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부디 구름처럼 흘러가길

청명한 하늘 속 하얀 솜들처럼,
글 입력 2019.06.22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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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당신은 어떤 날씨에 어떤 기분이 드나요?


우리 가족은 내가 어릴 때부터 이사를 자주 다녔다. 주로 변두리 지역에서 지내다가,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또 다른 도시의 가장자리로 꾸준히 보금자리를 옮겨 다녔다. 끄트머리에서 또다른 끄트머리로. 그중 한 곳은 우리 집에서 베란다 창으로 머리를 내밀어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푸른 바다가 바로 보이는 도시였다. 비단 집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매일 아침저녁, 학교를 등/하교하면서도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나는 비가 오는 날이나 먼지같이 뭉쳐진 구름이 잔뜩 낀 우중충한 날은 싫었다. 바다가 흐려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청명한 날씨의 푸른 하늘을 좋아했다. 특히나 비가 오고 난 후, 몽글몽글 폭신해 보이는 적운형의 구름이 떠있는, 우리가 머릿속에 떠올리는 이상적인 바다색의 만화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맑고 고운 하늘. 나는 거의 매일같이 바라본 푸른 비취색의 바다와 하늘이 닿은 곳을 사람들이 일컫던 세상의 끝이라고 상상했다.
 
비가 오고 난 후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들을 씻어낸 깨끗한 공기와 따사로운 햇볕, 보드라운 목화솜 같은 뭉게구름을 고개를 높이 들고 볼 때마다 나는 온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이 창조해낸 장관을 나는 한참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내 일상은 항상 날씨가 좋을 수는 없듯이 그다지 아름답지도 않았거니와 항상 밝지만은 않았다. 당시 학업 스트레스 덕분에 거의 매일 같이 머리가 쪼개질 만큼 아팠기에 진통제를 달고 살았다. 학교에서는 재미없는 공부를 하고 싶지도 않았고 흥미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좋아하는 수업을 들을 때만을 제외하고는 내내 죽어라 그림만 그렸다. 밤에는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는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 때문에 몇 시간이고 잠을 설쳤다. 당장 내 학교 성적에는 어느 대학을 가야 할지,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그림인지, 그림으로 먹고 살 수는 있을지, 나는 미래에 무엇이 될지, 궁극적으로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

그 후로도 나는 수업 시간 동안 종종 선생님들께 꾸지람을 듣거나 꿀밤을 맞아가며 치열하게 그림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과목만 공부했다. 그러다가 운 좋게 생각지도 않았던 대학에 합격해 내가 원하던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똑같은 교복, 똑같은 머리 모양, 똑같은 교과서로 공부하며 엄격한 교칙을 지켜야만 하는 칙칙한 분위기의 좁디좁은 교실을 벗어난 나에게 주어진 자유가 마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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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학생활도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나는 제대로 스트레스를 풀고 기분 좋게 노는 법도 모른 채 당장 해야 할 과제만 죽어라 한 것 같다. 사실 나에게 있어 제대로 노는 것이라고 해봐야 영화관에서 영화나 보거나 도서관에서 아무도 안 찾아 볼 것같은 책들만 찾아 읽거나, 유튜브에서 락 음악을 찾아 듣는 게 다였긴 하지만. 그리고 졸업을 하고 난 후, 지금은 취업난에 고군분투하며 무한 경쟁의 늪에 빠져 여태껏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새삼 느껴지는 감정이라곤 공허함뿐이다. 지금껏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지? 다시 고등학생 때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며칠 전, 오랜만에 학생 시절 고민이 가득한 머리로 바라보았던 하늘과 같은 깨끗한 그것을 마주하게 되었다. 잠깐이나마 답답했던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나는 다짐했다. 지금의 힘든 시련 또한 언젠가는 지나가리라. 아름답게만 보이는 하늘이라는 캔버스 위의 구름 조각이 바람을 타고 천천히, 혹은 빠르게 우리의 시야를 벗어나듯이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고 말이다.



Q. 자신의 삶에 있어 소중한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가 있다면 무엇이며, 그 순간은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나는 오아시스, 블러, 라디오헤드, 비틀즈, 스미스, 리버틴즈, 벨벳 언더그라운드, 댄디 워홀즈 등 많은 락밴드들을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그리고 타 밴드들보다 조금 더 좋아하는 락밴드가 있다. 바로 스웨이드다. 내가 생각하기에 스웨이드의 장기는 바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다시 맛볼 수도 없는 아름다운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브렛 앤더슨의 기교가 잔뜩 섞인 오묘한 목소리가 꿈같이 아렴풋한 느낌을 한층 더 더해주는 듯해서, 스웨이드의 This Time을 특히나 좋아한다. 마치 가사 속 화자가 노래를 듣는 내게 직접 말을 거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세상에서 화자와 나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Oh 'cause this time is yours and mine
Oh hear the city sound see the lonely crowds
This scene is you and me
Oh in the lazy sun we're the only ones


오, 왜냐면 이번만은 너와 나만의 것이지
도시의 소리를 들어봐, 고독한 군중들을 봐,
너와 나의 모습이기도 하지,
게으른 햇볕 속엔 단지 우리뿐.

Suede - This Time


이 노래를 들으며 사람들이 가득 찬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칙칙한 빌딩들 사이사이를 누빌 때면, 아무것도 모르던 철부지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도시의 가장자리, 끄트머리에서 살았기에 사람들도 많지 않고 항상 집 가까이에는 산이 많았다.

어떨 때는 집 뒤편에 공동묘지가 있을 때도 있었고, 어린 시절의 내 키만큼이나 자란 갈대밭이 있었고, 새하얗고 통통한 오리들이 가득 찬 농장이 있을 때도 있었다. 매일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가득했다. 자동차라고는 하루에 몇 대 보지도 못했을뿐더러 버스도 간간이 오곤 했다.

물론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시절의 내가 보냈던 평범했던 나날들이 지금에 이르러서야 뼈저리게 소중하고 희망에 가득 찼던 날들이었음을 말이다.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모든 것이 가능성으로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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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군중들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시끄러운 도시의 소음을 견디며 살아가는 어른이 되고 말았다. 당장 내일은 무엇을 해야 할지, 다음 달은 무엇을 해야 할지, 내년에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계획을 짜야만 하는 신세. 이 노래는 몸만 훌쩍 커버린 어른 속에 갇힌 어린 나의 추억을 꺼내게 만들어준다.

해가 지날수록 어린 시절의 소중한 기억들이 조금씩 희미해지는 게 참 아쉬울 따름이다. 너무 자주 되감기 해 노래를 들은 바람에 이제는 다 늘어져 버린 오래된 테이프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아픔도, 이제는 붙잡으려야 붙잡을 수도 없는 그리운 유년기의 기억도 부디 구름처럼 자연스레 흘러가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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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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