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베르나르 뷔페 [전시]

글 입력 2019.06.12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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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 병으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베르나르 뷔페' 소개 글 중 이 한 문장이 나를 울렸다. 내게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나도 죽고 싶을 것이다. 생에 그림 밖에 없던 화가는 자살이 가장 편한 방법일지도, 아니 자살 밖에는 방법이 없을 수도 있겠다.

내가 전업 화가도 아니고 순수 작가로써 그림에 목을 매지는 않지만, 나는 그 마음을 충분히 알고 공감한다. 나는 여전히 사랑하고, 작가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게 많고 활동적이고 생을 위해 일을 하는, 예술을 사랑하는 예술인이니까. :) 나는 자신을 작가로 칭하는 것에 더 이상 망설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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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눈물이 났다. 얼마전에 봤던 <루드윅>의 베토벤도 귀가 먼 음악가의 이야기에서도 같이 울었으니까. 얼마전에 봤던 <꼬리박각시>에서 '너가 없던 나'도 동일한 감정이었다. 내 전부였던 것이 사라지는 경험. 나도 단순해서 그런지 공감이 잘 된다. 나는 하나밖에 생각을 못하고, 그 하나가 없어지면 패닉에 빠진다. 그 감정을 느끼고 있다. 너무 슬프다. 정말. 글로 더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저 슬프다. 지금도 울적하다.

어떤 화려한 이력을 지녔지만, 물론 그 유명세는 화가의 생존을 위해 꽤 많이 필요한 요소이지만, 나는그림에 더 집중하고 싶다. 그림은 정말 직선이 가득하고 채도가 낮은 우울함이 가득하다. 직선은 많은 감정을 함축했다. 행복하지도 않은 그림들로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다니.


대신 우울함을 겪고 표출해주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 값으로 인정울 받는건가 하는 베베 꼬인 생각도 해본다. 이런 서늘함과 우울함이 인기를 끈다는 건 그만큼의 수준(?)도 있고 감정적인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사람을 끄는 매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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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nard Buffet, Autoportrait au chevalet, 1948, huile sur toile, 200x94cm, ⓒ Bernard 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19



자화상이 난 너무 슬프다. 그냥 그림들을 보면 왠지 눈물이 난다.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추상회화가 주류인 시대에 구상회화 작가로 남았다라, 왠지 마리 로랑생도 생각난다. 사회 유행에 동요하지 않는 대쪽같은 대나무 감성인 걸까. 마리 로랑생 전시도 2시간을 머물러있었다.


'나는 평생 재능있기만을 바랬다'는 마리처럼. 뷔페도 '영감을 믿지 않는다. 단지 그릴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하긴, 고흐도 빈 캔버스가 무서워질 때 붓을 들면 사그라든다고 하지. (정확한 말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전부 다 공감되는 내용이다.

때가 되면 - 과연 그 '때'라는 시기가 찾아올까 - 나도 유화 작업을 해볼까. 우울한 흐린 날엔 그림 그리기 딱인데. 나는 빠르게 그릴 수 있는 드로잉이 좋다. 건필 재료로 종이에 호다닥.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고 아우라를 지닌 작품이 되려면 역시 순수 오일페인팅으로 해야하는가 싶기도 하다. 오래 잡혀있기는 싫은데, 왠지 다시 돌아갈 것만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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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노트



19살, 어린 나이에 천재로 인정받은 화가, 베르나르 뷔페. 인간의 모든 감정과 경험을 붓으로 전하다.



나는 영감을 믿지 않는다.

나는 단지 그릴 뿐이다.


- 베르나르 뷔페 (1922~1999)



혼돈의 시대에 태어나 일찍이 천재로 인정받은 화가, 베르나르 뷔페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사조로 설명할 수 있는 작가가 아니다.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뷔페는 “모든 것이 파괴되고 공포 속에서 살았다. 그 시절에는 먹을 것과 그릴 것만 찾아 다녀야 했다”라고 말하며 삭막하고 쓸쓸한 풍경, 메마른 사람들 그리고 좌절의 초상을 그려냈다. 황량했지만 자유로웠던 세상에서 자신에게 허락된 최소한의 색상과 스스로 창작해낸 방법으로 그려낸 캔버스는 많은 이들의 외롭고 지친 감성을 대변해 주며 공감을 자아내었다. 그 결과, 1948년 10대 청년이었던 뷔페는 유명한 비평가상을 받으며 프랑스 화단에 혜성처럼 나타나 모두를 열광하게 만들었다.

1958년 베르나르 뷔페는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지성과 감성의 문인 프랑수아주 사강 등과 함께 뉴욕 타임즈의 “프랑스의 가장 뛰어난 젊은 재능 5인”으로 선정되었다. 또 당시 70대었던 거장 피카소의 “대항마”로 불렸던 유일한 화가인 30대 청년 뷔페는 ‘꼬네상스 데자르 매거진(Connaissance des Arts magazine)’에서 프랑스인이 제일 좋아하는 작가 1위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레지옹 도뇌르 문화훈장을 2번이나 수여 받은 프랑스의 20세기 최고이자 마지막 구상회화작가이다.

추상회화를 지향하는 시대의 흐름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유지하며 그 어떤 혹평과 비난에도 굴하지 않은 진정한 화가였던 뷔페는 파킨슨병으로 인하여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게 되자 1999년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약 50년동안 이어진 뷔페의 시대별 대표작품을 유화작품 92점과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 등을 통해 서 만나볼 수 있다.

 

▶전시 소개



<나는 광대다_ 베르나르 뷔페 展: 천재의 캔버스>는 20세기 프랑스의 마지막 구상회화 작가인 베르나르 뷔페의 국내 최초 대규모 단독 회고전이다.


이번 전시는 파리 시립 근대미술관,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푸쉬킨 박물관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의 회고전에서 선보였던 작품들을 비롯하여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4-5미터에 이르는 대형 작품을 포함한 총 92점의 유화작품들과 한 편의 영화 같은 그의 삶을 소개하는 영상 및 사진자료들로 구성되어 있다.


살아 생전 한 인터뷰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 베르나르 뷔페는 “모르겠어요… 아마도 광대일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는 자신이 그렸던 광대나 서커스의 테마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인간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내면과 외면의 이중성에 대한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일 것이다. 뷔페는 50년이라는 기나 긴 시간 동안 작품활동을 하며 본인이 마주하는 일상 속의 사물이나 사람 그리고 본인의 초상을 캔버스에 담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베르나르 뷔페의 시대별 주요작품을 소개한다. 전시 초반에는 유명해지기 시작한 1940년대 후반,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1950년대의 대표적인 정물화와 인물초상화 그리고 평생의 뮤즈이자 아내였던 아나벨과 서커스 테마가 등장하는 1960년대의 대표작들을 보여준다. 전시 중반은 거친 직선으로 표현한 잔혹한 아름다움을 가진 건축 풍경화와 강렬한 색상이 특징인 인물화 그리고 오디세이와 같은 문학작품을 소재로 한 대작들을 보여준다. 마지막 부분은 1990년대의 작품들로 구성 되며 뷔페가 죽기 전까지 작업하였던 화려한 색상의 광대 시리즈와 죽음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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