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때리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어쩌면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오늘의멍때림 #작은흠집
글 입력 2019.06.21 17:3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멍때리면-썸네일.jpg
 


#오늘의멍때림 #작은흠집



[크기변환]KakaoTalk_Photo_20190621_1722_49369.jpg
▲전지적 침대 시점


널브러져 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누워있다.


[크기변환]KakaoTalk_Photo_20190621_1723_13399.jpg
▲착한사람한테만 보이는 흠집


무슨 생각을 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생각들을 하며 한참을 누워있다 보니 천장에 난 작은 흠집이 보였다. 매일 저녁 마주하는 시야이지만 내 하루의 마지막 시선은 주로 천장이 아닌 카톡을 향하기에 이 집에 산지 1년 반이 되도록 저 흠집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크기변환]KakaoTalk_Photo_20190621_1723_28290.jpg
▲보이시나요...? 그만큼 미세합니다.


언제, 왜 생겼는지조차 알 수 없는 흠집이다. 배경이 온통 흰 색이라 그런지 살짝 드러난 적갈색의 생채기에 괜히 눈길이 간다. 처음이 힘들지 일단 발견하고 나면 계속 신경이 쓰인다.


[크기변환]강박증_증상_자가진단테스트_(1).jpg
 

왜, 그런 사람들이 있다. 뭐든 완벽하게 딱딱 들어맞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 책장에 꽂힌 책들의 높이도, 벽에 걸린 액자의 각도도, 하물며 바닥에 그어진 직선들도 제자리를 딱딱 맞춰야 마음을 놓는 사람들. 이러한 증세를 우리는 흔히 ‘강박증’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아, 물론 내 방은 개 판 5분 전이다. 드라이기 코드는 항상 꽂혀 있고 양말은 책상 위에 터를 잡았다. 내가 말하는 강박증은 정리정돈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난 나 스스로에 대해 강박증을 부린다.



#완벽주의



난 완벽주의자다. 보통 완벽주의자라고 하면 본인의 일에 굉장한 열정과 에너지를 갖고 달려들어 뛰어난 성취를 이뤄내는 프로의 모습을 떠올리겠지만 애석하게도 난 그런 데는 완전 ‘젬병’이다.

내 강박증은 아주 사소한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예를 들면 블로그 정리랄까. 올려야 할 책과 영화 리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언제 다 올리나 싶어 시작조차 못했다. 인상 깊었던 것들 몇 개만 먼저 올려도 일단 시작은 될 텐데 모든 것을, 그것도 순서대로 올려야 한다는 되도 않는 똥고집이 문제다.

그 뿐일까. 가계부 정리도 그렇다. 요즘 돈을 너무 막 쓰는 것 같아 가계부 정리를 시작했는데 6월 5일에 몇몇 항목들을 까먹고 안 썼더니 그 이후부터 쓰기가 싫다. 해서 6월 21일인 현재까지 내 가계부는 백지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정말 자괴감이 든다.

지금껏 살면서 ‘완벽주의’라는 단어를 부정적인 것으로 여긴 적은 딱히 없었다. 앞에서도 말했듯, 완벽주의는 나에게 빈틈없고 철두철미한 대단한 인물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 대단한 완벽주의가 때로 무언가를 시작함에 있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지는 존재가 되기도 함을 난 비로소 깨닫고 있다.

그 뿐일까. 완벽주의 이 친구는 알면 알수록 밥맛이다. 완벽주의는, 내가 나 스스로를 너무 가혹하게 대하게 한다.



#내가 최고여야 한다는 생각



[크기변환]pexels-photo-1637788.jpeg
 

왠지 모르겠지만 난 내가 언제 어디서나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공부도, 리더십도 내가 최고여야 했다. 어디서나 돋보여야 했고, 주목을 받고 싶었다.

사실 고등학생 때 까지만 해도 이 목적은 종종 성취되곤 했다. 고등학생 때는 공부랑 리더의 자질만 있어도 친구들과 선생님께 예쁨을 받는다. 학교, 그것이 세상의 전부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친구들과 함께 대학생활을 하고 여행이나 대외활동, 알바 등을 하며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그리고 갖추지 못한 역량들이 너무도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알았다.

고등학생 때 까지만 해도 나름 최고가 되곤 했던 나는 성인이 된 후 최고가 되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세상에는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리고 나는 못나게도, 나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그들을 속으로 몰래 깎아내리곤 했다.



#열등감



사람이 못나지는 순간이 몇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열등감에 휩싸일 때인 것 같다. 늘 최고가 되고 싶었던 나는 나의 대단함을 지키기 위해 남의 대단함을 평가절하했다. 누가 잘 된 건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 집이 잘 살기 때문, 부모님께 충분한 사랑을 받고 컸기 때문 기타 등등.

그 ‘때문’들은 하나같이 모두 구질구질했고, 그러한 자기합리화의 결과는 매번 후련함이 아닌 찝찝함을 남겨두었다. 내가 아무리 속으로 욕한다 한들 그들이 못나지는 것도 아니었으며, 내가 잘나지는 것도 아니었다. 누구도 이득보지 못하는 이상한 논리를 나는 자주 행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이라고 그 짓을 안 하지도 않는다. 그 행위가 다소 멋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게 된 지금도 나는 종종 나의 모자람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날을 세우고 상대를 찌른다.

하지만 자기합리화의 끝이 후련했던 적이 딱 한번 있다. 그것이 유일했기에 기억에 남는다.

그 날도 한창 나 자신과 함께 A의 뒷담을 까고 있었다. “A가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건 A가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야, 그래도 A가 잘난 건 반박할 수 없어, A는 왜 그렇게 잘났지, 그럼 난 왜 그렇게 못났지-“를 무한 반복했다. 화살의 끝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나에게 되돌아왔다.

그 화살에 아파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A가 잘났다는 걸 그냥 받아들이면 안 되나? 걔가 잘났다고 해서 내가 못나지는 것도 아닌데.’


[크기변환]m_main.jpg
 

‘프로듀스 101’을 굉장히 재밌게 보고 있지만 그 포맷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1등부터 101등까지 일렬로, 세밀하게 등수가 매겨진다. 이 프로그램에서 1등은 오직 단 한명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은 대한민국 사회를 아주 잘 반영했다고 평가받는다.

왜 그동안 내가 잘나기 위해선 남이 못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나는 그 이유가 프로듀스 101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분위기에 많은 부분 기인한다고 본다. 1등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사실을 종종 놓친다. 그리고 그 유일무이한 1등의 자리를 위해 남을 밀어내고 나의 빈부분을 억척스럽게 채워 넣는다.



#흠집의 인정



어릴 때 나는 내가 굉장한 어른이 될 줄 알았다. 세상을 상대로 대단한 일을 벌일 위인이라고 생각했다. (?)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 내 존재가 세상의 크기에 비해 너무도 미약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세상에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이 너무도 많고, 그것들은, 천장의 흠집처럼, 일단 발견하면 계속해서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흠집이 있다고 해서 천장이 무너지진 않았던 것처럼, 나 역시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해서 열등해지진 않는다.

필연적으로 나는 흠집들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뿐이지 과거에도 흠집들은 내 삶 속에 존재했을 것이고 현재에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그리고 죽을 때까지도 나는 어딘가 완전하지 못한 부분을 갖고 살아갈 것이다.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대단한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생각을 하자 나는 가장 마음이 편해졌다.




박민재.jpg
 

[박민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