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별점을 매기며 생각한 것 [영화]

글 입력 2019.06.21 08:5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크기변환_n-GETTYIMAGESBANK-628x314.jpg
 

영화를 보기 전에 꼭 확인하는 것이 있다. 바로 평론가들의 한줄평과 별점이다. 이는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소비이지만 경험적인 재화라는 영화의 한계에서 오는 독특한 종류의 정보다. 아무리 영화가 재미가 없다 해도 푯값을 돌려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평론가들이 극찬하는 작품과 대중이 선호하는 작품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영화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황이라면 참고할 만한 정보라는 생각은 든다. 또한, 최근에는 전문적인 평론가뿐만 아니라, 영화 애호가인 일반인들도 영화평을 쓰고, 별점을 매겨 공유하고 있으므로, 자신의 취향과 비슷한 사람을 찾아 그 사람의 평가를 참고하는 것도 영화를 고르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지인들을 따라 작년 겨울쯤 `왓챠`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영화를 볼 때마다 별점을 매기고, 평가를 작성하게 되었다. 영화별로 각각 감상을 적는 데서 그치는 포털 사이트와는 달리, 내가 그동안 본 영화가 어떤 경향을 가졌는지, 나의 취향은 어떤 편인지를 확인할 수 있고, 이에 기초하여 영화를 추천받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코딩 수업에서 배운 바로는 이 추천 알고리즘은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들이 본 영화 중 보지 않은 것을 추천하는 방법과 내가 높게 평가한 영화와 유사한 키워드(가족, 감동, 스릴러 등)를 가진 영화를 추천하는 방법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심지어는 새로 개봉하는 영화에 대해서 나의 예상 별점까지 알려준다.

또 영화를 좋아하는 지인들의 평가를 확인하고, 왜 그 영화에 대해 좋은 평가를 했는지 혹은 왜 나쁜 평가를 했는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도 좋다. 평소에는 소극적이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절대로 먼저 말도 걸지 못했던 내가 영화 이야기만 나오면 신나서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뒤로, 나도 적극적으로 말을 걸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크기변환_KakaoTalk_20190620_104014715.jpg
 

내가 별점을 매기는 기준은 이렇다. 3점은 돈이나 시간이 아깝지 않게 줄거리가 개연성이 있는 영화, 3.5점은 좋은 줄거리에 나의 취향에 맞는 장면이나 음악이 있거나, 평균보다는 조금 더 낫다고 생각하는 영화, 4점은 나의 취향에 맞으면서도 작품성도 높은 영화, 4.5점은 너무 나의 취향에 맞아서 세상 사람들이 다 봤으면 하는 영화거나 여운이 있어 두고두고 생각하게 하는 영화, 5점은 `인생 영화`다. 2.5점은 이야기에 개연성이 조금 떨어지거나, 나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 영화고, 그 이하는 영화를 보고 화가 난 경우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준다. 보다시피 대체로 취향과 감정에 충실한 평가를 하고 있어, 나를 소개하는 멘트로 `존중입니다 취향해주세요`를 적어두었다(문장 안에서 단어를 바꾸는 언어유희를 좋아해서 일부러 바꾼 것이다).

현재 내가 5점을 준 영화는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빌리 엘리어트>, <쇼생크 탈출>,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인생은 아름다워>,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아가씨>로 총 7편이다. 어쩌다 보니 너무 인색한 평가를 하게 된 것 같아 전체적으로 별점을 재조정하려 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렇다. 이 영화들을 인생 영화로 꼽은 이유에는 각각의 이유가 있지만,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들이 나의 인생에서 `처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판의 미로>의 경우 판타지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처음`으로 좋다고 느낀 판타지 영화고(물론 이 영화는 판타지라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빌리 엘리어트>는 내가 `처음`으로 영화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에 대해 알아보고, 실제 사건의 영화적 재현에 대해 생각해본 영화다. 이외에도 최근 개봉한 <기생충>에는 4.5점을 주었고, 오피니언에서 함께 다루었던 <어느 가족>에도 4.5점을 주었다.

별점을 매기며 달라진 점이 있다. 앞서 영화를 보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별점과 한 줄 평을 참고한다고 했는데, 이는 개봉한 지 시간이 꽤 지난 영화들의 경우이고, 되도록 최근에 개봉해서 `꼭 보러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작품의 경우에는 예고편도, 한 줄 평도 전혀 보지 않고 최소한의 정보만으로 보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타인의 평을 보고 나면 그 사람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게 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동안 본 영화들에 대한 감상을 적고 평가를 하고 나서야 그 영향이 상당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 영화를 내 것으로 만든다는 기분도 느낄 수 있다. 학창시절 가장 싫어했던 숙제가 독서 감상문을 쓰는 것이었는데, 이제서야 글을 써서 나의 감상을 남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특히 생각이 들 때마다 잠시 멈춰 글을 쓴 후에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책과는 달리, 시간의 예술인 영화는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고, 순간의 감정들이 더 휘발되기 쉽기에, 영화를 보자마자 머릿속으로 감정들을 정리해 글로 표현하는 것이 영화를 오래 기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별점을 몇 점을 줘야 하나를 고민하다 보니 영화가 주는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감독과 두뇌 싸움을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또 평가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머릿속으로 계속 단어들을 기억하려고 하다가 장면들을 놓치기도 한다. 한 장면에만 머물러 있다가 정작 영화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데는 실패한다. 또 왜 내가 그 장면을 마음에 들어 했는지 자꾸만 이유를 붙여 머릿속에서 변명을 늘어놓는 일을 반복했다.

그리고 예전에 본 영화 중 좋다고 느꼈던 작품도 사람들의 평균 별점이 낮으면 높은 점수를 주기가 꺼려진다. 약자에 대해 혐오적인 시선을 담고 있는 영화들의 경우에는 예외 없이 수긍할 수 있지만, 다른 경우에는 사실 반대하는 의견을 내놓기가 어렵다. 그럴 때는 내가 좋다고 느꼈던 순간을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얼마 전 <타인의 취향>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제목은 수없이 패러디되었던 것이기에 익숙했지만, 영화의 내용은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제목이 어떤 의미를 지닐지를 생각하며 관람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의 취향이라는 이유로, 자신이 특정 분야를 조금 더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상대를 무시하고, 이야기를 들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한다고 상대도 좋아하고 잘 알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고, 싫어한다고 해서 타인도 싫어하라는 법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런 순간이 없었는지 천천히 생각해보았다. 나는 타인의 평가를 평가할 자격이 없다. 그리고 내가 특정 장면을 좋아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 아니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 했을 뿐, 나는 어떤 것에도 이유를 붙여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즐기러 온 영화관에서조차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강박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이제는 나나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나의 방식대로 영화를 즐기고 싶다.


[김채윤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