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른이’들의 애착인형 [사람]

글 입력 2019.06.2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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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오빠에게 생일 선물로 인형을 받았다.

통통한 분홍색 고래 한 마리와, 달덩이만한 미니마우스 한 마리였다. 온통 청회색 조의 어둑한 느낌으로 통일된 내 방 침대에 놓인 그 녀석들은 지나치게 튀었고 우스꽝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설상가상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꿈꾸는 나에게는 부피만 차지하는 인형 친구들은 짐덩이에 불과했다. 이걸 거절할 수도 없고, 대체 내 나이가 몇 갠데 인형을 받는단 말인가.

그런데 친구들에게 이 황당한 얘기를 들려주었더니 자기네들 방에도 인형이 한두 개씩 있다는 것이다. 껴안고 자면 편안하다나. 하긴, 다시 생각해보니 나도 귀여운 인형이 보이면 홀린 듯이 집으로 데려오던 기억이 났다. 그것도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나이가 먹어도 귀여운 걸 소유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구나 싶었다.

문득 ‘애착인형’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애착인형이 무엇인가. 어린 아이들, 특히 아기들이 보호자와 떨어지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늘 품고 다니는 인형이다. 하지만 보호자와의 분리불안증이 있을 리 없는 다 큰 어른들이 (비록 늘 품고 다니는 건 아니겠지만) 인형을 껴안고 지내길 좋아하는 건 이상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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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키덜트’라는 단어가 탄생되면서 어른들이 물건에 애착을 느끼고 사랑을 주는 행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게 아닌가 싶다. 피규어를 모으든, 옷과 화장품을 모으든, 자동차를 모으든, 자신의 성향과 경제력에 따라 종류만 바뀔 뿐이지 누구나 애착을 느끼는 대상이라는 게 존재한다.

최근 <토이스토리 4>가 개봉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어릴 적 사랑했던 장난감들에게 인격을 부여하고, 고차원적인 추억팔이를 하고자 하는 어른들의 애니메이션. 나도 막상 어릴 때보다 다 자라서 봤을 때 훨씬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난다.

이 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로, 내가 사랑을 주는 대상들이 실제로 인격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무심결에 상상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엿보인다. 옷가지를 소개하면서 ‘이 아이는요’ 라고 부르고, 모아둔 컬렉션을 뿌듯하게 바라보면서 ‘내 새끼들’이라고 부르는 다 큰 어른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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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나는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꿈꾼다고 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이유는 나의 수집욕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문학책을 읽다 보면 이 작가의 전집을 모으고 싶어지고, 내 취향에 딱 맞는 쇼핑몰을 발견하면 그 상점의 모든 옷을 구매하고 싶어지는 나 같은 사람이 욕심을 충족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아예 비우는 것이다. 아니면, 내 방을 물리적으로 채울 필요가 없도록 외장하드와 클라우드 저장소를 활용해 수집욕을 충족한다. 아마 내가 엄청난 부자였다면 집안 곳곳에 ‘컬렉션 방’을 만들어 두는 극한의 맥시멀리스트였을 것이다.

수집과 애착에 대한 성인들의 집착. 몸만 자랐지 언제나 애정을 쏟을 대상을 필요로 하는 불쌍한 어른들을 떠올리며 측은지심을 느낀다. 품에는 안 어울리는 커다란 핑크 고래를 안고서.


[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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