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제16회 차이코프스키 콩쿨을 맞아

글 입력 2019.06.17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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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현지시각으로 오는 6월 17일부터 29일까지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제16회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쿨이 열린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이 대회는 바르샤바에서 진행되는 쇼팽 콩쿨과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쿨과 함께 세계 3대 콩쿨로 언급되는 저명한 대회이다.


특히 올해는 목관(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과 금관(트럼펫, 프렌치 호른, 트롬본, 튜바) 부문까지 신설되어 몸집이 더욱 불어났다. 차이코프스키 콩쿨. 도대체 어떤 대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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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이코프스키 콩쿨의 시작



제1회 차이코프스키 콩쿨은 1958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개최되었다. 그 시작은 1956년경 러시아 문화부에서 나온 '21-Б, 차이코프스키의 이름을 딴 국제 피아노와 바이올린 콩쿨'이라는 문서라고 한다. 이 문서에 당시 문화부 장관이 서명했고, 문서 서두에는 "이 대회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라는 의미심장한 문장이 있다고 한다.


제1회 차이코프스키 콩쿨의 조직위원장은 바로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이다. 소련에서 가장 유명한 작곡가를 위원장으로 세웠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지만, 콩쿨의 심사위원 명단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제1회 대회의 피아노 부문 심사위원장은 피아니스트 에밀 길레스였다. 그 외에도 하인리히 노이하우스, 레프 오보린(제1회 쇼팽 콩쿨의 우승자이기도 하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가 피아노 부문 심사위원이었다. 4년 뒤인 1962년에 열린 제2회 차이코프스키 콩쿨 바이올린 부문 심사위원장은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였고, 레오니드 코간이 함께했다. 1966년 제3회의 첼로 부문 심사위원장은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였고, 그리고리 피아티고르스키와 피에르 푸르니에 역시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 어떠한가. 러시아의 총력전은 정말로 무섭다.


다시 제1회 차이코프스키 콩쿨로 돌아와, 이렇게 시작된 첫 번째 콩쿨의 우승자는 과연 누구일까? 러시아에서는 당연히 피아노, 바이올린 부문 모두에서 소련 출신이 우승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제1회 차이코프스키 콩쿨 피아노 부문의 우승자는 미국인 반 클라이번이었다. (피아노 부문 2, 3등과 바이올린 부문 1,2등은 모두 소련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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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자 반 클라이번(왼쪽)에게 시상하는

쇼스타코비치(가운데 안경 쓴 사람), 1958



냉전 시대에 소련에서 미국 출신 반 클라이번에게 1등을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차이코프스키 콩쿨은 러시아의 이름을 내건 국제 대회였다. 그러나 소련의 청중들은 반 클라이번의 연주에 감탄했고,  반 클라이번이 최고라는 심사위원들의 말에 흐루쇼프는 "그렇다면 그에게 상을 주시오."라고 답한다.


반 클라이번은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인 로지나 레비나에게 사사했다. 제1회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 우승한 그는 러시아의 청중들에게 러시아어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며, 러시아의 유명한 노래 <모스크바의 밤>을 직접 편곡하여 연주한다. 만원인 콘서트홀에서 열광적인 청중들의 박수와, 반 클라이번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의 표정은 아직도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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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클라이번의 이야기를 다룬 책
<모스크바의 밤>



2. 차이코프스키 콩쿨과 한국



이후 1962년 2회 대회에서는 첼로 부문이 추가되고, 1966년 3회에서는 남녀 성악 부문이 더해지며 차이코프스키 콩쿨은 점점 발전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심사위원단에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음악가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었으니 콩쿨의 명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역대 수상자들 역시 화려하다. 대표적인 수상자로는 1962년 제2회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 우승한 소련 출신의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1970년 바이올린 우승자 기돈 크레머, 1974년 피아노 부문의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안드라스 쉬프, 1978년 우승자 우승자 미하일 플레트네프 등이 있다.


1974년 수상자 명단에는 익숙한 이름이 보인다. 당시 우승자는 소련 출신의 안드레이 가브릴로프이고, 2위가 바로 정명훈이다. 당시 21세였던 정명훈은 귀국 후 김포공항부터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하고, 서울시청 광장에서는 환영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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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 귀국 후

카퍼레이드를 하는 정명훈 (사진 : 경향신문)



그러나 한국인의 차이코프스키 콩쿨 참가가 처음 언급된 것은 1974년이 아니었다. 8년 전인 1966년, 첼리스트 정명화가 사사하던 그리고리 피아티고르스키의 추천을 받아 차이코프스키 콩쿨에 참가하기 위해 정부의 승인을 받으려고 했다. 공산국가에 강한 적대감을 갖고 있던 당시 소련에서 열리는 차이코프스키 콩쿨의 출전은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1966년 정명화는 차이코프스키 콩쿨 참가를 허가받지 못한다.




3. 2011년 제14회 차이코프스키 콩쿨



내가 처음 차이코프스키 콩쿨을 접한 것은 2011년 제14회 대회였다. 새벽에 인터넷 중계를 통해 콩쿨을 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결선 지정곡이었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여러 참가자들의 연주로 반복해서 들으며 나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빠졌고, 그때 시작된 러시아 음악에 대한 애정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실 2011년 제14회 차이코프스키 콩쿨은 차이코프스키 콩쿨의 역사에서 중요한 대회이다. 차이코프스키 콩쿨 웹사이트에서는 대회의 역사를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시기는 'The rises'로 콩쿨이 시작되고 점점 몸집이 커지던 1958년 1회, 1962년 2회, 1966년 3회이다. 매 회마다 새로운 부문의 경연이 추가되었고, 심사위원단은 위에서 설명했듯이 정말 화려했다. 두 번째 시기는 1970-1980년대까지로  'The soaring' 즉 급속도로 발전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기돈 크레머, 정명훈, 안드라스 쉬프, 미하일 플레트네프 등의 수상자가 나오며 차이코프스키 콩쿨의 국제적인 명성이 점점 더 다져졌다.


