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될 대로 되렴, 나의 인생아!

글 입력 2019.06.2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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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대로 되렴, 나의 인생아!

1) 인생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나요?
2) 여러분에게 아트인사이트(ART insight)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신가요?

부제: 인생의 Reset 버튼이 있다면, 누르실 건가요? :)


글의 주제로 주어진 여러 질문들 중, ‘인생의 전환점이 무엇인가’를 무의식적으로 골랐다. 골라놓고 보니 조금 우습기도 했다. 마땅히 전환점이라는 말을 쓸 만큼 막중해 보이는 사건이 있는, 굴곡진 삶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 탓이었다. 가장 가깝게 지내던 누군가를 잃어본 적도, 특별히 어떤 것에 심각하게 중독되었다가 겨우 빠져나온 경험도, 커다란 사고로 신체적 제약이나 정신적 공황 상태를 겪은 적도 없었다. 나에게는 ‘일상’이 있었을 뿐 ‘삶을 송두리째 흔들 만한 구조적 변화’는 없었던 것일까?

잠시 이 질문에 천착하던 중에, 혼자 심야 시간에 가서 보았던 영화 ‘원더’가 떠올랐다. ‘원더’는 안면기형장애를 안고 태어나, 27번의 수술을 거친 뒤에도 일반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외모를 가진 ‘어기’라는 아이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다. 어기가 처음 학교생활을 시작하는 그 날, 어기의 부모님은 ‘하느님, 제발 아이들이 어기에게 친절하게 해 주세요’라며 기도를 한다. 부모님의 소원에도 불구하고 녹록치 않은 학교생활이지만, 어기는 부모님과 누나의 사랑 안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힘겨운 싸움을 지속해 나간다. 장애를 앓고 있는 동생에게 부모님의 관심이 편향되는 와중에 섭섭함을 느끼면서도 동생에 대한 따뜻함을 잃지 않는 누나 비아의 모습도 눈물겹게 예뻤다.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

Be kind, for everyone you meet is fighting a battle you know nothing about.


영화 ‘원더’에는,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 대사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린 건, 영화 속 어기가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과 힘겹게 싸우면서도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 감동적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사를 듣는 사람 각각이 하루하루 인생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 어쩌면 인생의 모든 찰나와 순간들이 전환점인지도 모른다. ‘사소한 일상’과 ‘삶의 큰 변화’는 양립 불가능한 두 가지가 아닌 것이다. 멀리서 보는 인생의 그래프가 어떤 모양이든 상관없이, 내가 살아가는 공간과 시간은 ‘지금, 여기’이기에 인생의 모든 거대한 사건이 일어나는 지점도 일상일 수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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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나를 분노하게 만들 때면, 나는 늘 마음속으로 ‘지금부터 내 삶을 다 리셋할 거야, 여태까지의 인생은 다 지워버리고 앞으로 새로운 나 자신을 만드는 거야’라고 다짐하고는 했었다. 말하자면, ‘전환점’을 만들려고 끝없이 시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도들은 일주일도, 어떨 때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좌절되기 마련이었다. 내가 싫어했던 원래의 내 모습도, 나를 둘러싼 주위 환경도 변하지 않은 채 다시 일상에 스며들었다. 내 방의 책장 속에 한 달도 채워지지 않은 다이어리들이 빼곡한 데에는 이러한 사정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나의 25년간의 삶 속에서 가장 주요했던 변화들은 도리어 내가 리셋 버튼을 누르는 일을 멈췄을 때 일어났다. 매번 새로운 다짐을 하는 것도 지쳐서, 스스로 왜 더 노력하지 않느냐고 채찍질하는 데에 신물이 나서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변화는 찾아왔다. 남자친구를 만날 때마다 ‘이런 모습은 보이지 말고, 갈등 상황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등등의 목록을 가슴 속에 새길 때는 연애가 죽기보다 어려웠는데, 오히려 ‘연애도 행복하려고 하는 건데, 마음 가는 대로 대충 하자’라며 푸념하고 나니 관계가 편해졌다. 지금 당장 진로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듯 나 자신을 닦달할 때는 아무 길도 보이지 않더니, ‘괜찮아, 설마 밥도 못 먹고 살겠어? 나한테 잘 맞는 일이 어디엔가 있겠지’라고 고민을 일축했더니 어둠의 장막이 걷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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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day is a new adventure for everyone,
even if we don't realize the beauty of it.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매일의 모험은 모든 사람 앞에
새로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영화 ‘원더’에서의 어기에게, 학교를 간다는 것은 삶에서의 큰 전환점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편견 없이 사랑해주는 가족들의 울타리 안에 있다가, 아직 ‘차이’에 대한 관용을 충분히 배우지 못한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스스로를 지켜내야 하는 상황에 놓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해서 어기가 특별히 이전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때로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외모가 미워지더라도 특유의 재치와 낙관으로 삶의 장애물들을 넘어서는 것, 그것은 어기가 일상 속에서 키워낸 능력이었다. 어기에게 학교는, 새로운 도전 과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마라톤에서의 반환점과도 같은 곳이었지만, 평소의 속도와 호흡을 유지하면서 뛰면 되는 마라톤의 연장선이라는 점에서 그저 또 다른 일상이었다.

