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연영과 입시에서 얻은 두 가지

글 입력 2019.06.2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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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시스템 살펴보기


연영과 입시 준비할 때 외모 강박이 있을 정도로 화장하고 꾸미고 다녔다. 고3이 가장 많이 화장을 한 시기라고 하면 믿겨질까. 그 땐 모든 사람들의 얼굴은 물론이요, 머리 크기와 신장 비율 등 세세한 부분까지 비교하며 살았다. 외모가 예쁘면 그 사람의 인생을 부러워 했으니, 자존감이 낮았던 건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외모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게 된 건, 연기학원에 들어와서부터다. 첫 연기학원의 원장이 복도에 지나가는 나를 붙잡고, 쌍커풀 수술을 권유했다. 아니 뭐, 요즘 쌍커풀 수술은 시술에 가까운 개념이지만 조금 섬짓했던 건 사실이다.


누군가 나에게 외모 지적을 붙잡고 한 적은 없었기에 좀 무례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권유하는 듯한 뉘앙스였고 학원을 옮겼기에 잊고 살았지만, 그 원장이 왜 내게 그런 말을 했는지 정확히 1년이 지나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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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 합격여부가 발표됐다. 연극영화과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외모'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보통 연극영화과로 유명한 사립대학들은 외모가 좋은 학생들을 원한다. 연기, 무용, 노래 실력 보다 말이다. 계속 연기 연습을 해왔던 내게, 실력이 좋은 사람보다 예쁜 사람이 붙는 이 시스템에 대한 배신감과 박탈감은 상당했다.


내가 이 지점에서 화가 났던 건 첫째, 이 기준으로 입시의 당락을 좌우하고 궁극적으로 학생에게 성형을 요구하는 대학의 무책임한 태도다. 둘째, 이 기준을 그대로 답습하고 학생들에게 성형을 권유하거나 아예 쉬쉬하는 학원이다. 입시에서 이 두 요소를 체크하지 못하면, 월 100만원 씩 날아간다.


20대의 예쁜 여배우로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보다, 독립영화나 연극에서 입지를 다지고 싶었던 나는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스타'를 만들어내 이름값 좀 올리려는 대학이 가장 황당했다. 연영과 입시생들이 체중계 위에 일주일마다 오르고 성형외과 들락날락 거리는 걸 몰랐을리 없다.


학원측도 나와 같은 사람이 이 입시에 참여한다는 걸 몰랐을리 없다. 대학교수가 자기네 학원애들 보내주면 무조건 합격 시켜주겠다고 요청해왔다는 걸 학부모 앞에서 대놓고 말할 정도였으니, 애초에 돈 장사가 우선이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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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시간이 지난 뒤, 그렇게 외모에 집착하는 세계가 우스워보일 수 없었다. 연영과로 가는 길은 딱 하나가 아니다. 아니, 배우로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제도권의 교육이 안정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입시는 삶에서 지나가는 한 순간일 뿐이고, '외모'가 배우의 전부가 아닐 수 있음을, 그 사이에 무수히 많은 공백이 생길 수 있음을 더 빨리 알아차리는 것도 중요하다.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이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도 인지하고 말이다.




삶을 갉아먹는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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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유닛'에 출연한 비가 참가자들에게 한 말이다. 물론 저 기회가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정말 간절히 도전해야 하는 게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저 참가자들이 이미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소비해가며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 시작은 아이돌 연습생일 테다.


아이돌 연습생들은 고강도의 훈련을 받으며 '데뷔'라는 꿈을 향해 나아간다. 데뷔하고 나서도 국내든 해외 스케줄을 소화하느냐 바쁠 테고, 혹 뜨지 않은 아이돌이라 할지라도 행사나 연습을 지속적으로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그들에게 집에서 쉴 자유조차 용납되지 않았던 걸까.


좁은 시장에서 단 몇 팀만이 살아 남는 곳이 아이돌계다. 이미 그들은 지치지 않았을까? 자신을 혹사 시키면서 연습하고,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멘탈 유지를 위한 충분한 휴식조차 죄의식 때문에 얻을 수 없다면, 꿈을 향한 성장통을 넘어 꿈이 나를 잡아먹는 지경에 이른다.


꿈을 이야기할 때, 눈물부터 쏟는 이 상황은 뭔가 잘못됐다. 힘겨운 시간들이 지난 뒤에도 그 기억이 자신을 괴롭힌다면, 분명 살펴보아야 한다. 나는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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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체력이 워낙 약한 탓에 오전부터 밤 늦게까지 연습을 하면 몸에 병이 날 지경이었다. 자정즈음에 막차 타고 집에 도착하면 그대로 골아 떨어져 자고, 그 다음날 눈뜨자마자 대충 끼니를 때우고 연습실로 갔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이유는 단 하나, 꿈을 이루려면 수많은 경쟁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더 빨리 나가서 연습하고, 마지막즈음에 나오는 것을 거의 당위적으로 받아들였다. 재수할 때도 거의 강박적으로 시간을 관리하며 연습했다.

그 때 나에겐 '경쟁'이란 가치를 부정할 힘이 없었다. 내가 그 가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사람을 본 건,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최강창민이었다. 경쟁이 모든 곳에서 긍정적인 가치로 매김한 시대에, 나는 경쟁이 싫다고 말하는 건 정말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는 무기력하고 무능력하며 게으른 사람이라며 낙인 찍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말 나와 맞지 않으면, 그것이 주류일지언정 부정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 뒤부터 나는 무언가에 목숨거는 것을 싫어하게 됐다. 강박적으로 남을 이기고 달려들어야 한다는 태도가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소름이 끼치곤 했다. 목적을 위해 나를 수단으로 삼고, 자신의 삶을 목적 앞에 무용한 것으로 만드는 감각을 싫어하게 됐다.

경쟁자가 100:1, 200:1이던 입시 속에서, 어리석게 자신을 자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조금 미안했다. 시간이 꽤 흐르니, 그 때의 내 모습을 더욱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다. 그러니, 이렇게 글을 써서 남긴다.


[이다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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