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to X] episode 2.

글 입력 2019.06.30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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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A to X

episod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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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조금 이상한』

강성은


      

j에게.

 

스물한 살, 소설의 이해 수업에서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물었어. 여러분은 왜 소설을 읽느냐고. 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경제적이지 않은, 심지어 두껍고 들고 다니기에 무겁기까지 한 소설을 대체 왜 읽느냐고. 교수님은 소설가였으니 그 질문 아래에 정말로 소설을 무가치하다고 업신여기려는 의중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거야. 나는 운이 나쁘게 맨 앞자리에 앉은 바람에 엉겁결에 대답을 했어. 그때 나는 뭐라고 대답했더라. 나는 이후에도 이따금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고민할 때가 있어.


언젠가 부지불식간에 누군가에게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그럴싸한 답을 하고 싶었어. 교수님의 말이 다 맞는데 나는 왜 책을 읽을까. 책을 읽는 걸 어떤 가치들로 환산하려고 할수록 책을 읽는 이유는 아득해졌어.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사람이야. 언제나 너의 가방에는 책이 여러 권 들어있잖아. 그것도 아주 재밌어 보이고, 단정해 보이고, 다정해 보이는 제목이 적힌. 소설과 시와 수필, 어쩌면 이론서. 나는 너에게도 묻고 싶어. 너는 어떤 이유로 왜 책을 읽는지. 언제 어디서 책을 읽게 되는지. 한동안 책을 읽지 못하면 어떤 마음인지.

 

내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건 고민을 거듭해서도, 책을 읽는 게 정말로 어떤 가치로 환원되어서도, 또는 책을 읽는 일의 실리를 알게 되어서도 아니야.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종종 들어. 마치 이상한 순간에 태어나기라도 한 거처럼 그 순간을 별러왔던 거처럼. 몸살감기에 걸린 거처럼. 아 단지. 조금 이상하다,라고 감각하게 되는 순간들. 형언할 수 없지만, 몸이 아려오는 순간들. 왜 사람과 사람이, 사람이 동물에게, 사람이 세계를, 세계가 개인을, 아빠는, 엄마는, 너는, 나는 왜. 가로등이 희번덕이는 하얀 새벽에 누런 전조등과 굉음. 소음과 말과 언어와 발화 또는 침묵과 진실. 그런 모든 것은 대체 왜. 그런 식이어야 할까.


왜 그랬던 걸까. 단지. 조금 이상하다고밖에는 할 수 없는 것들로 나는 한없이 이상하게 질려만 갈 때. 나는 너도 어쩌면 나와 비슷한 걸 감각하지 않을까, 어떤 날에는 이유 없이 울고, 어떤 날은 왜 웃는지 이유를 알 수 없고. 그러지 않을까 싶어. 우리는 모두 조금씩 새파랗고 누렇게 이상하지는 않을까.


 

아직 이름이 없고 증상도 없는

어떤 생각에 빠져 있을 땐 멈춰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다시 생동하는 세계와 같은

 

단지 조금 이상한 병처럼

단지 조금 이상한 잠처럼

 

마음속에서 발생하는 계절처럼

슬픔도 없이 사라지는

 

위에어 아래로 읽는 시절을 지나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읽는 시절을 지나

이제는 어느 쪽으로 읽어도 무관해진

노학자의 안경알처럼 맑아진

 

일요일의 낮잠처럼

단지 조금 고요한

단지 조금 이상한

 


「단지 조금 이상한」



책을 꺼냈어. 아무 책이나 꺼내서 읽었어. 활자는 활자대로 둥둥 떠다니고 인물들의 이름이 제멋대로 섞이고 같은 줄을 몇 번이고 오가는데도 나는 책을 읽었어. 천천히 책으로 걸어 들어가면 그 깊이의 몇 배는 더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있을 수 있었어.


내가 나를 괴롭히는 방식으로 용을 써가며 얽어뒀던 기형의 세상과 시끄럽고 고약한 악취가 나는 미움과 불가해함에서 오는 두려움과 난처함에서. 나는 조금 비켜서고 싶었어. 읽을수록 사위가 고요해지고 가지런한 빗질을 한 거처럼 모두 한 방향을 향해 눕고 있어. 마음속에서 발생하는 계절처럼 슬픔도 없이 사라지던, 마냥 무관해지는 것들, 단지 조금 고요하고 이상한 것들이 투명하고 선명해지면, 나는 차라리 다 괜찮다고 생각해.

 

책을 읽는 일은 어째서 이런 시간을 허락할까.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충분하고 안전하게, 이해받고 사랑하는 방식으로 세상과 나란히 있을 수 있다면, 참 다행이지. 이 불가해한 세상에서 나 홀로 등을 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단지 조금 이상한 것을 너에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은.

 

스산한 여름 바람이 불어. 죽은 사람의 얼굴이 형형하게 떠올라서 사라지질 않아. 조금 이상하게, 시간과 공간이 채워질 때, 나는 너를 생각해. 바로 지금 이 시간, 누군가의 기일이며, 누군가의 애도의 순간이며 다음 생이 시작되는 순간, 단지 조금 이상한.



[양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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