그러나 이어서 차이코프스키 콩쿨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세 번째 시기 'The descent'가 찾아온 것이다. 2000년대까지 이어지는 차이코프스키 콩쿨의 기나긴 암흑기에는 우승자가 아예 선정되지 않은 대회들이 등장한다. 가장 심한 것은 1994년에 열린 제10회였는데, 이 당시 피아노, 바이올린 부문에는 우승자가 나오지 않았고 첼로 부문은 아예 1, 2, 3등 모두 아무에게도 시상하지 않았다. 또한 러시아 참가자들만 부각되는 것과 주로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의 보수적인 구성 역시 문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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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차이코프스키 콩쿨 공동 운영위원장인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



침체기를 겪던 차이코프스키 콩쿨의 전환점이 된 것이 바로 2011년 개최된 제14회였다. 러시아의 유명한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14회 차이코프스키 콩쿨의 조직위원장으로 참가하며 여러 변화를 일으킨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이전까지 모스크바에서만 열리던 대회를 모스크바, 상트 페테르부르크 두 도시에서 개최한 것과 심사위원단의 대대적인 개편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들(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피터 도노흐, 유리 바쉬메트, 안네-소피 무터 등)이 심사위원단에 참여했고, 전 세계에서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통해 차이코프스키 콩쿨을 시청할 수 있었다.


2011년 제14회 차이코프스키 콩쿨은 전반적으로 성공적이었다는 평을 받는다. 피아노 부문에서 우승한 다닐 트리포노프는 세계적인 연주자가 되었으며, 첼로 부문에서 2위를 수상한 에드가 모로는 최근 한국에서도 연주했다. 특히 이 대회에서는 한국인 참가자들의 성과가 돋보였다. 피아노 부문에서는 손열음이 2위, 조성진이 3위를 수상했다. 바이올린 부문에서는 이지혜가 3위를, 특히 성악은 여자 부문에서는 서선영, 남자 부문에서는 박종민이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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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제14회 차이코프스키 콩쿨

한국인 수상자들 (사진 : 한겨레)



이어지는 2015년 제15회 차이코프스키 콩쿨 역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 대회에서는 전자투표가 처음으로 도입되었고, 유리 바쉬메트, 막심 벤게로프, 바딤 레핀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심사위원단에 참여했다. 독특한  수상자로는 피아노 부문 4위를 수상한 뤼카 디바르그(Lucas Debargue)가 있다. 그는 11살에 친구의 피아노 연주 소리를 듣고 피아노를 시작했고, 이후 잠시 중단했다가 우연히 지역 축제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것을 계기로 러시아인 속성 코치를 소개받는다. 그리고 4년 간의 준비 끝에 2015년 차이코프스키 콩쿨 참가, 결선에 오른다. 뤼카 디바르그는 콩쿨을 준비하면서도 재즈 클럽에서 재즈 연주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하는데, 독특한 운지법 때문에 대회 당시에도 여러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4. 2019년 제16회 차이코프스키 콩쿨



2019년 제16회 차이코프스키 콩쿨은 러시아 현지시각으로 6월 17일 저녁 7시(한국시간 6월 18일 새벽 1시) 모스크바 음악원 그레이트 홀에서의 개막식과 함께 시작된다. 이번 대회의 몸집은 더욱 불어났다. 새로 추가된 부문은 관악기로, 목관과 금관을 한꺼번에 시작하는 것을 보니 차이코프스키 콩쿨 측이 갖고 있는 야심이 끝이 없어 보인다.


콩쿨 일정과 지정곡을 확인하고 싶은 분은 꼭 차이코프스키 콩쿨 웹사이트를 확인하기 바란다. 그밖에도 차이코프스키 콩쿨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많으니 한 번쯤은 방문하시길 추천한다.


국제 차이코프스키 콩쿨은 경연이다. 참가자들은 일정한 순위에 의해 결과가 나눠진다. 어떻게 보면 잔인한 일이지만 많은 젊은 음악인들이 국제적인 콩쿨 참가를 통해 받게 될 관심과 기회를 위해 지원서를 냈을 것이다. 동시에 이 대회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이벤트이다. 러시아 현지 공연장에 가지 않더라도 전 세계의 클래식 애호가들은 인터넷을 통해 경연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연주자가 보인다면 응원할 수도 있고, 수많은 연주곡 중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곡들도 생긴다.


러시아 음악을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지정곡 목록에 명시된 러시아 작곡가들의 이름을 보니 벌써부터 참가자들이 어떤 곡을 연주할지 기대된다. 시차로 인해 경연이 대부분 한국 시간으로 새벽에 진행되지만 개회가 된다면 꼭 중계방송을 볼 예정이다. 지난 2011년 대회에서는 손열음이 연주한 카푸스틴의 곡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물론 대미는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다. 러시아 음악을 잔뜩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나에게 차이코프스키 콩쿨은 하나의 축제이다.



[홍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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