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나도 나를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어

글 입력 2019.06.29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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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나요?



벌써 대학교에서의 5번째 학기를 마쳤는데, 나는 아직도 고등학생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늘 한다. 7시에 일어나 8시부터 5시까지 수업을 듣고, 또 6시부터 10시까지 자율학습을 하고, 10시 40분쯤 집에 도착해 1시까지 과제를 하면 하루가 갔다. 그 때는 시간이 하루하루 지나가는 것이 기다려졌다. 어서 끝이 보이지 않는 이 터널을 통과했으면 하고, 옆을 가린 채 달려가는 경주마처럼 살았다. 온종일 의자에 앉아 있느라 다리가 퉁퉁 부어도, 친구들이 옆에서 아무리 소리쳐도 나는 일어나 다른 일을 해본 적이 없다.


그때의 나는 ‘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성적이었고, 자기소개서였고, 스터디 플래너였다. 분명히 자기소개서 속의 나는 인간을 사랑하고, 분명한 이상을 가진 멋진 학교심리학자였는데, 정작 반에서는 온갖 소음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변의 모든 이들을 한심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그 괴리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모든 일이 해결되리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맹목적으로 공부에 집착했던 이유가 작년 이맘때쯤 갑자기 떠올랐다. 나는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 그것을 학교폭력이라고 부르는 순간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은 이제까지의 나의 이야기를 다시 바라보는 전환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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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카피탄의 작품


내가 기억하는 한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의 나는 매우 행복했다. 지금은 MBTI 검사를 하면 내향형 점수가 만점이 나올 정도로 내향적이지만, 당시의 나는 전교 회장을 하면서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외향적이었던 시기를 보냈던 것 같다. 사진을 보면 조금 통통한 편이었음에도 단 한 번도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고, 오로지 학교에서의 생활을 마음껏 즐겼던 것 같다.


2011년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나의 단점’을 발견했다. 2014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했으므로, 중학교 1학년 때 쓴 것이다. 소름 돋을 정도로 2018년의 나는 2011년의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못생기고, 뚱뚱하고, 인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던 대학교 입학 후에도 나는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2011년의 그 글에 충격을 받고 일주일간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있었고, 잊고 싶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2011년의 어느 날, 학교에 갔는데, 그 아이가 나를 가리키며 자기 무리의 남자들에게 ‘야, 쟤 개그우먼 oo닮지 않았냐?’ 라고 말했다. 이것이 모든 괴롭힘과 놀림의 계기가 되었다. 그 무리는 나를 이름 대신 개그우먼 oo로 부른 것은 물론, 점심 배식을 받으면 내가 어떻게 먹는지 지켜보았고, 어떻게 하면 나를 놀라게 해서 ‘못생긴’ 모습을 볼지 늘 궁리했고, 그 행위들은 처음에는 대부분 성공적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당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친구들과 나의 관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철저히 무관심과 무반응으로 대응했다. 한 달 정도 지나고 나니 그들의 관심은 반에서 예쁘고 장난을 잘 받아주는 아이로 옮겨갔다. 그러자 우습게도 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적어도 내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때는 그들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능력을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다리만 봤다. 매일 나의 다리는 왜 두꺼운지 고민했고, 나보다 더 예쁘고 날씬한 아이들을 바라보며 부러워했다. 그리고 못생기고 뚱뚱한 내가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나 고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내가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은 성적이었다.


