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베르나르 뷔페, 그의 사랑과 우울 [전시]

글 입력 2019.06.28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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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된 스타일 속 변화


전시의 시작부터 끝까지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에 등장하는 것은 거칠게 표현한 배경과 왜곡된 모양의 탁자, 그리고 길쭉한 형상의 사람이다. 처음에는 우울하고 차가운 느낌을 주는 사물들에 거부감이 느껴졌지만, 계속해서 보다 보니 오히려 반복되는 그림들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는 광대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반복되는 주제들은 그뿐만이 아니다. 램브란트 등 거장의 작품을 오마주하기도 했고, 해저 2만 리등 당시 공상과학소설의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만화적 스타일이 돋보이는 시기에는 자동차를 그리기도 했는데, 전시에서 유일하게 밝고 튀는 느낌을 주는 부분이었다. 이외에도 미친 사람들 시리즈, 뉴욕 시리즈, 에코르셰 시리즈 등 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인 만큼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많은 주제를 볼 수 있었다.

시리즈 내에서 비슷한 사물과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데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비교해보는 것도 꽤 흥미로웠다. 정물화의 경우 어떤 사물이 그려졌는지, 인물화는 사람들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같은 파리를 다른 시기에 그린 그림에서는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등에 주목한다면 그림에 담긴 이야기들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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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사랑



전시를 함께 보고 나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가장 많이 다루었던 주제는 역시 그와 그의 뮤즈 아나벨 뷔페의 사랑이었다. 전시장에 있는 그와 그녀의 사진을 보면 당연히 서로의 외모를 보고 반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웬만한 영화배우 커플만큼이나 두 사람의 만남은 멋지다. 실제로 전시 가이드에서 들었던 내용으로는 베르나르는 당시의 `셀럽`이었고, 아나벨 역시 당대 예술가들의 뮤즈였다고 한다.

둘이 처음으로 만난 순간은 친구였던 사진작가가 사진으로 남겼는데, 이 사진을 전시회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옆에는 칸 영화제의 아나벨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그전까지 자신을 비롯한 사람들의 모습을 기괴한 모습으로 그린 데 반해 이 그림에는 화려하고 선명한 색감의 배경과 아름답고 도도한 여성이 그려져 있다. 그녀를 만난 이후 화풍이 눈에 띄게 달라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베르나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림을 통해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전시장 곳곳에는 그림에 대한 설명 대신 아나벨이 베르나르에 대해 쓴 글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에 그토록 아름다운 글을 써 줄 수 있는 이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그가 죽고 난 후에도 그의 그림들이 아나벨을보살펴 줄 것이니, 슬퍼할 필요 없다"는 말이었다. 그녀에게 주변인들이 건넨 말인데, 이만큼 예술가에게 영광되는 찬사는 듣기 힘들 것이다.

전시회를 가면 되도록 전시 가이드를 듣거나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 편인데, 베르나르 뷔페 전의 가이드는 이전까지는 들어보지 못했던 색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바로 아나벨의 시점으로 그림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 애정을 듬뿍 담아 자신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리는 전시 가이드가 궁금하다면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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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그림 그리는 이, 광대

그의 그림에서 중요한 주제인 광대는 슬픈 표정을 숨기고 있다는 의미 이외에도 `자신의 얼굴에 그림을 그리는 존재`라는 의미도 가진다. 전쟁이라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닥치는 대로 그림 재료를 구해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는 그는 자신을 광대라 말했고, 캔버스가 그의 얼굴이 되었다. 전시회를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이 만나는 지점이 항상 흥미로웠다.

그의 경우 아나벨과의 관계 변화가 주제의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는데, 그림에서 당시 그의 표정이 상상이 되어 더욱 예술가와 교감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앞서 베르나르의 그림이 아나벨을 돌볼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과언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자기의 작품이었고, 그의 작품이 곧 그였다.

광대를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바라보면, 그 직업이 등장한 사회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그는 광대라는 주제를 통해 물질문명의 잔혹함과 모순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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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요즘 심리검사라는 수업을 들으며, 전문적으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그리는 그림에서도 성격을 읽어낼 수 있음을 배웠다. 사람들은 같은 나무와 집을 그리라는 주문에도 자신의 눈에 보이는 독특한 세계를 그린다. 베르나르의 눈에는 사람들은 차가웠고, 슬펐고, 우울해 보였다.

도시는 자신을 삼킬 것 같은 괴물로 보였고, 바다는 어두웠다. 휴가 하면 떠오르는 해변까지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모습이었다. 물감은 갈수록 두꺼워지고, 찐득하고 불편한 공기까지 느껴질 정도다. 어떠한 생명체도 따뜻함을 찾아볼 수 없고,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같다. 그는 그런 안간힘을 사람들이 알아채 주기를 바란 것 같다.

지금 나를 표현하는 것은 역시 SNS라고 할 수 있다. 그 속에서 나는 많지는 않지만 오래된 친구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고, 문화생활을 즐긴다. 그리고 혼자인 순간들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 나를 떠올릴 때 그렇게 기억해주었으면 해서 하나하나 신경 쓰고 올린 게시물들이다.

하지만 실제의 나와 SNS 속의 기억되고 싶은 나의 괴리는 또 하나의 스트레스다. 그러나 그 괴리를 못 견뎌 하는 것조차도 나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베르나르는 자신의 우울함을 예술로 승화하여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게 되었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탐구했다. 고통을 피하지 않고 드러냈던 그처럼, 나도 언젠가 나의 약한 모습까지도 드러내며 그것으로 나의 존재를 정의하고 싶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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