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 2시간 정도만 생각을 잠시 내려놓을까요 - 뮤지컬 "록키호러쇼" [공연예술]

뮤지컬 <록키호러쇼>
글 입력 2019.06.1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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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에 코르셋을 찬 (겉으로는 사회적인 고정관념에 따라 생물학적 남성으로 보이는) 인물과 머리를 잔뜩 부풀린 채 레이저 총을 쏘는 인물, 근육질 몸매의 실험체. 설명만 들어도 무슨 극인가 싶다. 극의 후기들을 보면 ‘숭하다’, ‘혼미하다’, ‘재미있다’와 같은 내용이 잔뜩 있다.


야하고, 때로는 뭔가 흉한 것도 같고, 극은 아무런 내용이 없는 것 같은데 두 시간 동안 흥은 돋워지고. 의미를 하나하나 따져보려면 메시지를 도출해낼 수는 있지만 아무 생각 없이 마냥 즐기기만 해도 괜찮은 이야기.


여러분이 괜찮으시든 말든 상관없이 기묘한 여행으로 함께 떠나는 뮤지컬 <록키호러쇼>가 돌아왔다.




01. 오, 브래드, 나 너무 춥고 무서워



폭우, 자동차, 고장. 굉장히 흔하게 쓰이는 클리셰이다. 이런 고리타분한 클리셰처럼 극에는 전형적인 ‘여성성’의 상징 자넷 와이즈와 ‘남성성’의 상징 브래드 메이저스가 등장한다. 사회의 이분법적인 젠더스테레오타입을 그대로 반영하여 분홍색 원피스와 수동적인 대사, 의존적인 모습을 자넷에 투영하였고, 반대로 파란색 셔츠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를 브래드에 입혔다.


그렇다고 이 극이 젠더이분법을 고착화하는 극이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다. 두 인물은 사회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을 과장하여 연기한다. 역설적으로 이분법에 반대되는 위치에 서고, 프랑큰 퍼터 성에서 그 모습을 점점 말소해가며 경계를 지워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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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닫혀진 마음을 열어요



자넷과 브래드뿐만 아니라, 이들이 차 고장으로 찾아간 프랑큰 퍼터 성에는 여러 기묘한 인물(이라고 해야 할까 외계인이라고 해야 할까)들이 등장한다. 성의 주인 프랑큰 퍼터는 양성 외계인으로, 도덕적 개념이 전혀 없고 쾌락을 우선으로 추구한다. 이 외에도 프랑큰과 함께 트랜스섹슈얼 행성에서 온 마젠타와 리프라프, 프랑큰이 만들어낸 인조인간 ‘록키 호러’ 등과 같은 캐릭터들이 극이 흘러가며 자넷과 브래드의 ‘일탈’을 유발한다.


근육질 몸매는 싫다고 내숭을 부리던 자넷은 근육 몸매인 록키 호러와 관계를 가지며 새로운 욕망에 눈을 뜨게 되고, 브래드 역시 자신이 모르던 욕망에 따르기 시작한다. 이 욕망은 단순히 ‘성적인 욕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극 중에서는 성적 욕망으로 표현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자신이 진정한 자신으로서 설 수 있는, 자신이 모르던 새로운 모습을 의미하게 된다.


후반부에 등장인물 모두가 프랑큰 퍼터와 같이 빨간 코르셋에 가터벨트, 하이힐을 신은 모습으로 등장해 다 같이 춤을 춘다. 남성과 여성의 전형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분홍도 파랑도 아닌 빨간색을 걸치고 모두가 하나가 되는 모습은 문자 그대로 기묘하지만, 그 모습조차 제대로 고정관념을 뒤틀어버린 ‘록키호러쇼’다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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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열린 마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요



고정관념을 깬 것은 무대 위에서 뿐만이 아니다. 보통 관객은 객석에서 얌전히 앉아 소위 ‘시체관극’이라고 말하는, 무대를 올려다보며 공연을 관람한다. 그러나 록키호러쇼는 이 경계마저 흐리게 만들었다. 물론 관객이 무대 위에 직접 올라가서 같이 춤을 추거나 할 수는 없지만, ‘콜백’이라는 문화를 만들어 배우와 함께 극을 즐기게 한 것이다.


폭우를 피하는 자넷과 브래드를 따라 관객 역시 머리 위에 신문지를 뒤집어쓰며 팬텀(앙상블)들이 뿌리는 비를 피한다. 브래드가 상심에 빠져서 솔로 넘버를 부를 때는 bread(빵)를 무대 위에 던지며 브래드를 위로하는데, 언어유희를 이용한 참신한 이벤트로 많은 호응을 받는다. 극이 흐를수록 여성과 남성, 인간과 인외, 객석과 무대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록키호러쇼’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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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차치하고, 진정한 <록키호러쇼>의 매력은 2시간 동안 신나게 뛰어놀 수 있다는 것이다. 코스프레를 한 로비의 사람들, 공연 시작 전부터 객석을 향해 장난을 치는 팬텀들,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마련된 월간 록키. 현실에서 벗어나 판타지스러운 공간에서 공연을 즐기다 보면 처음에는 쭈뼛거리던 자신이 커튼콜에서 신나게 타임워프 댄스를 추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극 하나를 본다고 자넷이나 브래드처럼 극단적으로 자기 자신을 찾게 되지는 않겠지만, 뭐 어떤가. 때로는 하루 2시간 아무 생각 없이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고, 가끔은 집중하지 않고 넘버와 춤만 따라가는 쇼 뮤지컬도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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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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