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공연, 그리고 글로벌

글 입력 2019.06.12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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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느껴 본 글로벌



필자가 한국에 돌아오고 현재까지 가장 크게 느끼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 외국인들의 유입이 참 많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광범위한 부분부터 세세한 모든 부분까지 글로벌화 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는 공연계에 또한 큰 영향을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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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20시 예술의전당 챔버홀에서 진행된 ‘서울스프링 실내악축제’ <exotic flavor>에는 외국인 연주자와 국내 연주자의 비율이 같았다. 그에 따른 관객들로 외국인과 내국인 모두가 객석을 채웠고, 예전과 비교해 보았을 때 외국인의 비율이 확연히 늘어났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 값으로 달라진 환경만큼 일어난 새로움에서 사람마다 느끼는 장점과 단점이 존재할 것이다.




클래식 공연에서의 긍정적인 효과



필자에게 장점으로는 ‘넓어진 시야’가 대표적이었다. 외국인과 내국인 모두로 채워진 연주자와 관객들이 함께 공연을 꾸려가며 만들어지는 상황들은, 국내인들로만 이루어지는 공연과는 확연히 다름을 피부로 느껴지게 한다. 사실 ‘클래식’은 이미 서양의 음악이다. 이를 국내인이 연주한다고 해서 서양의 향이 없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미 음악 자체가 서양의 향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클래식계는 이미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글로벌화 되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글로벌이 겉으로 분명하게, 눈에 보일만큼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모두의 이목을 집중 시킬 만 하다.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부터 다르니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어도 조금은 먼 듯한 이국적인 향이 물씬 풍긴다. 그것이 멀게 느껴져서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시야를 넓혀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먼 것이 아닌, 넓은 범위 안에서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은 관객들 사이의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낸다.


같은 공연을 보고 함께 호응하며, 같은 음악을 듣고 함께 감동한다. 무대에서 함께하는 이국 향은 그 매력을 더한다. 함께 연주하며 드러나는 그 친밀감과 자유로움, 보다 얽매이지 않는 서양 특유의 매력은 우리나라의 정돈된 형식과 잘 어우러져 음악의 매력을 더한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유럽이나 미국, 즉 서양에서 또한 마찬가지다. 이미 많은 국적의 사람들이 함께 사는 그 곳에서는 이러한 분위기와 아름다움이 이미 당연하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현장의 모습, 그 변화



그렇다면, 이를 모든 방면에 대입할 수 있는 추상적인 매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일반적인 한국 공연에 발을 들인 글로벌, 국내인 으로서 명백히 느낄 수 있었던 전과는 다른 차이점에 더욱 자세히 초점을 맞추어 볼까.


일반적인 국내 실내악 연주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박수를 보낼 때 ‘브라보’를 외치지 않는다. 사실 생각해보면 한국의 ‘브라보’는 없다. 그저 서양에서 무대에 극찬을 보낼 때 외치는 ‘브라보’를 가져올 뿐이다. 그 때문에 국내인 들로만 이루어진 작은 연주에서는 큰 박수를 보낼 뿐, ‘브라보’를 외치지는 않는다. 물론, 성악 등의 외국어에 이미 크게 영향을 받은 음악이나 큰 오케스트라 공연의 피날레에서는 ‘브라보’가 들릴 때가 있다. 하지만 크지 않은 실내악 공연장에서 ‘브라보’를 듣는다는 것은 불가능 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스프링실내악축제 <exotic flavor>는 달랐다. 모든 곡이 끝날 때 마다 큰 박수와 ‘브라보’가 빠짐없이 들렸고, 이는 공연을 더 에너제틱 하게 이끄는 효과를 선사했다. 이전의 점잖았던 클래식 공연과는 차원이 다르게, 모든 사람이 긴장하기 보다는 감상을 했고, 그 감상에 대한 부족함 없는 반응을 아낌없이 쏟았다. 물론 국내인들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우리나라의 공연에 임하는 예의와 적당한 긴장감은 공연이 순탄하게 이루어지는데 큰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다.


