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뛰어난 컨셉팅과 색다른 경험, 전시힐링_더 뮤즈 : 드가 to 가우디 [시각예술]

너의 뮤즈는?
글 입력 2019.07.01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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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 작가 모두 엄청난 네임드 작가다. 이름 정도는 당연히 들어본 작가들이다. 다양한 작가들을 하나의 전시로 만나보고 싶다거나, 유명 작가들의 대표작과 가치관 등을 한눈에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독특하게 체험해보거나 눈이 즐거운 전시인 것 또한 장점이다. 9명 작가 모두를 전시 하나에 어떻게 배치할지 우려했지만 관람은 만족스러웠다.

작가 각자 개성을 잘 드러내는 구성이 돋보였다. 각 작가 존마다 컨셉을 잘 정했다. 드가의 경우,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했던 발레리나와 어울리게 존 하나를 극단 입구처럼 해놓았다. 가우디는 자연을 모토로 한 건축물과 샘플을 설치했고, 쇠라의 점묘법을 표현하기 위해 렌즈를 활용한 점도 인상 깊었다. 작품들을 어떤 컨셉 공간에 배치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전시의 재미였다.

더 뮤즈라는 워딩으로 영감을 주는 존재라고 생각했을 때, 인물에 한정 지어 생각했다. 그러나 살펴보니 작가의 대표작이나 작품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존재였다. 사물, 인물, 직업, 가치, 색과 선, 과학 등. 작가의 뮤즈가 더없이 심플하고 눈에 들어와서 더 좋았다. 구태여 미사여구 없이 작가들의 대표작과 뮤즈들. 향유할 수 있었다. 신화 속 뮤즈들은 총 9명인데, 여기 전시에서도 작가 9명을 내세우는 등 작은 디테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뮤즈(Muse)'는 인간, 사물, 자연 등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와 영감을 불어 넣고 위대한 작품을 만들도록 이끈다. 오늘 이곳에서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공통적으로 영감을 선사했던 찬란한 시대, 19세기를 이야기할 것이다. 기술과 산업이 발달하며 모든 것이 스펙터클하게 변화하고, 드디어 인간이 중심이 되어 세계를 바라보던 시대, 이것은 그 자체로 '뮤즈'였다. 예술가들을 이 찬란한 순간을 하나라도 놓칠까 꼭 움켜쥔 채 그리고 또 그렸다. 온몸으로 직접 부딪혀 시대의 빛과 그늘을 담았고, 새로운 시대를 담기 위한 새로운 형식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는 그 혁신을 익숙한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인다. 새로운 재료와 기술에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했던 예술가들이 만약 현대에 살고 있다면, 익숙해지지 않기 위해 또 다른 시도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결코 놓치지 않으려 했던 아름다운 순간을 더욱 선명하게 밝히기 위해 기술과 상상력을 더해 보았다. 현대에 다시 나타난 쇠라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점을 그리고, 드가와 마티스는 움직임과 리듬을 보여주기 위해 영상기술을 시도한다. 시대에 맞는 방식을 사용했을 뿐,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같다.


- 더 뮤즈 : 드가 to 가우디



텍스트를 읽으니 기획 의도가 이해됐다. 작가마다 당대 최고의 혁신을 이끌어냈으며, 그 혁신을 오늘 우리는 익숙한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인다는 게 무척 가슴을 울렸다. 그런 점이 아쉬워서 현대 기술과 상상력을 곁들여보다니, 기획 의도를 알게 되니 전시를 보는 시선부터 달라졌다. 단순 작품을 관람하는 걸 넘어서, 작가가 생존했다면 어떤 결과물을 내놓았을까? 물론 정확하진 않겠지만, 현대 버전으로 짐작해보는 태도를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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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9개 작가 존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존마다 서두에 작가가 살았던 시대 배경과 어떻게 영감을 받았는지 일생을 요약하면서 시작한다. 작품을 단순 배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애초에 작가 수가 많아 작품 수는 한정되어 있었다. 대신 부연 설명하는 텍스트와 영상 컨텐츠, 샘플이나 독특한 구조물 비율이 높았다. 전시 공간 전체를 전시로 활용했다. 그런 이유로 지루하지 않은 관람이 가능했다. 작품 자체보단 작가에 더 조명을 맞춘 기획 같았다.

조르주 쇠라가 전시 처음을 장식했다. 배경과 생애, 뮤즈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영상 컨텐츠와 여러 체험형 구조물을 배치해서 전시 처음부터 신선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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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쇠라 작품 몇 개를 영상으로 보여줬다. 작품 작품이 바뀔 때마다, 점이 흐트러지고 점들이 모여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점묘법을 우선으로 두고 강조한 모습이다.





