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을 모르고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 - 행복은 늘 내 곁에 있어

"우리가 잘 몰랐던 행복하다는 마음에 대하여"
글 입력 2019.06.1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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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렵다. 사실 가혹하다. 평생 모르는 채로 살아가다 죽음도 무엇인지 모른 채 만나 결국 엇박자로 완성되는 것이 삶이다. 우리 엄마는 그림과 글에 빠져 있는 나에게 현실적으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고 하신다. 나는 아직도 그 말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엄마도 그럴 때가 있었다고 한다. 내 나이 때 다른 이들의 작품이 내게 주는 감정에 휩쓸려 살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세계들과 부대낄 때 일어나는 나만의 것이 좋았다. 엄마는 지금에서 벗어나 직접 어려움을 마주해야 어른이 될 거라고 하신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창밖만 응시했다. 엄마의 말도, 결국 어른이라는 것도 모르는 채로 살아가다 만나고 나서야 알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쉬지 않고 나를 꿰뚫고 지나가는 삶 앞에서 나는 미리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사람이 얼마나 살면서 다가오는 것들 앞에선 초라한 존재인지, 사람이라는 존재는 늘 부딪히고 나서 아파해야 했고, 그래야 하며,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결국. 결국, 저는 삶을 모르겠어요. 근데 모두 삶을 살고 있어요. 나도 살고 있어요. 그도 살고 있고요, 당신도 살고 있어요. 행복이라 불리는 어떤 것에 기대며 살아가는 것일까요. 행복은 무엇일까요. 삶 앞에선 모두가 바보고, 우리는 그렇게 바보로 살아가는데. 결국 우리는 서로와 손등으로라도 기대며 조금의 의지라는 것과 공감이라는 것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게 너무 많네요.


- 90년대생, 오예찬




“행복은 늘 내 곁에 있어”


이 말조차 진부하게 느끼는

빠르게 분리된 세상에서,

이 말을 먼저 건네는 책.



<행복은 늘 내 곁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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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삶을 모르고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



삶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잊고 살았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조금 더 긴 시간 동안 내 삶이, 그리고 행복이 무엇인지 조금 더 진지하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선명한 답을 여전히 알 수 없더라도, 나는 내가 삶을 살면서도 얼마나 삶 앞에서 바보였고 또 그럴 수밖에 없는지 새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결국 다가오는 감정과 경험, 그리고 그렇게 완성되는 삶에 대한 관점이 평생 '나'뿐이고 미완성일 테니, 그래서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괜히 가고 나도 모르게 그 진솔함 사이에서 오고 가는 어떤 것들을 간절히 바라온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 나를 조금씩 더 알 수 있게 된 걸까. 적어도 나를 게속 살펴보게 된 것 같다. 이 책을 읽다가도 자주 멈추고 머뭇거렸기 때문에. 많은 글이 다음 책장을 쉽사리 넘기지 못하게 나를 붙들어두고 있는 것만 같았다.



“행복은 늘 내 곁에 있어”



네 곁도 아니고 내 곁이다. 나를 향해 건네는 말도 아니고 자신을 다독이는 듯한 말 한마디를 책 곁에서 들은 나는, 행복이 내 곁에 있을까, 잠시 생각해본다. 참, 슬프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은 일상을 살고 있다. 특별한 일도 없다. 지치면 지쳤을 뿐이다. 행복은 꼭 가끔 일어나는 특별한 일인 것만 같다. 삶은 행복이 뭔지 모르겠는 무미건조한 일상을 달리고 있었다. 행복. 행복. 반복해서 떠올려보면 낯선 것이 되는 것만 같다. 리뷰를 쓰다 잠시 머뭇거려 본다.


<행복은 내 곁에 있어>에 담긴 글 한 편, 한 편은 나에게 행복과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마음의 무게를 실어 주었다. “인생 뭐 있어 욜로나 외치고 사는 거지”라고 삶을 사는 게 별거 아닌 마냥 외치는 자아 하나도 결국 다가오는 미지의 삶의 무게와 은연중의 두려움을 어떻게든 잊기 위해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 나에게 말이다. 사실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건지도 몰랐던 것 같다. 눈앞에 있는 것도 이해하기에 급한 삶이 지금에 위치하고 있으니. 그렇게 ’나’에만 갇혀 있으면서, 결국 돌고 돌아 지금이나 어떻게든 잘 살아보자며 욜로나 외치게 된 것같다.


그런 나에게 <행복은 늘 내 곁에 있어>는 진솔한 진심이 담긴 이야기와 함께 나를 조금 더 살펴볼 수 있는 여유의 틈을 선물해줬다.



그러나 내가 나인 채로 살아가는 것.

조금은 비겁하고 소심하고 어리석고 나약하다 해도 안 그런척

하지 않고 그런 나를 인정하면서 긍정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오십이 되어서야 비로소 찾게 된 행복인지도.