그렇게 공부가 아니라 정말로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고, 나를 졸라매는 여성혐오에 질문을 던지지 않은 대가는 가혹했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와 상반되는, 20살 여대생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기대에 전부 부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합격 통보를 듣자마자 두 달간 10kg 이상을 감량했고, 왕복 3시간씩 통학을 하는 와중에도 넓은 인맥을 쌓으려고 밤을 새워서 과 행사에 참여했고, 1교시 수업이라 7시에 집에서 나가야 하는 날에도 6시에 일어나 1시간씩 화장을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처음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지는 않을까 늘 불안해했고, 긴장했다. 그리고 성적이 공공연히 드러나지 않는 대학에서는 외모만이 답이라는 잘못된 믿음에 빠진다. ‘미용 체중’이 되면 자신감이 생기고, 모든 사람이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몇 안 되는 친구들과의 식사를 피하고, 그 좋아하던 과일 음료를 끊고, 하루 3시간씩 운동에 매달렸다. 하지만 일정 몸무게 이상으로는 더 변화가 없었다. 절망적이었다.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온종일 음식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서 터져버릴 것 같은 상태로 몇 학기를 보냈다. 동아리도, 과 활동도 거부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하지 못하고, 학교, 기숙사, 집, 헬스장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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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을 배우고, 상담을 받으면서 내가 제자리에 있음을 깨달았다. 이것이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적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일 지보다 나의 감정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아직도 나의 고민이 말끔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사라졌다면 이런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근원적인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혼자서 아무리 영화를 보고, ‘빵지순례’를 하고, 독립 서점에 가도, 헛헛한 외로움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학기 교환학생으로 파견되는 기간을 제외하면, 16년간의 공식 교육이 인생에서 끝날 날이 1년밖에 남지 않는다.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대입이라는 관문을 통과한 지금은 자꾸만 목표가 흐릿해진다. 오피니언으로 여러 차례 확신에 차서 나를 사랑하겠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아직도 모르겠다. 늘 주어지는 것 이외에 한 번도 다른 길을 상상해본 적이 없는 내가 공부가 아닌 다른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멘토가 될 수 있을지도 자꾸만 의심된다. 고민은 해결되기는커녕 늘어나기만 했다.




자신의 삶에 있어 소중한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가 있다면 무엇이며, 그 순간은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이제는 언급하면 개성이 없는 것으로 보일까 조금 두렵지만, 그래도 나의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룹은 방탄소년단이다. 그중에서도 수능을 앞둔 10월에 나왔던 앨범인 <WINGS>는 모든 트랙이 멤버 각자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특히 좋아한다. 당시에 들으면서도 울었고, 새 앨범이 나와서 다시 옛날 앨범을 찾아 들으면서도 울었던 트랙은 리더 RM의 솔로 곡인 ‘Reflectio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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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know every life’s a movie We got different stars and stories


We got different nights and mornings Our scenarios ain’t just boring


나는 이 영화가 너무 재밌어 매일매일 잘 찍고 싶어


난 날 쓰다듬어주고 싶어 날 쓰다듬어주고 싶어


근데 말야 가끔 나는 내가 너무너무 미워 사실 꽤나 자주 나는 내가 너무 미워(…)


나는 나의 모든 기쁨이자 시름 매일 반복돼 날 향한 좋고 싫음(...)


나는 자유롭고 싶다 자유에게서 자유롭고 싶다


지금은 행복한데 불행하니까 나는 나를 보네 뚝섬에서


I wish I could love myself (반복)”


-방탄소년단 ‘Reflection’ 중



이 노래는 자율학습이 끝나고 통학 버스에 올라 혼자서 노래를 듣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는 방탄소년단이 외치는 ‘Love myself’의 의미를 명확히 알지 못한 채 무작정 나를 중심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고 있을 것이고, 나의 고민 따위는 궁금해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다들 이런 고민 없이 잘 살아가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 노래를 들은 순간, 다들 괜찮은 척 행복한 척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다른 사람의 불행에서 행복을 찾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 세상의 누군가가, 그것도 수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가수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외롭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나를 사랑하고 싶은데, ‘매일 반복되는 나를 향한 좋고 싫음’을 어쩌지도 못하고 바라보고만 있다. 2016년에도, 2017년에도, 2018년에도, 지금도 그렇다. 아직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뒤는 생각하지 않고 마음껏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인지, 표준체중을 유지하는 것인지, 외롭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거절당하는 것이 더 싫어 남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 혼자서 잘 사는 척하는 것인지. 분명한 것은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앞선 질문에는 그때의 내가 어리석었다고 답했지만, 그래도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목표를 향해 달려갔던 그 시기의 내가 그립다. 답을 찾았다고 생각할수록 고민이 더욱 많아지는 지금, 맹목적이었지만 사회가 주입했던 목표로 확신에 차 있었던 그때가 차라리 행복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 삶이라는 영화의 대본은 내가 완성해야 함을 안다. 아직도 혼란스럽고 무기력하지만, 누군가가 답을 제시해주기를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정의하는 Love myself의 의미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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