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나는 아직도 나를 잘 모르겠어요.

스물 다섯의 애매한 자기고백
글 입력 2019.06.30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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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나를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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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까. 나는 활자를 좋아하는 평범한, 아니 스스로 그렇다 여기는 반 오십의 사람이다. 푸릇푸릇한 새내기도 아니고 사회의 일부로 커리어를 쌓아가는 사회인도 아닌, 애매한 신분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온 지도 벌써 6개월이 지났다. 명확하게 나를 드러내던 지위나 명분을 벗어 던지고 살아온 이 반 년의 시간이 내가 난생 처음 생각없이, 치열함을 내려놓은 채 맞이한 첫 공백기다.



당신은 '어떤' 날씨에 '어떤' 기분이 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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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절의 변화에 한껏 민감한 사람이다. 이전에 그러지 않았지만, 지난 1년의 이야기를 독립출판물로 담으면서 그 당시의 감정을 계절과 함께 재현했다.

따뜻하지만 미세먼지가 가득 차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아 답답했던 봄, 너무나 뜨거운 태양에 반쯤 넋이 나갔던 여름, 그나마 숨통이 트여 선선한 공기에 작게 미소 지었던 가을. 잔뜩 움츠리면서도 조용히 찾아올 봄을 기다렸던 겨울. 그리고 꽃샘 추위 같던 마지막 우울을 거쳐 찾아온 봄까지.

지난 한 해 나는 날씨에 한껏 예민해져 있었고 날씨에 따라 이리저리 내 감정도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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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계절은 가끔씩 사람을 뒤흔들어 놓곤 한다. 요즘같이 후덥지근한 더위에 장맛비가 끝없이 내리는 날엔 집에 칩거하면서 세상사를 잠시 잊고 긴 휴식의 시간을 갖곤 한다. 계절과 날씨는 각각의 질감이 있어서 그 특유의 질감으로 사람들의 기분을 좌우하는데, 요즘과 같은 날은 낙서가 가득한 종이를 지우개로 빡빡 긁어 지워낸, 얼룩덜룩한 모양을 남긴다. 무언가 그려지지도 그렇다고 깨끗하게 지워지지도 않은 그런 애매한 모양.



여러분에게 아트인사이트(ART insight)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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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아트인사이트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다. 나의 친구들, 지인들은 내 덕에 한 번쯤 아트인사이트를 들어봤고 문화초대를 같이 향유하기도 했다. 분기별로 새 에디터 가족을 모집할 때는 “너 아직도 하는 거야?”라는 물음을 듣기도 부지기수, 아트인사이트와 함께한 지는 벌써 3년이 다 되어간다.

아트인사이트는 내 대학생활의 반을 함께한 곳이다. 그러나 긴 활동 기간에 비해 내 글의 갯수는 다른 에디터들에 비해 턱없이 적다. 반쯤 농담삼아 ‘저의 모토는 가늘고 길게 활동하는 거예요’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곤 하지만 내 글의 물리적인 숫자는 사실, ‘서울’이라는 공간에 대한 접근성, 그곳을 누릴 수 있는 여유를 보여주는 장치였다.

웃기게도 나는 에디터때 보다 문화 리뷰단으로 활동하면서 그것도 문화 리뷰단으로 2년째 되던 해에 양질의 문화초대를 많이 누렸었다. 에디터로 활동했던 당시 경기도에서 대학을 다녔던 나는 과제와 성적에 치여 왕복 4시간을 서울행을 자주 감행할 수 없었다.

방학 땐 자연스레 거주지가 지방으로 옮겨지면서 서울에 대한 접근성이 줄어들었다. 그나마 가장 풍부하게 문화초대를 누리던 2018년은 일산에 위치한 회사 덕에 왕복 2시간으로 서울로의 이동시간이 줄어들면서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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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찾아온 2019년, 아트인사이트에 올라간 내 글의 개수는 작년에 비해 다시 줄어들었다. 다시 거주지가 본가로 옮겨지면서 누릴 수 있는 문화초대의 폭이 확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도 문화초대 알림이 올 때마다 한숨을 내쉬곤 한다. ‘내가 서울에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다 입을 거쳐 아쉬움의 음성을 만들어 내는 셈이다.

서울은 내게 일종의 애증의 공간이다. 5년을 애매하게 서울에서 보내면서 지방에서는 볼 수 없던 다양한 것들을 보고 느꼈지만 동시에 나는 늘 애매한 타인으로 존재했다. 아마 지방에서 올라와 수도권에 자리잡은 사람들이라면 이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기숙사나 자취방도 집 같지 않고, 본가도 집 같지 않은 기분 말이다. 1년 전의 나는 타지방 출신으로 서울에서 감당해야하는 경제적인 부담을 떠안기가 무서웠다.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했던 상황이 무서웠고 동시에 그걸 감당하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이리 저리 상처입고 무너졌던 시기에 나는 도피처처럼 서울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고, 억지로 다시 고향에 정을 붙이며 6개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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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na Jumping into Nothing, Courtesy of Masha Demianova 2014
©Masha Deminova All rights reserved



25살이 된 지 반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나를 모르겠다.

25살쯤되면 자신을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어떤 가수의 노래 가사와는 달리, 나는 여전히 나를 모른다. 다시 서울에 돌아갈 지, 고향에서 자리를 잡을 지조차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아트인사이트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내가 쓰는 글의 개수에 관계없이 가늘고 길게, 오래. 문화 예술을 일상의 일부분으로 삼은 이상 서울이라는 공간이 가진 힘에서 나는 아마 놓여 나기 힘들 것이다. 그 공간을 누리고자 하는 마음과 이를 누리기 위해 짊어 져야 하는 부담 사이에서 늘 갈등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내 글의 개수는 춤추듯이 상승과 하강을 반복할 지도 모른다. 다만 지난 3년간 그러했듯 아트인사이트는 묵묵히 내 일상의 한부분으로 이 변화를 함께 지켜볼 것이다.


[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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