- <비겁하고 소심하고 어리석고 나약한>, 69년생 백지연



나보다 조금 더 많은 혹은 닮은, 혹은 아직 어린 삶을 산 이들이 말하는 삶. 적어도 100편의 글들은 모두 다른 무엇을 위한 목적이 있는 글보다는, 독자에게 무어라 하고 싶은 글이라기보다는 자신을 위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글들이었다. 오롯이 100명의 작가 자신과 그 삶을 위한 글. 그리고 그 앞에 이 진솔한 글들을 마주하는 내가 있었다. 내가 저 때 즈음이 되면 어떤 고백을 하게 될까, 여러 삶과 행복에 대한 고백 앞에서 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잘 땐 행복한 마음으로 오늘 가진 감정이

슉~ 하고 사라져,

내일도 궁금한 마음으로 학교를 간다.


- <감정이 슉~ 하는 마음>, 09년생 이채현



어린아이의 글조차도 나도 모르게 찬찬히 읽어 보게 된다. 어릴 때는 삶이 그만큼이고, 행복이 그만큼이었지. 정말 그런 일상이 삶의 전부였고 그것만으로도 정말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을지도. 정말 작은 것도 행복했었다. 나도 10살 때에는 친구들이랑 놀고 집에서 일찍 잠드는 게 삶의 모든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겨우 어린 시절의 행복을 떠올려본다. 행복이라는 것이 정말 단순하고 쉬웠을지도 모르는 그때의 기억을 이어서 지금의 내 모습을 더듬어보고, 나이를 더 먹은 나의 모습을 괜히 상상하고 그려본다. 책을 읽는 동안 '지금'에만 간신히 머물러있던 나의 삶의 기억이 이리저리 시간을 배회하며 다시 채워졌다.


어릴 때의 이야기는 어느새 먼 이야기가 된 것만 같기도 하고. 어른이라는 것이 되어갈수록 봐야 할 세상은 커지는데, 내가 짊어져야 할 무게가 커지는데 그것이 너무 빠르게 커지는 게 문제였을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세상만큼 ‘나’는 클 수 없었다. 세상은 벅차고, 나는 의지든 의지가 아니든 삶을 이어나가야 했다. 너무 많은 것이 내 앞에 놓여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얼른 받아들이라는 미친 듯이 거대한 세상은 삶을 사는 나를 바보로 만들고 있었다.


바보가 된, 그런 우리들은 서로의 삶의 한 켠, 한 켠을 살포시 기대어가며 큰 의지를 얻고 있는 게 아닐까. 지금 100명의 글 앞에서 내가 얻는 여러 생각들이 그런 모습인 것 같았다. 완벽한 삶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는 존재할 수 없겠지만(아마 신이 글을 쓴다면 있을까? 근데 신에게 삶이란 게 있을까?), 삶과 행복에 대한 진심 어린 고백은 누구에게나 존재할 테니, 그리고 우린 모두 행복을 바라보며 삶을 살아가니까.



존재하는 것들에겐 반드시 자신의 때가 있나 보다. 숨겨져 있어야 할 때,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야 할 때, 주인공으로 드러나고 사라져야할 때가 있다. 보여지고 드러내고 싶지 않아도, 그 어떤 검불로 가리웠어도 반드시 존재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정한 그때가 있다.


- <오솔길로 걷는 가을 소풍>, 71년생 이정희



무엇보다 나는 이 책 속의 글들이 모두 한 사람으로서 존재한다는 점이 너무 와닿았다. 정말, 한 사람의 글이고, 글이 한 사람의 삶이었다. 글과 책을 평가할 수 있는 모든 요소의 잣대가 필요 없이 오롯이 한 사람의 삶으로 이루어진 글들, 그리고 그렇게 이루어진 한 권의 책이라는 것에서 <행복은 늘 내 곁에 있어>는 이미 멋진 도서였다.



오늘도 비가 온다. 하지만 오늘은 우산 없이 그저 가볍게 비를 맞는다. 옷이 젖지만 고장 날 것도 없고, 걱정할 것도 없어서 그런가 그저 반갑기만 하다. 매일매일 내가 지켜야 하는, 사랑하는 사람과 나만 바라보는 사람들을 위한 책임잠을 한나절의 비에 잠시 내려놓는 것을 어떨까? 촉촉한 행복감에 젖어보는 것은 어떨까?


- <비는 변하지 않았는데>, 81년생 김은한



삶은 하나의 글이 되기도 하고, 작은 찰나에 오롯이 응축되어 있기도 했다. 나는 그들의 글을 읽으며 그런 삶의 모습을 보았고, 그런 행복을 보았다. 책에 담긴 100명의 이야기 앞에서 나를 포함한 101명의 삶이 만나 서로를 비춰주며 많은 감정과 공감이 맴돌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삶을 통해 나의 삶을 다시 바라볼 수 있었고, 그들의 글 또한 나의 삶을 포함한 여러 삶을 마주하면서 말이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용기 있게 사람 앞에 드러난다는 것이 누군가에겐 큰 위로가 될 수 있음을 느꼈다.