이는 우리나라 공연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관객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어, 넓은 시야 안에서의 절충 선을 적당히 찾을 수 있었던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면에서 보았을 때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exotic flavor>는 더하지도 과하지도 않았던, 적절한 선을 함께 맞추어나간 제목에 걸 맞는 공연일 것이다. 필자가 이전에 언급한 ‘일반적인 공연’은 이제 시대착오적인 개념의 단어일 것이다. 글로벌화 되어진, 더욱 글로벌화 되어 질 이 시대에 ‘일반적인’ 것은 계속 변화하는 모습으로 자리 잡을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공연이던, 그 무엇이던.




변화 과정에서 나타났던 아쉬움



이 공연에서도 위에서처럼 그 변화를 겪으며 나타나는 장점이 많았지만, 아쉬웠던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필자에게 그 점은 해설로 나타났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참석하는 공연이니 만큼 간간히 진행되는 해설은 영어로 이루어졌고 이는 관객들에게도 조금은 아쉬운 영향을 끼쳤다. 무대를 재정비 하는 동안 연주자들은 나와서 곡 해설을 진행하였다. 이 때 외국인 연주자 대부분이 나와서 해설을 진행하였는데 이는 아마 글로벌화 되어 진 관객들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영어가 세계 공통어라는 사실은 유효하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기초해 두고, 함께 많은 것을 깨달아가는 ‘사람’들이다. 글로벌화 되어 진 만큼 ‘언어’에 대한 존중의 방면 또한 예민해 진 것이 사실이고,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공연에서는 이 부분이 해설로서 간과되었다.


왜 한국에서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영어로 해설을 진행 하는가? 왜 글로벌 손님들만 초점에 두고 생각을 하였는가 말이다. 아무리 프로그램 북에 곡 해설이 한국어로 나와 있다 한들, 연주자들이 자연스럽게 이끌어주는 곡해설과 조금은 사적인 부분에서 나오는 이야기와 유머들을 모두가 즐길 권리가 있다.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이니만큼 우리의 정체성을 잃으면 곤란하다. 사실 전부터 외국인들의 유입이 많은 곳은 모두 당연하게 영어를 사용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그렇게 유쾌하지 않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영어가 세계 공통어라고 해도, 가장 많이 쓰일 뿐이지 언어계의 수장은 또 아니지 않은가. ‘언어’ 라는 것은 수준을 나눌 수 없고, 나라의 정체성을 한 몸에 담고 있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논리이다. 하지만 한국의 공연계 에서는 아직 이 논리가 크게 도입 된 것 같지는 않아 보여 속상한 마음이다.




솔직하게 드러난 반응, 긍정적인 회로로 이끌기를



물론 필자가 함부로 추측할 수는 없으니 외국인 관객들 대부분이 영어권에서 왔다고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것은 아니다. 영어를 완벽히 할 수 있는 사람들만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공연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중요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그저 유머뿐일 지라도, 프로그램 북에 있는 내용을 정리하여 말해주는 것이라 해도, 그건 별일 아닌 측면으로 바라볼 수 없다. 영어를 완벽히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그저 유머인지 프로그램의 내용인지 알기 어려울 수 있다. 왜 이점을 헤아려주지 못했는가. 이것이 별일 아닌 측면이 될 수 없는 명백한 상황은 객석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해설을 영어로 하니 뒤에 앉으신 노부부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며 넋두리를 놓으셨고, 영어로 유머를 던질 때 외국인들의 반응만 열렬했다. 물론 영어를 알아듣는 국내인 들의 웃음소리 또한 간혹 들려왔지만, 완벽히 알아듣지 못하는 국내인 들 또한 다수 있었기 떄문에 반응이 극과 극이라 할 수 있었다. 이를 영어를 완벽히 하지 못하는 국내인들 잘못이라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한국어로 이루어지는 짧은 해설은 마지막 곡이 되어서야 딱 한번 진행되었다. 그제 서야 한국인들의 반응이 이어졌고 외국인 관객들은 조용해졌다. 이 또한 절대 유쾌하지 않다. 이 유쾌하지 않은 상황을 위해 이전에 더욱 신경을 썼어야만 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글로벌화 되어지는, 변화하는 공연의 분위기는 우리에게 색다른 매력을 안겨준다. 이를 통해 늘어나는 의견과 생각들은 앞으로의 공연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것이 즐거운 점이든 아쉬운 점이든 이를 통해 균형을 이루는 좋은 방향의 공연으로, 또는 변화로 나아가길 바라는 바이다.



[임보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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