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음악이 당신의 순간을 바꾼 적 있나요?
글 입력 2019.07.0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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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날씨에'어떤' 기분이 드나요?""자신의 삶에 있어 소중한 순간을떠올리게 하는 노래가 있다면 무엇이며,그 순간은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삶에 있어 소중한 순간을 물으면 언제라고 답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은 행복하거나 의미가 있던 시기를 떠올릴 것이고 그 때에 내 곁에 존재했던 음악을 기억해낼 것이다.하지만 뒤집어 해석해 보면 조금 더 흥미로운 물음이 될 것 같다. “음악이 평범한 순간을 소중하게 만들어 준 경험이 있는가?”.이에 대한 답을 하면서 날씨와 기분에 대한 나의 생각도 함께 엮어보려 한다.Gorillaz, <Gorillaz>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 서울에는 아직 장마가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앨범을 듣다 보면 더운 비가 내리는 서울의 장마를 곧바로 떠올릴 수 있다.나는 비를 싫어하고, 습기를 싫어한다. 이런 날씨는 사람에게 활기를 앗아가고 몸을 무겁게 만든다. 에어컨을 틀어 둔 침대 위에서 아이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창 밖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만 있다면야 장마도 나쁘지 않겠지만 말이다.그러나 6월에서 7월에 걸쳐 있는 이 시기는 매년 나에게 굉장히 바쁜 때이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집 문을 나서게 되면 즉각 불쾌함이 엄습한다. 비 올 때는 잔잔하고 서정적인 음악을 들으라지만, 적당히 선선하고 공기가 괜찮은 가을비 정도에나 가능한 얘기다. 기묘한 냄새로 가득한 황토색 도시를 바라보고 있으면 만화영화 속 디스토피아가 따로 없는데, 서정적인 발라드가 다 무슨 소용인가.하지만 고릴라즈는 너무도 '도시'에 적합한 음악을 하는 팀이다. 멜랑콜리 무드에, 2000년대 초반 특유의 묘한 촌스러움, 데이먼 알반의 무기력한 목소리까지. 재작년 장마 기간, 'Tomorrow Comes Today'를 처음 듣고 마치 SF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착각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언제나처럼 신경질적으로 이어폰을 꽂고 지하철에 몸을 맡기고 있을 때, 창 밖의 어두운 풍경까지도 영화의 한 장면으로 바뀌는 경험을 했다.Our Lady Peace, <Happiness… Is Not a Fish That You Can Catch>문을 열고 나갔을 때 찬 공기의 냄새를 맡게 될 때가 있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다가왔음을 오감으로 느끼는 그 시기, 고등학생이던 나에게는 행복함과 서글픔이 공존했다. 행복함은 날씨가 주는 즐거움 때문이고, 서글픔은 언제나 시험의 연속이던 현실 때문이었으리라.이런 때가 되면 어김없이 90년대와 2000년대의 포스트그런지와 얼터너티브 록에 빠져들었다. 왜 이런 장르들이 나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 어릴 적 오다가다 매체에서 들었던 기억이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뻔하다 싶을 정도로 곡마다 비슷비슷한 멜로디와 사운드지만 그것이 주는 안정감이 있다.이쪽의 대표주자는 크리드, 니켈벡, 킹스 오브 리온 정도가 떠오르지만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건 아워 레이디 피스라는 그룹이다. 아마 고등학생 때 처음 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참 선선하던 입시철의 가을, 마음은 추웠지만 고막만큼은 이들의 앨범을 들으며 즐거움으로 물들였었다.‘행복은 당신이 잡을 수 있는 물고기가 아니다’. 제목부터 삐딱함으로 가득 찬 이 앨범이 왜 그렇게 마음에 들었던지 모른다.성적에 대한 절박함과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했던 폭발할 것 같은 나의 학창시절은 음악만이 유일한 위로였다. 매일 매일 똑같던 등굣길과 자습 시간에 음악마저 없었다면, 애당초 즐겁지도 않았을 그 기억들은 나에게 지워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잊어서는 안될 내 인생의 순간들을 남겨주는 건 역시 음악 뿐이다.The XX, <XX>가끔 어느 순간에, 별로 즐겨 듣지도 않던 음악이 듣고 싶을 때가 생긴다. 내 경우에는 한여름에 찾아갔던 제주의 삼양 밤바다에서였다. 당시 나와 친구는 열흘 남짓 되는 넉넉한 여행 기간을 즐기고 있었지만, 장기여행을 경험해 본 적 없는 내게는 여행 후반쯤 되니 피곤이 잔뜩 누적되어 있었고 지겨움마저 느끼기 시작하던 즈음이었다.여행기간 동안 매일 밤 우리는 습관처럼 근처의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다. 삼양 바닷가는 다른 모래사장처럼 희거나 노란 색이 아니라 검은 모래로 이루어져 있어, 밤이 되면 바다와 모래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완연한 어둠이 피부로 느껴지던 그 곳에서, 친구가 다른 할 일을 하는 동안 나는 혼자 바닷가 벤치로 향했고 어김없이 음악을 찾았다.고민 끝에 작은 스피커를 손에 쥐고서 <XX> 음반을 통째로 돌렸다. 그 순간 눈 앞이 다른 공간으로 변하는 기분이 들었다. 뙤약볕이 내리쬐던 낮의 열기가 한층 가신 바닷가의 선선한 바람과 잔잔한 물소리만이 존재하는 고요 속에서 낮게 울리던 음악 소리를 잊을 수 없다. 매일 같이 들르던 바닷가였지만, 기억에서 무뎌질 뻔 했던 그 밤을 음악이 마법처럼 잔상을 남겨 준 경험이었다.이런 게 음악의 힘이다. 몸에 닿는 습기도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만들어 주고, 힘들었던 시기를 조금 더 버텨낼 수 있게 해 주고, 여행의 권태기를 다시 행복으로 소생시켜 주기도 한다.평범함을 조금 더 특별하게 바꿔주는 힘. 흩어져 버렸을지도 모를 삶의 조각들에 색을 부여하고 기록해내는 힘.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다.[한민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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