 150장의 레이어를 합쳐 만들어진다. 소품을 직접 구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전시장 곳곳에 사진을 찍는 데 사용되었던 실제 소품들이 배치되어 있기도 했다. 모든 부분을 다른 레퍼런스 없이 직접 찍은 사진만으로 구성하기 때문에, 1년에 두 작품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제작 과정을 알게 되면 작품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된다. 게다가 그를 직접 보게 된 후였기 때문에, 나는 이 예술가의 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가급적 전시회에 직접 방문할 것을 추천하지만, 웹사이트에 그의 모든 작품과 제작 비하인드가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전시회에 오지 못하는 경우에는 이 사이트를 방문해보았으면 한다.




편집을 통해 완성된 사진에 관심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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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gur Gallenkus의 작품


사진을 이어 붙여 인상적인 이미지를 제시하는 또 다른 예술가가 있다. 바로 터키의 사진작가 Ugur Gallenkus다. 세계의 정반대 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절묘하게 붙여, 희극과 비극을 교차시킨다. 사진이 신선한 충격을 주고, 실사를 이어 붙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에릭 요한슨의 사진과 비슷한 것 같아 꼭 소개하고 싶었던 작가다. 이 전시에 다녀온 후 비슷한 작품에 관심을 두게 된 사람들에게 인스타그램에서 @ugurgallenkus를 찾아볼 것을 추천한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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