쇠라의 영감이었던 과학, 점묘법을 강조하기 위해 체험형 장치도 설치했다. 움직이면 점이 밀려나면서 숨겨있던 작품이 드러난다. 꽤 재밌었던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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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 여러 개를 매달아 설치해서, 마치 점묘법의 점들처럼 보이게 했다. 렌즈끼리 서로 겹치기도 하고 렌즈 크기를 서로 다르게 배치했다. 작품이 바뀔 때마다, 서로 엉키기도 하고 번지기도 하는데 보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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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을 확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는 장치도 마련했다. 쇠라는 물체 고유색을 인정하고 빛에 의해 어떻게 달라지는지 분석했다고 한다. 의도한 색을 표현하기 위해, 서로 다른 색의 점을 빼곡하게 찍는다. 우리가 멀리 서서 볼 때는 서로 혼합되어 새로운 색으로 보인다. 기존 작품에서 색이 섞일수록 탁해지는 혼성을 방지하고 밝은 느낌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그런지 작품마다 따뜻한 느낌을 준다.

점묘법을 사용하기 위해서 화가는 색채에 대한 완벽한 지식을 요구받는다. 어떤 색을 사용하고 나란히 찍어야 화가가 의도한 색으로 혼합되는지 철저하게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외에도 충분히 생각하고 하나하나 찍어야 하기 때문에, 쇠라가 한 점을 제작하는 데 무려 평균 3년의 시간이 소요됐다고 한다. 실제 쇠라는 32세에 요절해서 적은 작품 수를 남겼다고. 그러나 쇠라의 작품을 보다 보면 쇠라의 요절에 깊은 안타까움 마저 느낄 정도였다. 점묘법 외에도 황금비례를 지켰던 쇠라의 작품은 과학과 미술의 혼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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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건축가로 알려져 있는 가우디. 건축에  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곡선을 자유자재로 쓰고 서로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던 자연을 건축물에 끌어온 것으로 유명하다. 자연을 중시했던 옛 우리 선조의 양식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재밌는 점을 발견했다. 동양에서 죽 외쳤던 자연과의 조화·합일과 달리, 고대 서양에서부터 자연은 정복 대상, 파괴의 대상, 피할 수 없는 재앙, 발전의 원동력쯤으로 취급받아왔다. 그런 와중에 가우디가 자연을 건축물로 그대로 끌어옴으로써 개성을 전 세계인으로부터 인정받았다. 동양의 건축 사고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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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동양과 서양의 자연 인식이 여전히 다른 게 흥미로웠다. 가우디는 자연을 건축물로 온전히 끌어와서 덧씌웠다.  반대로 옛 선조의 건축물에서는, 본래 있던 자리의 나무를 베지 않고 같이 엮어서 건축하거나, 호수 가운데 정자를 올리는 양식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언뜻 보면 인간 중심이 아니라 자연 중심의 건축 양식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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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은 지식으로서는 같이 자연을 건축물로 끌어왔는데도, 여전히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는 건 무척 신기할 따름이었다. 가우디의 건축물은 형상을 건축물로 끌어온 자연의 재구성이며, 선조의 건축물은 자연에서의 재배치쯤으로 생각하면 아귀가 맞지 않을까?






가우디 존에서 독특한 구조물을 볼 수 있었다. 찾아보니까 가우디가 건축한 카사 밀라를 축소해놓은 듯한 구조물인데, 밤에 선보이는 '라페드라 나이트투어'도 엇비슷하게 구현해놓은 것 같다. 웅장한 배경 음악과 시시각각 변하는 패턴, 색상이 아름다웠다.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당장 현지에 가서 건축물과 나이트투어를 구경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가우디의 건축물은 생소하긴 했지만 확실히 기존에 보던 건축물과 달랐다. 하나의 예술품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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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의 컨셉이 완성도 있어 마음에 들었다. 발레리나를 주로 그린 드가의 뮤즈는 발레리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공간을 발레리나가 주로 활동하는 무대를 연상케 하는 극장으로 꾸며놓은 게 참 인상적인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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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극장 옆 구석을 활용했다. 나름 공간을 활용하려는 의도는 보였지만, 관람하기에는 조금 부적절한 배치였다.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읽어나가다가, 공간이 줄어들면서 발 디디기 불편했다. 더불어 발레복 뒤편의 벽에 드가 컨셉 타이포그래피가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작품, 드레스 의상을 재현해놓은 것이나 발레 작품을 연상시키는 타이포그래피, GISELLE가 심플하면서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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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 대표작을 살펴보면 발레리나가 눈에 띈다. 특히 마음에 든 점은 무대 밖의 발레리나 위주로 그렸다는 점이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때의 우리에게 보이는 발레리나가 아니라 연습하고 대기하는 발레리나의 생활을 조명해서 좋았다. 이상적인 미를 강조하지 않은 게 참 매력적이었달까. 게다가 발레리나의 얼굴을 묘사하지 않고 동작 중심으로 묘사한 것 자체가 관람 포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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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말했듯, 드가는 무대 밖의 발레리나를 조명해서 그렸다, 그저 움직임 자체를 묘사하기도 했고. 드가의 발레리나가 마음에 들었다. 발레리나가 지닌 가슴 아픈 양면성을 묘사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술한 텍스트에서도 보듯이, 발레리나의 모습을 한 겹 덜어내면 하층민 소녀들이 마주하고 있었다. 연습은 고됐고 많은 노력과 운이 필요했다. 그들은 심지어 가족까지 짊어지고 있었다. 무대 위 모습과 달리 발레리나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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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딸을 지켜보는 어머니

