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카모메 식당: 재미없어서 좋았다 [영화]

가득 담긴 사람 냄새를 전하다
글 입력 2019.06.25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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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은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취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요리와 홈베이킹을 좋아하기에, 자연스럽게 음식 관련 영화에도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영화가 다소 지루하다는 평가에 신경이 쓰였을뿐더러 관객 수가 약 6,000여 명 남짓했기에 영화를 보는 것을 무척 망설였다.

그런데도 이 영화를 보기로 한 이유는, 지루함과 적은 관객 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카모메 식당’을 인생 영화라고 꼽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약간의 우려와 함께 조금의 기대를 하고 영화를 봤을 때, 필자 또한 ‘카모메 식당’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다.



줄거리

일본인 여성 사치에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작은 일식당 ‘카모메 식당’을 운영한다. 그녀는 주먹밥을 대표 메뉴로 내세우며 야심 차게 영업을 시작했지만 안타깝게도 손님은 오지 않는다. 이후 일본 만화 매니아인 토미가 첫 손님으로 등장하고, 토미는 카모메 식당의 단골이 된다. 그런 가운데 사치에는 우연히 한 서점에서 미도리라는 일본 여성을 만난다. 그녀는 무작정 핀란드로 오게 된 방랑자였다.

사치에는 그런 그녀를 자신의 집에서 지낼 수 있게 해줬고, 미도리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식당 일을 돕기로 한다. 사치에와 미도리가 시나몬롤, 양념이 든 주먹밥 등 다양한 메뉴를 개발하면서, 손님들 또한 하나둘씩 늘어난다. 또한 이와 함께 식당에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도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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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해서 계속 생각나는 영화

‘카모메 식당’의 분위기는 매우 잔잔하다. 그간 봐왔던 영화들은 전개와 갈등, 해소, 결말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편이었다. 하지만 ‘카모메 식당’에서는 갈등이 주는 긴장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큰 사건이라고 해봤자, 중년의 남자 손님이 커피 분쇄기를 훔치는 일이랄까. 이 사건 또한 주인공이 도둑에게 순순히 커피 분쇄기를 양보하면서 해결된다. 이렇듯 ‘카모메 식당’은 대체로 평화만 가득하다.

이에 영화의 초반부까지는 다소 지루했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지루함이 영화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관적으로 보면, 이를 그저 재미없는 영화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카모메 식당’이 주는 지루함은, 영화를 보는 내내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도록 도와주는 하나의 장치처럼 작용했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 감각이라,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본 감정인가. 여기저기 쫓기다가 어느새 해가 저물어버린 나날들이 많았다. 이는 산더미처럼 쌓인 일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바깥 풍경 하나 제대로 볼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다. 벚꽃으로 수놓은 거리조차 그저 일하러 가기 위한 길로만 여겼으니 말이다.

그랬던 필자에게, ‘카모메 식당’은 오랜만의 여유였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아무런 불안감도 느끼지 않은 채 영화의 흐름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의 인생 영화였던 것일까. 어쩌면 ‘카모메 식당’은 정신없이 바쁜 이들에게 잠깐의 휴식을 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정 많은 사치에 씨의 따뜻한 식당


“그 가게는 당신이랑 많이 닮았어요”

영화 ‘카모메 식당’ 中


‘카모메 식당’의 장점이 있다면, 꾸미지 않은 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아무런 목적 없는 친절이 자주 등장한다. 주인공 사치에를 보면 알 수 있다. 처음 만난 미도리에게 자신의 집에서 묵으라고 제안하는 것, 토미가 첫 손님이라는 이유로 그에게 매일 공짜 커피를 대접하는 것 등. 사치에는 요즘 세상에선 볼 수 없는 호의를 베푼다.

만약 사치에가 현재 살고 있다면, 그녀는 이미 수많은 사기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세상은 험악하고 냉정하다. 이에 살아가려면 조금의 계산적인 행동과 차가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치에는 언제나 따뜻하다. 그 따뜻함은 그저 대단한 서비스 정신이 아닌, 사치에 자체가 지니고 있는 고유의 성격이다.

그래서 그녀의 가게인 카모메 식당도 따뜻하다. 그곳에서 나오는 커피와 빵, 밥은 사람을 위한 사치에의 마음이 담겨 있다. 이는 평범하고 소박한 음식이지만, 왠지 모르게 더 먹고 싶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양한 음식이 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카모메 식당’이 유명한 음식 영화에 꼽힌 까닭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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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


“세상 어디에 있어도 슬픈 사람은
슬프고 외로운 사람은 외로워요”

영화 ‘카모메 식당’ 中


핀란드는 언제나 느긋하고 평화로울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미도리에게, 사치에는 이처럼 말한다. 어쩌면 미도리의 이러한 생각은 영화 ‘카모메 식당’을 보기 전,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분위기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기대만큼 유토피아 같은 세상만 보여줘도 충분히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사는 곳에선 느껴보지 못한 느긋하고 온화한 세상을 보고 동경하는 것만으로도, 내게 치유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단지 느긋한 핀란드에서 평화롭게 식당을 운영하는 이들을 동경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영화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 우울증에 걸린 한 여자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이든, 어떤 곳이든 슬픔과 아픔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장소에 따라 행복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에 따라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어떤 이든 결국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카모메 식당’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남의 아픔을 절대 외면하지 않는다. 낯선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고, 마치 내 일인 것처럼 함께 안타까워한다. 그런 모습을 통해 관객들은 ‘카모메 식당’에서 사람 사는 냄새를 느낀다. 이처럼 점점 사라지고 있어 더욱 그리워지는, 그런 냄새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 사람들은 ‘카모메 식당’을 찾는다.


[황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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