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끝마치지 못한 글들 [기타]

글 입력 2019.06.25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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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네 달이 지났다. 가급적 이런 말을 쓰지 않는 네 달이 되길 바랐지만, 어쩔 수 없게도 시간이 참 빠르다는 말을 쓰게 된다. 에디터 활동으로서는 마지막 오피니언이 될 것 같은데,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조금 고민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최근에 본 영화나 뮤지컬, 혹은 연극에 대한 글을 써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만약 그러기로 다짐했다면 지금쯤 연극 프라이드에 대한 글을 쓰고 있겠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프라이드는 짧게나마 언급하고 싶다. 2년 전, 2017년에 프라이드를 참 많이도 좋아했었다. 2년 만에 다시 본 프라이드는 여전하고, 조금 더 좋아졌으나 세상과 나는 너무 많이 바뀌었다. 나는 이 극을 정말 좋아하지만, 예전 만큼은 아니다.


프라이드 이야기는 이쯤 하고, 결국 내가 쓰기로 결정한 것은 이전에 썼었지만 쓰지 않은 셈 쳤던 내 글들에 대해서다. 아트인사이트에서 에디터 활동을 하며 이것저것 썼었지만 기고하지 않은 글도 몇 있다, 없언던 셈 넘어가기는 아쉽고, 언젠가는 다시 쓰고자 하지만 일단은 그 중 일부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1 _ 불안감에 대하여




내게 불안은 언제나 여유의 단짝이다. (…) 불안하지 않음은 또 다시 날 불안하게 만든다. 왜 불안하지도 않아?


문제는 모른다는 것이다. (…) 우리는 결국 서로의 꾸며진 불안만을 보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한동안 불안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그건 이 활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쭉 생각해오던 주제였다. 우리는 왜 불안할까, 완전히 불안하지 않은 상태란 뭘까? 우리가 느끼는 불안은 타인의 그것과 같을까? 그리고 불행마저 치장하는 모습들, 빙빙 돌아 결국은 불안감과 함께 살아가기, 였는데 다시 왜 그래야해? 하는 질문으로 돌아오곤 했다. 오랫동안 생각했던만큼 글로 써 내보이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억지로 정리해 끝마치게 되는 것 같아 어려웠고, 그래서 기고하지 않았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잘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다시 읽어본 글은 엉성하고 어딘가 허둥지둥 급하게 굴고 있어 보였으니까.




2 _ 관성의 법칙



두 곡의 뮤지컬 넘버로 시작하는 글이었다. 하나는 뮤지컬 쓰릴미의 Way to far, 또 하나는 뮤지컬 비스티의 관성의 법칙이었다. 각각의 가사는 이렇다.



너무 멀리 왔어 / 그를 따라 너무 멀리 / 돌이키기엔 너무 멀리 왔죠. (쓰릴미 - way to far)


인생엔 관성의 법칙이 있어 / 한번 길이 정해지면 그 길로 계속 가야해 / 돌이키거나 멈출 수 없어 (비스티 - 관성의 법칙)



두 곡 다 그 극에 특별히 애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노래만은 종종 듣는데, 어느 날 문득 인생의 관성의 법칙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래서 글을 쓰게 되었다. 어린 시절, 친구가 다니는 미술학원이 재미있어 보여 따라다니기 시작했던 그 작은 선택은 내 모든 인생의 방향을 틀어놓았고,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본 유튜브 영상 한 편도 그랬다.


지금도 그 짧은 순간과 선택의 관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다 쓰고 나니 지나치게 개인적인 글이 되어 기고하지는 못했지만 쓰면서 후련했던 기억이 난다. 조금 뻔할지도 모르지만 결국 끝은 이렇다. 관성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나에 대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자.




3 _ 편의점 A to 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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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신입생 시절, 뭐라도 알바를 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주변 친구들이나 동기들의 십중 팔구는 과외 알바를 하거나 전공을 살려 미술학원의 강사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난 그게 싫었다. 대학 입학 전 짧게나마 아이들을 가르치며 내가 누군가를 가르치는데 지독하게도 스트레스를 받는구나 깨닫기도 했었고 타인의 중요한 시험에 관여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기도 싫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생각하며 약간 비약이 있는 결정인 것 같지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마주한 수많은 놀라운 일들에 대해 글을 썼었다.


비록 지나치게 가벼운가 싶기도 하였고, 동시에 쓰고 있던 다른 글도 있어 기고하지는 못하였으나, 그때 적었던 일화 중 하나를 소개한다. 물물교환에 대한 이야기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처음 안 사실이지만 편의점에서 물물교환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경험한 바로는 빵을 술로, 자몽 주스를 술로, 과자를 담배로 등의 사례가 있었다. (물론 본 편의점에서 산 것이 아니며 가격도 다를 것이다.) 여전한 의문은 20여분 전 손님 A가 사 간 것과 같아 보이는 치즈 빵을 가져와 막걸리와의 교환을 요구한 손님 B였다. 그건 같은 치즈 빵이었을까?




4 _ 지나간 고향



어린 시절의 짧은 추억이 있다. 한달 전 우연히 친구들과 이태원에 만두를 먹으러 갔다가, 멀리 떨어진 카페를 방문하기 위해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15년쯤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동네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할 때 쯤, 나와 동생의 교육을 위해서 떠났던 옛 동네에 대한 기억이다. 어쩌면 미화되고 각색되었을 추억을 적었었는데 기고하지는 못했다.



동네 아이들이 모두 친구였었다. 친구의 손 윗 형제 자매가 있다면 그 역시 친구였고, 동생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눈이 오는 날엔 어둔 밤이여도 동네 골목으로 나가 함께 눈사람을 만들고, 돌아와 부모님이 타 주시던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며 손발을 녹이던 일, 높은 담을 넘거나 높은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가장 멋진 행동이라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 가을이면 잠자리를 잡고, 열매가 열리는 계절엔 동글동글 예쁜 오디나 산수유를 (최대한 맨질하게 찌그러지지 않은 것으로) 따 모으던 일들, 그리고 동네에 있던 절에 자주 놀러 가 그 절의 하얀 개와 놀곤 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의 동네는, 아무튼 내 기억 속에는 완벽한 어린 시절로 남아있다. 이사를 간 후로 한번도 가 보지 않은 곳인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나는 이제 혼자서도 얼마든 그곳을 방문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그럴 생각은 없다. 완벽한 어린 시절은 기억 속에 남았을때만 완벽할 수 있을까 봐 그게 무서우니까.


*


마지막은 그림일기다. 언제나 그림일기를 쓰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한때 일기를 매일매일 쓰곤 했는데, 그러면 평소라면 스쳐지나갔을 하루를 잡을 수 있었다. 전처럼 하되 거기에 그림만 살짝 곁들이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그 살짝이 어려웠다. 결국 한 주에 한편이라도 쓴다면 아주 다행인 꼴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림일기를 쓰고 싶다. 다른 모든 글도 마찬가지다. 언급한 4가지의 글도 여기서 털어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다시 이야기 할 것이다. 그 언젠가를 기약하며 글을 마친다.



[김민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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