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초현실 괴물, 상상을 찍는 작가_에릭 요한슨 사진展

상상력에 디테일을 더하면
글 입력 2019.06.1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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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해놓은 작업실


눈을 사로잡는 사진부터 몇 번 꺾일 정도로 줄 선 사람들까지, 기대를 안 할 수 없는 전시였다. 각진 존에 벽에 작품을 전시하는 구조는 다른 전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품 자체만으로 사람을 매혹시킬 수 있다는 자신이 느껴졌다. 그 외에는 작품을 따라 해볼 수 있게 만든 포토존과 실사용 됐던 오브젝트, 재현한 작가 작업실, 텍스트, 메이킹필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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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만족스러웠다. 프리뷰에서도 그랬듯, 사진 하나하나의 퀄리티가 장난 아니었다. 1년에 8개 내외로 발표한다는 작품 다웠다. 오랜 시간 공들여 작업해서 그런가, 기본적으로 사진 자체가 너무 아름다웠다. 함의하고 있는 스토리를 배제하더라도 구도나 디테일이 뛰어났다. 게다가 벽 하나를 차지하는 큰 작품들에서도 디테일이 살아나서 작가의 작업량과 천재성을 짐작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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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눈여겨봤던 작품이다. 핀셋에 비치는 모습도 세세하게 살릴 정도로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이런 디테일이 에릭 요한슨 사진의 초현실을 거부감 없이 만들어준다. 실제에는 없는 판타지를 있을 법하게 만드는 작가 자체의 능력 같다.

작품들을 뭐라 명명할 수 없었다. 에릭 요한슨이 장르 그 자체였다. 사진이라고 섣불리 재단했던 게 내 무지를 상기시켜 아찔할 정도다. 위화감 없이 바로 예술품이라고 인식할 정도로 대단한 작품들이었다. 미디어로 접했을 때 작은 크기로 가늠했었는데 실제로 보니 크기와 퀄리티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만들 작품을 기획하고 현장에서 찍어내고 마무리 작업을 한다. 너무나도 간단한 과정인데, 결과물은 다르다. 작품 몇 개 옆에 메이킹필름을 보여줬는데 괴물 같았다. 처음에 세팅하는 과정만 보더라도 어떻게 이런 결과물이 나올까? 싶었는데 보면 볼수록 에릭 요한슨이 대단해서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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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ING ASLEEP>. 이 작품이 특히 그렇다. 창문 밖에 '달'은 실제로 설치해놓은 조명이었고 기울어진 구도는 카메라를 애초에 그렇게 기울어놓고 찍은 것.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실제 촬영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나는 이 작품에서 천 표현이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다. 바람에 휩쓸리는 펄럭이는 부분이나 인물에게 걸려 다리 사이로 움푹 들어간 부분이나 구겨진 모습, 스탠드에 의한 명암 표현은 마치 너풀거리는 게 앵그르의 천 표현이 연상될 정도로 탁월했다.
작품을 본 순간부터 중앙에 위치한 인물로부터 시선이 빨려 들어간다. 부유하고 있는 인물은 불안정해 보이지만, 상단에서 하강하는 커튼과 하단에서 상승하는 카펫과 엮여있어서 묘한 안정감을 선사한다. 부유함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천의 펄럭거림은 커튼, 카펫에서 시작해 인물의 붉은 머리로 집중된다. 흩날리는 붉은 머리는 인어공주를 연상시킬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이런 디테일이 모여서, 잠드는 모습을 표현했다. 일반적으로 잠드는 장면을 생각할 때, 수동적으로 잠에 빠져드는 모습밖에 생각나지 않는데, 격동적인 부유감과 움직임으로 잠에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뭔가 주체적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같이, 금방이라도 토끼굴을 통과해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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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FTING AWAY>. <FALLING ASLEEP>과 함께 이번 전시 최애작으로 꼽는 작품이다.  보기만 해도 무언가 추억을 선사해줄 만한 작품이다. 굉장히 아름답다. 수면에 반쯤 걸쳐져있는 병과 그 병에 가려져 1/4만 드러내고 있는 태양은 따스하다.
카메라 렌즈에 묻어있는 물방울은 사실감을 더해주며 빛 번짐도 현실감을 더해준다. 태양 주위로 스크래치 되는 거나, 수면 아래의 왜곡 표현이나 혀를 내두를 정도로 디테일하다. 수면과 이어지는 지면을 어떻게 저렇게 표현했을까? 병 속의 마을은 매우 아름다웠는데, 자세히 보니 유리를 한번 거쳐서 마을 외곽선이 왜곡되어있었다. 소름 돋았다.
내가 이 작품을 사랑하는 건, 병 자체로만 봤을 때, 프로이트가 언급했던 빙산의 일각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수면에 걸쳐져있다. 수면 위의 따스하고 아름다운 마을을 보여준다. 수면 아래 어두컴컴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나 병 속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까끌까끌해 보이는 표면의 모습만 보이는 게 그리 느껴졌다.
<Drifting Away>라는 워딩도 근거를 더해준다. 해류, 표류라는 의미도 있지만 (사람이) '무기력한, 불안정한'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에릭 요한슨이 초현실주의 작가임을 비춰볼 때, 인간 본연의 의식, 무의식을 조명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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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한 지인이 관련 전공자였는데, "카메라는 나의 도구며, 컴퓨터는 나의 캔버스다."라는 텍스트를 보고, 카메라와 컴퓨터를 사용하더라도 저렇게 빠르고 자연스럽게 못한다고. 오히려 작품 퀄리티와 스케일에 비해서 작업 속도가 굉장히 빠른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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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요한슨은 마그리트와 달리, 에셔에서 영감을 받았다. 텍스트를 보자마자, 속에서 악 소릴 냈다. 마그리트와 달리, 두 화가 좋아하는 화가기 때문이다. 언급된 화가들의 천재성이 에릭 요한슨에 옮겨붙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위화감 없는 건 그 천재성이 계승될만한 또 다른 천재기 때문이다. 사진에서는 담기 힘들 거라는 초현실주의, 에릭 요한슨의 작품은 마그리트의 작품 제목을 빌려서 사진의 배반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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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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