(우) 발레리나를 지켜보는 스폰서

 


하층민 발레리나가 성공하려면 반드시 후원자가 필요하며, 드가는 발레리나의 아름다운 동작과 함께 그런 당대 아픈 현실을 같이 그려냈다. 딸의 발레리나 데뷔를 통해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하층민 엄마의 모습, 가족 모두가 살기 위해 더 좋은 값을 주는 스폰서를 찾도록 딸이 다른 남자를 만나지 못하게 상품성 유지하도록 지켜보는 모습 또한 그려냈다. 드가는 그렇게 살아야만 했던 발레리나 소녀들을 뼈아프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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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를 보면 아름다움만 추구해서 그 밝은 이면만 보고 그리는 화가라고 절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발레리나의 외모를 배제하고 움직임에서 주는 아름다움과 무대 밖 살아 숨 쉬는 모습을 보여줬다. 피사체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하나의 직업, 무용수로 그들을 그렸다. 어려움에 처한 발레리나들을 돕기도 했다.

드가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불륜 현장을 목격했다. 트라우마로 여성에 대한 편견이 생겨 평생 독신생활로 지냈다. 오히려 그래서 '여성 = 외모'로 바라보지 않은데 영향을 준 것 같다. 그런 경험을 겪었기 때문에 당대 여성에 대한 시선을 가로질러 생각할 수 있었던 게 아이러니다. 그의 작품에서도 보듯, 발레리나 특유의 독특하고 뒤틀린 동작을 강조했다. 발레리나의 얼굴을 묘사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발레리나를 떠오르면 먼저 연상되는 화려한 외모가 아니라  춤 자체의 기술과 동작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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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는 가장 대중적인 바르비종파 화가다. 그중에서도 자연이 중심이 되는 풍경화가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물을 표현한 화가다. 민중의 고된 모습을 그려 당대 사람들에게 좌파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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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바르비종에서 농부들은 언제나 성실했다. 씨앗을 뿌리고 작물을 돌보며 대지의 신에게 감사드렸다. 밀레가 보기에 농부들은 땅을 느끼고 교감하는 것처럼 보였고 농사일은 어떤 종교적 행위보다 신성하고 숭고해 보였다. 밀레가 느끼기에 농사야말로 고귀한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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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가 보는 시골 농부들에 대한 인상을 작품으로 그려냈다. 그저 시골 농부의 모습일 뿐인데, 경건한 모습마저 보인다. 인물들의 표정은 보이지 않는 점이 경건한 모습에 일조한다. 하늘부터 신성이 내리쬐는 느낌을 준다. 왼쪽에서부터 강하게 내리는 햇살이 마치 그들을 축복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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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종>에서는 황량해 보이는 대지에 곧게 서 있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땅과 굳게 연결되어있는 모습이 든다. 상체는 지평선을 넘어 하늘과 연결돼, 우리가 말하는 보편적으로 상징하는 신과 연결해있는 모습 같다. 음영이 져있는 하체는 주변과 구분이 안 돼, 대지와 언뜻 한 몸 같기도 하다. 농부일 뿐인데도 분위기와 경건한 자세로 농사와 농부 자체의 일종의 숭고함을 부여한다. 하늘과 대지 사이에서, 기도를 하는 농부의 모습은 대지의 사제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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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 줍는 사람들>에서 내리쬐는 햇살은 대지를 황금빛으로 보여 배경 전체가 신성해 보인다. 인물들은 햇살을 전혀 개의치 않아 하지만 그들의 몸에 햇살이 전면으로 내리고 있다. 신성이 내리는 듯한 모습이며 신경 쓰지 않고 수확에만 집중하는 모습은 일상적이며 자연스럽다. 땅을 향해 굽어진 허리와 뻗은 손이 인간의 근원, 대지를 지향하는 모습 같다.






이번 전시에서 만족한 점은 각 작가를 나타내는 존 컨셉이 훌륭했다는 점이다. 물론 중간에 다소 존재감이 희미했던 존 몇 개가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완성도 있게 구현해놓았다. 그중에서도 마음에 쏙 든 하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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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작가 이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타이포그래피다. 작가 존을 함축해서 잘 보여준 듯. 쇠라는 점으로, 몬드리안은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게 재치 있었다. 각 존에서 제일 처음 보는 문구며 아이덴티티기 때문에 독특하게 표현해서 기대감을 갖게 해줬다.

무엇보다 그들의 뮤즈 또한 잘 드러났다. 처음 문구에서부터 끝까지 죽, 전시의 의도에 맞게 컨셉을 잘 짠 것 같다. 탁월했다. 적어도 9명 작가들의 뮤즈 정도는 확실히 알고 갈 수 있었다.


[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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