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음]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정규 4집 "모래내판타지"

여기, 끝까지 함께 울고 있는 구남이 있다
글 입력 2019.06.25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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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아마 많은 이들에게 이름은 얼핏 익숙한 밴드, 혹은 이름조차도 낯선 밴드일 것이다. 그러나 홍대 인디씬의 흐름을 쭉 따라온 사람이라면 이 밴드를 모를 리 없다. Mnet 프로그램 <밴드의 시대> 무대도 종종 회자되곤 한다. 옛날 남자와 여자가 스텔라를 탄다는 의미의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가 4년 만에 정규 4집 앨범 <모래내판타지>로 돌아왔다. 오늘은 이들의 판타지, 혹은 판타지를 꿈꿀 수록 처연하게 다가오는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이하 구남)의 음악은 정의하기 어렵다. 어떤 음악은 나른하고 몽환적이지만 어떤 음악은 트로트같고, 어떤 음악은 또 춤추게 만드는 기타와 키보드 멜로디가 반복된다. 공통적으로는 재미있다. 우리 집 옥탑방 청년이 썼을 것만 같은 가사지만, 우리 집 옥탑방 청년은 절대 쓰지 못할 것만 같은 음악이다. 뿅뿅거리는 키보드는 통통튀고 기타는 쓸쓸하며, 보컬은 솔직하다.

4집을 기다리며 구남의 1,2,3집 노래를 들어보았다. 내겐 능글맞고 한량같은 청년의 이야기였다. 능글, 한량 같은 단어들은 무척 나태해보이지만 이 시대의 청년이라면 무릇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어딘가 슬픈 구석을 가졌으니 꽤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4집을 들은 지금, 4년의 시간이 청년에게 더 넓은 시야를 주었음을 느낀다. 소년같은 구석을 그리워하지만 현실을 마주할 수 있게 된 청년은 모래내에서 판타지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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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내


앨범의 제목은 <모래내판타지>다. 모래내는 서울시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있는 서울의 전통시장이다. 서울의 4대 전통 시장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근처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오고, 시간의 흐름과 변화에 따라 전통 시장이 고전하면서 끊임없이 재개발이 논의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고지도에는 이 지역이 '사천(沙川)'이라고 표기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모래-내 라고 불렀던 것이다. 

1966년부터 영업을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인 모래내 시장. 그리고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는 바로 이 곳에 작업실을 구했다. 거주자가 되어 본 모래내는 '망한 나라'였다. 그런데 왜 이들은 <모래내판타지>라는 제목으로 앨범을 내게 되었을까. 구남에게 모래내는 어떤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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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불부터 재개발까지


첫 트랙은 '물불'이다. '모든 걸 물에 던지고 불에 태우면 우리는 깨끗이 웃을 수 있겠지'. 유튜브에 선공개된 구남의 '물불' 속 설명이다. 물에 던지고 불에 태우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저지를 뿐 노래를 쓰지 않는다. 그들은 저지르지 못해 노래로 대신한다. 구질구질한 미련이고 애정이다. 던지지 못한 이들은 현실에 머무른다. '망한 나라'에서 산다. 외부의 것들과 내부의 것들 때문에 계속해서 화를 내며.





하지만 다음 트랙에서 바로 이어지는 건 '나띵 컴페어 투유', 무엇과도 당신과 비견할 수 없다는 노래다. 누워서 맞는 비오는 오전은 무척 안전하지만 무기력하다. 구남이 누워있는 것은 3집 속 '젊은이'와 같지만, '젊은이'의 패기와 치기는 닳아 없고 쓸쓸함, 무력함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무기력하고 편안한 이 노래부터, <모래내판타지>는 판타지 속을 유영한다. 무작정 걷다가(지워진 자국) 무지개를 만나기도 하고(무지개), 나의 방 한 켠이 싱가포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구남은 다시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여름밤' 속 작은 자신을 보고, 지구와 우주의 커다람을 온몸으로 호흡한다.

그리고 돌아온 곳은 다시 이곳, 모래내다. 제목은 '재개발'이다. '홍대 씬'이라고 흔히 불렸던 한국의 밴드들은 젠트리피케이션과 재개발에 대해서 끊임없이 노래해왔다. 아예 젠트리피케이션 이라는 컴필레이션 앨범도 발매했었다. 홍대의 클럽에서 성장한 밴드들이 갈 곳을 잃었으니 당연하다. 7분 50초나 되는 이 곡의 가사는 얼마 되지 않는다. 대신 사이사이를 스캣이 채운다. 높은 음부터 힘없이 떨어지는 스캣은 상대를 놀리는 것 같기도 하고, 힘없이 스러지는 삶을 닮은 것도 같다.

구남이 술에 취한 것처럼 늘이며 던지는 마지막 말은, '건드리지마이 바보야'. 물에도 불에도 던지고 태우지 못한 것들은, 결국 모래내에 대한 애정 때문일 것이다. 모래내는 철저히 현실적인 곳이다. 망해가는 곳을 직시한 구남은 이 곳의 슬픔을 처연하게만 전할 수도 있었지만 이 곳에서 판타지를 꿈꾸면서 오히려 모래내를 더욱 대조적으로 전달한다.

이제 다시, <모래내판타지>라는 제목에 대해 생각한다. 이는 모래내에서 꿈꿨던 잠깐의 현실 탈출 판타지일 수도 있고, 모래내가 지켜지기를 바라는 것이 판타지라는 뜻일 수도 있다. 어느 뜻이든 마음 한 켠이 쓸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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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우는 사람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산문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는 이런 부분이 나온다.


가까운 어떤 분께서 사람들이 타인의 죽음에 점점 무감해지는 것 같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오늘날 시인들의 책무가 하나 더 늘어난 셈입니다. 가장 먼저 울지는 못하더라도 가장 마지막까지 우는 일이 그것입니다.


그는 시인이 남의 슬픔에 더 예민한 사람이라고 했다. 마지막까지 우는 사람들. 이 말을 곱씹으며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4집 마지막 곡, '재개발'을 다시 한 번 듣는다. 여기, 마지막까지 같이 울고 있는 구남이 있다.



사진 제공 BANA, 김나연
글 김나연


[김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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