삶의 특정 시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추억하는 것은, 교훈적 의미를 가질 수도 있고 에너지를 얻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전환점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는 없다. 어느 한 가지 과제를 꼽을 수 없을 만큼, 지난 세월의 고단한 싸움을 견디는 동안 수행해야 했던 과제가 너무 많았던 탓이다. 지금의 나 자신이 기껍지 않다고 해서, 앞으로 어떻게 인생을 재부팅시킬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요원한 미래의 나를 이상화하고 구체화하는 것보다는, 현시의 나를 충만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이다.


Lost.jpg
 

Think you're lost?
Then take your first step.
No need to be afraid.
The way you chose will turn out to be the right one.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드나요?
첫 발을 내디디세요.
당신이 고른 길이, 결국엔 옳은 길일 것입니다.


인생은 속도도 아니고, 방향도 아니고, 기울기! - Lee :)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모두가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방향’이라는 말을 ‘기울기’로 대체하고 싶다. 여태까지의 곡선이 우상향이 아니었으면 어떠한가. 지금 현 시점을 미분했을 때 기울기가 양수라면 - 소소한 일상이 사랑스럽고, 앞으로 다가올 나날들을 기쁜 마음으로 환영할 수 있을 것 같고, 나 자신의 구겨짐까지도 수용할 준비가 된 심적 상태라면 –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인생이 마이너스로 고꾸라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 그럴 때 나는 리셋 버튼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지금 줄 수 있는 최선의 위로와 사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ART insight 에디터 4개월을 돌아보며..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을 마무리하는 지금, 나는 여태까지의 활동을 삶의 전환점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언제나 그랬듯,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는 이전과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를 원했다. 일요일을 데드라인으로 정했으니까, 절대 기한을 넘기지 말아야지. 매 글마다 내 안에 잠재된 최대의 능력을 발휘해야지. 문화 초대도 자주 누리면서, 공부와 문화생활을 조화롭게 병행해야지. 수많은 다짐을 했지만, 나는 또다시 ‘창희답게’ 계획과는 다른 나태함과 게으름에 빠지고는 했다. 데드라인은 첫 한 달 이후 거의 지키지 못했으며, (자체 데드라인을 수요일로 정해버린 느낌이었다) 글에 애착과 헌신을 갈아 넣는 때보다는 ‘써지는 대로 써버리는’ 때가 더 많았고, 시험 날짜가 가까워지고 압박이 심해지면서는 문화 초대를 거의 향유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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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기고했던 글들 중 스스로 마음에 들었던 기사들만 뽑아 보았다.

‘전환점’은 없었음에도 일상에의 변화들은 있었다. 적어도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과제 제출을 위해 억지로 생각을 쥐어짜는 글이 아니라,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이야기들에서 얻어낸 영감과, 창조적 아이디어들을 언어의 형태로 구현해내는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오락적으로만 읽었던 해리포터를 비판적 시각에서 조명해보기도 했고, 평소 좋아했던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에서 오래 전에 죽어있던 내 여행의 기억을 부활시키기도 했으며, 1학년 때 학교 수업에서 읽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을 5년 만에 책장에서 꺼내보기도 했다. 그 모든 작업들이 나의 시간을 구성했고, 그 덕택에 나는 나 자신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를 회상해낼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한 글을 쓸 능력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받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1그램 더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아트인사이트와 함께 하고 싶다. 김영하 작가가 인터뷰에서,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은 삶이 바쁘고 힘들어서 그런 것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정말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나 자신의 모습이 싫어지고, 살아갈 날들에 막막함이 느껴질 때면 그토록 좋아하던 영화도, 소설도 도무지 내키지가 않았다. 오히려 그 순간들이 내게 가장 문화가 필요한 순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을 통해, 나는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 속에서도 잠시나마 ‘문학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찰나들을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그 순간들에 빚을 진 덕분에, ‘될 대로 되라고’ 내버려두는 인생이 자아 통제적 인생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가치관도 갖게 되었다.

인생을 리셋시킬 수 있는 버튼이 있다 해도, 이젠 누르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의 모습일 때가 가장 자연스럽다. 앞으로 삶의 강물이 흘러서 나를 어떤 바다로 데려갈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될 대로 되라지.
 


헤엄치고 발버둥치는 내 모습은 멀리서 보면 비극적일 지도 모르지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수영하고 있는 나에게 현재의 삶은 무조건 희극이다.



그리고 나는, 나처럼 힘겨우면서도 행복하게 매일의 강물을 헤엄치고 있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친절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고 말했던, 어기의 말을 잊지 않으며.


[이창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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