우주는 새까맣지만, 이런 모습의 위로가 각자 빛나고 있던 우리의 존재를 더 일깨워주는 듯하다. 사실, 우리 모두 빛나고 있잖아요? 우주라는, 흔하고 지루해 보이지만 사실 정말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비유도 살짝 떠오르길래 꺼내 본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언어가 있다면 반드시 그 이유가 있는 것이라 믿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흔하고 뻔한 말이라고 잊은 것뿐이고. 행복과 삶이란 것도 같은 맥락에 놓여있어 잊힌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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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행복이 정말 흔한, 그저 나랑 붙어사는 그림자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행복이 왜 특이하고 특별해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너무 밝은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림자처럼 함께하던 행복이 바로 내 뒤에 있는데도 바라보지 못하고, 어두운 곳에 빠지면 행복이 어디 있냐고 더듬거리며 찾아 나선다. 행복은 늘 기분 좋은 어떤 것일까. 아닌 것 같다. 사실 나는 여전히 행복을 잘 모르겠다. 굳이 정의하고픈 마음도, 잘 모르겠다. 어느 글에서 행복은 결국 삶에 원래 녹아있던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난다. 나도 행복과 삶을 그렇게 느끼고 있던 걸까.



최근 한 이십여일 동안 행복을 주제로 글을 써보려 노력했는데 잘 풀리질 않았더랬다. 마치 꽉 막힌 고속도로처럼.

그런데 오늘, 행복이 그저 삶 속 녹아있는 것임을 알았다. 행복은 찾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내 곁에, 내 안에 있는 것임을.


- <행복은 찾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녹아있는 것>, 61년생 이장규



삶과 행복, 그런 이야기 앞에서 또다시 나의 삶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행복은 늘 내 곁에 있어>의 리뷰는 이런 모습이 되었다. 이 리뷰 속 나의 이야기들이 책 앞에서 내가 비로소 생각할 수 있었던 나의 삶이고 행복에 대한 나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행복을 위해 살면서도 행복이 무엇인지 잊고 살았는지, 삶을 살면서도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일상을 달려왔는지, 이 도서를 통해 나의 모습을 다시 바라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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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늘 내 곁에 있어 저자 이미지 (c)임진순
 

책 속 그림을 그린 작가님이시자, 100명의 작가님들께서 함께할 수 있도록 힘껏 프로젝트를 추진하신 임진순 작가님의 글과 함께 <행복은 늘 내 곁에 있어> 탄생 과정이 책 마지막에  자리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100명이 모이고, 100개의 글이 모였다는 것조차도 놀라운데, 글 하나하나가 진솔한 이야기로서 자리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기적 같은 일이고, 정말 멋진 일인 것 같았다. 100명의 작가님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세상에 공개하겠다는 그 용기와 함께 책이 완성되어 가는 그 과정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도, 어쩌면 지금의 세상에선 더 가치 있는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정말 많은 작가님들의 마음 하나하나 허투루 쓰인 것 없이, 소중한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진 책, <행복은 늘 내 곁에 있어>였다.



7.

2018년 가을, 페이스북에서 만난 100명의 사람들이 파랑새를 좇아 작가라는 꿈을 이뤘으니 정말로 파랑새는 행복을 가져다 주는 길조인 것일까?

아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따지고 보면 100작가 여러분이 손에 거머쥔 행복은 파랑새가 그냥 물어다 준 것이 아니다. 임작가가 전해준 것도 물론 아니다. 용기를 내서 100작가 프로젝트에 뛰어들었고, 나만의 글을 썼고, 그 결과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성취감을 행복이라 부를 수 있다면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낸 것이다. 파랑새는 그저 거들었을 뿐이다.


- <파랑새를 찾아서>, 69년생 임진순



글과 함께하는 임진순 작가님의 그림 속에는 모두 파랑새가 존재한다. 모든 그림에 등장하는 모습이 마치 여러 삶의 한 켠을 한 번씩 다녀간 듯한 모습인 파랑새는 그림을 통해 10대부터 80대의 삶에 모두 함께하고 있었다. 마치 정말 누군가의 삶의 여정에 함께 했었듯이. 그리고 100명의 삶의 이야기가 모일 수 있도록 기적을 일으키듯이. 그렇다면 <행복은 늘 내 곁에 있어> 속 파랑새야말로 삶이자 행복의 상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행복은 늘 내 곁에 있다고 속삭이는 이 책에선 말이다. 아마 이런저런 나의 이야기마저 꺼내게 한 이 책 속 파랑새가 나에게도 들어찬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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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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